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글]
어느 카페의 이층의 창가에 홀로 앉아서 잠잠히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종로 길을 걸으며 젊은 시절에 자주 오던 음악다방은 보이지 않았다. 종로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인파 속에 묻혔다 나오며 걷고 있는 나는 무리들 속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렇지! 나는 일없는 사람이고, 저 사람들은 일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세상이란 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자연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무대일 뿐이 거지. 사람들은 자연의 무대에서 서로 상생(相生)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꾸며가고 있는 거지.
하지만, 자연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처럼 서로 상생(相生)하며 사는 걸까? 그렇다면 자연은 끝없이 변화를 일으키려고 할 거야. 그러한 자연을 무대로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어찌 될까? 이는 마치 가속하며 달리는 열차를 타고 가는 기분일 거야.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굳게 잡고 있어야만 하겠지. 한 치도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겠지. 사람뿐일까? 자연에 사는 동식물도 역시 안전하게 생활이나 성장을 하지는 못할 거야.
이런 세상? 진화론자는 이렇게 말하지. ‘적자생존’이라고 말이다. 정말 저자들은 적자생존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을까? 단순히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멸종한다? 얼마나 무지한가? 사고(思考)의 기본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자의 단편적인 현상만으로 전부인 양 주장하는 꼴이 아닐까? 그러면서 아이들이 뭔가를 말하면, “자식~ 뭘 잘 모르면서 나서긴.”라고 핀잔을 주어 입을 다물게 해 버린다. 이런 걸 보고 뭐라고 말할까? 예수가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 15:14)
사람이 사는 세상은 상생(相生)의 사회를 이르며 가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협력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지 않겠는가? 선악의 열매를 따먹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온 인간이기에 선악의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지. 그러니 아담의 첫아들인 가인에게서 갈등이 나타난 거지. 선과 악의 갈등에서 그는 악을 선택했다.
이처럼 인간의 상생은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경쟁의 대상이 되었고, 도와주기보다는 쟁취하는, 싸워서 얻는 쪽으로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주창 말하기를 상생론(相生論)까지 광범위하게 생산해 가며 인간의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최초의 권력자, 즉 시날 평야의 니므롯 영웅으로부터 인본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 거야.
그러나 자연은 그렇지 않았어. 자연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지. 그 이유는 자연은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이지. 창조자로부터 지음을 받은 그대로를 지켜온 것이지. 그래서 자연은 상생(常生)을 통해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거야. 그래서 노자(老子)는 자연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지. 그것이 바로 도(道)의 깨우침 이였지. 만일 자연이 상생(常生)의 원리를 저버리고 상생(相生)의 길을 택했다면, 사람들은 그런 자연의 무대에서는 어떤 발전도 이루지 못했을 거야.
왜? 발전이란, 어떤 원리에 기초해야 만이 가능하기 때문이지. 그것이 바로 자연의 상생(自然常生)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지.
인간에게도, 사람 속에는 상생(常生)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가인처럼 말이야. 쉽게 말하면, 사람마다 개인의 가치,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자유와 평안’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 그런데 인류문명 속에서 비치는 세상의 현상들은 끝없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제도와 관리에 집중하며 발전해 왔다. 겉으로는 ‘상생론(相生論)’을 주장하면서 적자생존론(適者生存論)으로 미화시켜 왔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람 되기를 포기하고, '학교폭력', ‘기생충’과 ‘아바타(avatar)’란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미디어로 온 인류를 의식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 자유의지를 파괴하거나 왜곡시키려는 목적이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주>
‘학교폭력’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실험교육
‘기생충’ - 적자생존의 실험
‘아바타’ - 대체인간, 비인격화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