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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자연의 상생(自然常生)

[소라 섬 소녀 이야기 편]

by trustwons

72. 자연의 상생(自然常生)


소녀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고, 밖은 생각보다 밝았다. 소녀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소녀를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새들이었다. 소녀는 나뭇가지 사이로 쫑쫑 건너뛰며 놀고 있는 새들을 바라보며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주었다. 새들도 소녀는 보았는지 동작을 멈추고는 소녀를 향해 일제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새들도 반갑다고 하는지 저마다 지저귀었다.

소녀는 두 손을 운동복 양쪽 주머니에 넣은 채로 공원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숲 속에 다람쥐가 나타나 쪼르르 나무에서 내려와서는 소녀 쪽으로 다가왔다 멈추고 다시 다가왔다 멈추고 했다. 소녀는 그런 다람쥐의 행동을 보고는 미소를 짓고는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람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만 휙 달아나 다시 나무 위로 후다닥 올라가 버렸다. 그런 다람쥐의 행동을 바라본 소녀는 마음에 섭섭함을 느꼈다.

소녀는 멀뚱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다. 바람이 살랑 불어왔는지 나무들의 가지들이, 나뭇잎들이 춤을 추듯이 난리가 났다. 그런 모습을 바라본 소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희들이라도 나를 반겨주는 거겠지? 모처럼 맑은 하늘이잖니? 봐라! 하늘에 구름 하나 없잖니? 어쩜 하나도 없니?”


소녀는 아침 하늘에는 구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짙게 파란 하늘에 마음이 한결 시원해짐을 느꼈다. 소녀는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해 벌리고는 그대로 걸었다. 소녀가 공원에 도착했을 때에서야 해가 숲 속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를 바라본 소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 좋은 아침이다. 넌 꽤 수줍어하는 것 같아~ 소라 섬에서는 넌 참 웅장했었는데 말이야.”


그러자 해는 숲 위로 쑥 솟아오르며 소녀에게 반갑다고 햇무리를 돌리고 있었다.


“짜아식~ 등치갑을 못하는군! 뭐 하는 거야~ 꼭 수줍어하는 처녀 같잖아!”


소녀의 말을 들었는지 해는 갑자기 강렬한 빛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소녀는 질세라 눈에 힘을 주며 계속 해를 바라보았다. 해는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소녀에게 파문을 던졌다.


“안녕~ 일찍도 나왔구나!”

“뭔 소리~ 언젠 내가 일찍 안 왔었나? 새삼스럽게…….”

“넌 말끝마다 투정이냐? 좋은 아침에 말이야!”

“좋은 아침? 네 솜씨냐? 그래도 뭐 좋은 소식이라도 전해줘야지!”

“좋은 소식? 있지.”

“뭔데?”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비밀? 뭐야, 뭐!”

“허허, 서두르긴. 너답지 않구나!”

“넌 알잖아? 내가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지 말이야!”

“급할수록 천천히란 말이 있잖아!”

“넌~ 날 놀리는 거야? 곧 졸업이잖아~ 빨리! 말해봐!”

“나를 봐! 내가 세상을 밝혀주니 모든 것이 깨어나잖니?”

“그래! 그렇고.”

“예수가 뭐라고 하셨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했지?”

“알아!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된다고 했지.”

“오~ 잘 알고 있구나! 바로 그거야~”

“그거라니? 그게 뭔데?”

“내가 있을 동안에는 모든 생물들뿐만 아니라 만물이 숨을 쉬지.”

“만물이 숨을 쉰다고? 네가 이렇게 빛을 비추니깐?”

“그럼, 숨을 쉰다는 것은 활동을 한다는 거야! 봐~ 넌 아침에 나뭇가지에서 새들의 노래를 들었지?”

“그래.”

“또 다람쥐가 널 보고 갔지?”

“그래~”

“그뿐 아니야! 바람도 불고, 나뭇잎들도 흔들리고……. 넌 못 보았겠지만 바위틈에도 작은 벌레들이 기어 나오고, 하물며 물속에 물고기들도 깨어나고, 땅속에서도 벌레들과 나무뿌리까지 기지개를 켜는 걸 못 봤지?”

“넌 봤어?”

“당연하지. 난 그들과 입맞춤을 하고, 눈빛을 주고받지.”

“어떻게?”

“넌 내가 널 어루만져주는 걸 모르는구나?”

“알아! 너랑 내가 하루 이틀 만나냐?”

“바로 그거야. 창조주는 그렇게 우리를 통해서 서로 교통하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하시고 계신 거지.”

“그러니깐, 서로 상생하는 거구나!”

“상생(常生)? 그렇지. 그래서 창조주는 아담에게 번성하고 충만하라 명령하셨지.”

“그리고 다스리라고도 하셨어.”

“오호~ 잘 말했다. 여기서 다스리라는 것은 인간이 동식물과 자연을 지배하라는 뜻이 아니야!”

“그럼 뭔데?”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나 창조하신 후에도 사랑을 멈추시지 않았다고.”

“음, 그래~ 나도 그렇게 믿어!”

“그 사랑 안에 모든 천지가, 동물도, 식물도, 자연도 숨을 쉬고 있는 거지.”

“아~ 그렇구나! 고맙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로 시절과 때를 징후를 알게 하셨다고 했어!”

“이제 조금 눈치가 보이는구나! 그리고 하찮은 들풀에서도, 아주 작은 미물(微物)에서도 상생의 비밀을 두셨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오늘 아침 너를 만난 보람이 있구나! 고맙다!”

“꼭 이렇게 말해야만 아는 게 아니란다. 넌 창조주의 특별한 존재란다.”

“특별한 존재?”

“그럼, 넌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영혼, 즉 창조주의 영을 가졌지.”

“아~ 그렇구나! 우리 사람만이 영혼이 있지.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거지.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지. 고마워!”


소녀 소라리자는 해를 바라보며 그렇게 오랫동안 교감을 나누고서는 매우 기뻐했다. 그토록 물리학을 공부하면서도 뭘 공부하는 건지를 몰라했었던, 아니 방황을 했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던 소녀는 오늘 아침 해를 만나고서야 자연의 이치, 과학의 원리들,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 확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소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깡충깡충 뛰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들어선 소녀는 벌써 일어나셔서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는 엘리자를 발견하고는 엘리자에게 달려가 뒤로 껴안았다.


“맘,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좋은 아침이다. 넌 참 부지런도 하지. 어쩜 한 번도 잊지 않고 매번 그렇게 일찍도 일어나니? 대단해!”

“마미도 참! 오늘 너무 기분 좋아요~”

“뭔 일?”

“오늘 해랑 중요한 대화를 가졌거든요.”

“궁금하다. 아침식사하고 말해줄 수 있지?”

“네.”

“둘이 딱 붙어선 뭘 하시나?”


소녀와 엘리자가 꼭 붙어서 대화를 하는 모습에 조금 질투가 난 스미스는 부엌을 기웃거리며 한 마디 했다. 그러자 소녀는 엘리자에서 떨어져 스미스에게 달려가서는 스미스를 끌어안았다. 스미스는 당황하며 소녀를 껴안은 채로 말했다.

“허허, 오늘따라 우리 딸이 왜 이럴까?”

“파파, 굿 뉴스야~ 이따 아침식사하고 말해 줄게!”

“굿 뉴스? 매우 궁금해지는데……. 허허.”


엘리자와 스미스는 아침식사를 웬일로 빨리 드셨다. 그전 같으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셨는데, 오늘은 달랐다. 별 말없이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파파! 마미~ 뭐예요? 이렇게 빨리 식사하시면 어떻게요. 오늘 건강 신호~ 빨강딱지 하나!”

“봐주라~ 오늘만은……. 굿 뉴스가 있잖니.”

“안 돼요! 우선 커피를 드시면서 시작할게요.”


소녀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엘리자는 커피를 준비해 왔다. 거실에 모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소녀 소라리자의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스미스와 엘리자는 들었다. 좀 소라리자가 특이한 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사람, 엘리자와 스미스는 소녀의 믿음에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해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는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는 두 분은 소라리자의 깊은 사고력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과학에 대해서는 문외안인 스미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깐,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지를 먼저 창조하신 것뿐만 아니라, 천지에 모든 것들로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비밀의 뜻은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는 거라.”

“어머, 파파, 잘 정리해 주셨어요. 하나님은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요. 자연의 모든 것에도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것이에요.”

“그래, 하나님은 사랑이시지.”

“그뿐 아니라요. 피조물 간에도 사랑의 힘으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거지요.”

“사랑의 힘으로 다스린다? 좀 애매하구나!”

“음, 그러니깐. 동물이 식물의 과일을 먹고 배설물을 내놓으면 그 배설물이 식물의 거름이 되는 것처럼.”

“그래, 계절에 따라 과일이 나지 않니? 그런 것도 그렇겠구나!”


엘리자가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말하자 소녀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마미! 맞아요. 그뿐만 아니라 물리학에서 공부하는 자연의 법칙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거도 그런 거구나?”

“와우! 우리 파파 최고! 모든 것들이 상생이라는 것이에요.”

“상생? 뭔 소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음……. 뭐라고 말하지? 그래, 모자(母子)의 관계로 말하면, 어머니는 자식을 낳고 헌신하잖아요.”

“그래.”

“자식은 어른이 되면, 부모를 모시잖아요.”

“그래.”

“이런 관계가 바로 상생에 있다고 해요. 그렇지만 모자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에는 상생이 적용되어요.”

“오~ 우리 딸, 보통이 아닌데……. 우리가 딸에게 배워야겠어.”

“파파, 뭔 그런 말을 해요. 섭섭해요. 파파는 법에 대해서는 많이 아시잖아요.”

“농담이야. 하여간 놀랍다. 우리 소라리자 최고!”

“그래, 그걸 졸업논문에 실을 거니?”


엘리자는 의미심장한 소리로 소라리자에게 곧 졸업을 앞둔 것을 생각하고는 어느 정도 잘 준비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물었다.


“이대로 쓸 수는 없지요. 잘 다듬어서 물리학에 맞춰서 재해석을 해야겠어요.”

“기대가 된다. 교수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실까? 전례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처음부터 절 이해해 주셨으니 받아주실 것 같아요.”

“그래, 널 적극 응원하신다고 했지.”

“이제 출근하셔야지요? 저 때문에 늦으신 거 아니에요?”

“오늘? 쉬련다. 오늘 우리 모처럼 외식을 할까? 바람도 쉘 겸!”

“좋아요. 저도 그러죠.”


엘리자도 스미스의 의견에 대찬성한다고 하시며 함께 나들이 가기로 했다.


◎ 자연상생(自然常生)이란 천지만물은 각각 고유한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그 모습은 보존되고 생육한다는 의미를 말한다. 특히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에 따라 개인의 가치와 존귀함을 지켜가는 삶을 의미한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어도 자식은 부모의 예속물이 아니라 자신의 존귀함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모든 피조물은 각각의 고유한 존재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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