[성경은 진실하다]
[성경은 진실하다]
『예수께서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기슭에 자리한 호숫가 마을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이로써 이사야의 설교가 성취되었다. 스블론과 납달리 땅, 요단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 이방사람들의 중심지인 갈릴리, 평생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칠흑같이 어두운, 죽음의 땅에 앉았던 그들이 해 돋는 것을 보았다.
이사야의 이 예언 설교는,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신 순간에 갈보리에서 성취되었다. 그분은 요한의 마지막 말을 이어받았다.
“너희 삶을 고쳐라.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마태복음 4장 12절~17절]
예수보다 6개월이나 위였던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는 곧 갈릴리 마을로 돌아갔다.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 생활이 열악한 마을, 로마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마을, 갈릴리 마을로 예수는 갔다. 아마도 갈릴리 마을은 요한이 활동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다시 예수는 요한의 일을 이어받아 시작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임했으니 너희의 생활을 바꿔라 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왜 예수는 여기서 시작을 하셨을까?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가 아니었는가? 그런 그분은 베들레헴, 아주 작은 마음, 다윗이 살던 곳에서, 그것도 멋진 대궐이 아닌 초라한 집에도 아닌 외양간에서 구유에 놓인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다. 이처럼 그는 매우 낮은 곳에 오셨고, 태어났고, 그리고 그의 활동을 천하고 천한 마을, 아주, 아주 보잘것없는, 얼마나 비천한 곳인지,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평생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백성이라고 말했던 마을, 갈릴리에서 예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이 예수 시대의 훨씬 전에 이사야가 외쳤던 예언의 말인, 스블론과 납달리 땅, 이방사람들의 중심지인 희망이 전혀 없는 절망뿐인 어둠 속에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던 곳에서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먼저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갈릴리 마을에서 예수는 요한이 행하던 것을 이어받아 전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놀라운 것이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 이후에 어떠한 것도 몰래 행하시지 아니하셨고, 갑자기 행하지도 아니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할 일을 사람들에게 항상 사전에 예고하셨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과 때를 주셨으며, 그리고 기다리고 인내하시며 그리 하셨던 것이다. 노아의 대홍수 사건도 역시 에녹을 통해 미리 알게 하셨으며, 므두셀라의 죽음을 통해 홍수의 시작을 알게 하셨으며,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에도 노아는 타락한 인간들, 음란한 인간들에게 곧 있을 대홍수에 대비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방주의 문을 닫기를 칠 일의 시간을 더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 때에는 사전에 알리시고, 그 시기와 때를 알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탄생도,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도록 하셨으며, 그것도 너무나 세밀하게 정확하게 때와 시기를 알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둔한 민족, 어리석은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살며, 죽음의 땅에 살면서 멀리 동방에서 보통사람들이 아닌 박사들(학자들)이 찾아와 메시아의 나심을 알도록 했는데도, 예루살렘 마을에 메시아의 태어남이 소문으로 퍼졌는데도, 그들은 곧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나중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죽음까지도 예언대로 알게 했는데도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마태는 칠흑 같은 어두움, 죽음의 땅에서 큰 빛을 보았고, 해 돋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였다. 오늘날에도,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기술문명의 시대에서도 역시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 죽음의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복음이 그들에게는 큰 빛으로 보고, 해 돋는 것을 보게 됨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고 있음을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권력자나 부자들이 누리고 사는 마을이 아닌, 최첨단의 생활을 누리는 문명도시가 아닌, AI(인공지능)의 시대가 아닌, 아바타의 시대가 아닌, 화려한 바티칸 성전이나 부유하고 거대한 교회나 세속화된 교회가 아닌, 비천하고 절망뿐인 칠흑 같은 어두움에 처한 자들에게, 다시 오실 예수의 진리가 큰 빛으로, 해 돋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자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태 13:14)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 1:5)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누가 8:10)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일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행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태 11: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