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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뎅이 위충탑(慰蟲塔)

[엽서 동화 편]

by trustwons

풍뎅이 위충탑(慰蟲塔)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다. 아이들이 수양버들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얀 수염을 하신 할아버지를 둘러싸인 아이들은 조용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험,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육십오 년 전일게다. 그때에는 아파트도 없었고, 자동차도 흔히 볼기 힘든 때였지. 가끔 말이나 소가 끄는 달구지가 지나가고 사람이 끄는 구루마(수레의 일본어)가 지나갈 뿐이었지. 가끔 지프차가 지나갔지.”

“그럼 지하철도 없었어요?”

“그럼, 일제 때에 있었던 전차가 있었지. 그리고 20명 정도밖에 탈 수 없는 작은 버스가 있었지.”

“20명이요? 봉고차네요.”

“그렇지, 봉고차만 하지. 그리고 기오집이랑 초가집들이 많았었지.”

“빌딩은 없었어요?”

“빌딩? 그건 서울에만 몇 있을 뿐이야. 여기는 지금은 서울 안에 속하지만, 그 당시에는 서울 밖이었지.”

“학교는 없었어요?”

“학교? 있었지. 교실이 몇 안 되는 작은 학교였지. 교실바닥도 마루도 나무로 돼있었지. 그래서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대청소를 할 때마다 마루에 조르르 앉아서 초를 바르고 반짝반짝 광을 내야 했었지.”

“마루가 뭐예요?”

“교실과 교실 사이에 있는……. 그러니깐 복도를 말하는 거지.”

“뛰어다니면 소리가 나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마루를 걸어갈 때는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가야 해. 아니면 혼나지.”

“오늘은 그 시절에 아이들이 뭘 하고 놀았는지를 이야기해 주려고 한단다.”

“게임?”

“허허, 그 당시에는 게임이 뭔지도 몰랐지. 주로 자연과 더불어 놀았단다.”

“자연과 어떻게 놀아요?”

“그러니깐, 산과 들에서 벌레 잡고, 물고기 잡고 그렇게 놀았지.”

“벨레요? 으으으……. 무서워~”

“허허, 벌레를 무서워하다니, 남자답지 못하군! 여자들도 벌레를 가지고 놀았는데…….”

“여자들이요? 요즘 여자들은 파리, 모기도 무서워하는데요!”

“파리나 모기는 벌레에 취급도 안 하지. 이제 들어봐! 오늘은 풍뎅이 놀이에 대해서 말해줄게.”

“풍뎅이요? 어떻게 생겼어요?”

“허허, 너희들은 학교에서 곤충에 대해서 배우지 않는구나? 나무에 진이나 풀잎을 먹는 귀여운 곤충이지.”

할아버지는 땅에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풍뎅이를 그려서는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와! 이렇게 생겼어요? 귀엽네요!”

“귀엽지? 오늘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풍뎅이들이 나무에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그러지. 그럼 아이들은 재빨리 풍뎅이를 잡아서는 시합을 하지.”

“무슨 시합이요?”

“어른들이 닭싸움 내기를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지?”

“네! 닭싸움을 시켜서는 지는 쪽이 이긴 쪽에 돈을 줘요.”

“아이들은 돈내기를 하지는 않아. 그 대신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해오는 것을 시키지.”

“서리가 뭐예요?”

“그건, 수박 밭이나 참외 밭에 가서 몰래 한두 개 훔쳐오는 걸 말하는 거야.”

“그건 도둑질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러면 도둑질이라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거지가 가져가도 모른척하며 봐주곤 했었지. 그러니깐 인심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아이들도 그런 짓을 재미로 하는 거지.”

“와~ 공짜로 먹는 거잖아!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다. 문구점에 가서 한두 개 슬쩍하면 재밌겠다.”

“안 돼! 지금은 혼나~ 물어내야 해!”

“그럼, 그럼, 자 더 들어봐~”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앉은 아이들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을 했다.


“풍뎅이를 하나씩 잡은 아이들은 그 풍뎅이의 머리를 반대로 돌려놓고는 넓은 바위에 올려놓고 서로 누구의 풍뎅이가 오래 도나 시합을 하는 거지. 그런데 한 아이가 풍뎅이의 머리를 반대로 돌려놓고 그리고 다리들을 한 마디씩 잘라내고는 바위 위에 놓았어. 그랬더니 머리만 돌려놓은 풍뎅이보다는 다리까지 잘린 풍뎅이가 더 오래 돌았던 거야. 그러자 이번엔 내기에서 진 아이가 좀 더 큰 풍뎅이를 잡아와서는 머리를 돌려놓고 다리들을 반쯤 잘라내고는 바위 위에 놓았지. 그러자 큰 풍뎅이가 힘이 많아서 더 오래 돌았던 거야. 그래서 처음에 이겼던 아이도 다른 풍뎅이를 잡아서는 다시 내기를 했지만, 결국엔 지고 말았어.”

“할아버지! 풍뎅이가 왜 돌아요?”

“왜 도냐면, 이런 거지. 머리가 반대로 돌려진 풍뎅이는 바위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데도 풍뎅이가 바위를 바라보고 있으니, 바로 앉은 줄로만 알고는 날아가려고 날갯짓을 하는데 등을 바위에 대고 있느니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날지는 못하고 빙빙 돌기만 하는 거지.”

“아~ 알겠다. 누워서 날려고 하니깐 돌게 되는 거네요.”

“그래그래, 그렇게 해서 진 아이는 밭에 가서는 수박이나 참외를 서리해 와야 하고, 서리해 온 수박이나 참외를 서로 나눠먹는 재미지.”

“아~ 재밌겠다. 그리고 맛있겠다. 그치?”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재밌어하면서도 군침을 삼켰다. 이때에 한 아이가 할아버지께 물었다.


“풍뎅이는 나중에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되긴 살 수가 없지~ 머리가 돌아가고 다리가 잘렸으니 그냥 풀밭에 버리게 되는 거지.”

“그럼 죽게 되는 거네요? 불쌍해라~”

“불쌍해? 그렇게 아이들은 벌레를 가지고 놀고 그랬던 거지.”

“너무 불쌍해요. 풍뎅이도 생명인데…….”

“아이들이 너무 잔인해요!”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이 없었지.”

“그래도 잔인해요! 풍뎅이를 사람이라고 생각해 봐요!”

“맞아! 잔인해! 잔인해!”

“허허……. 이걸 어쩐다지?”

“할아버지! 우리가 풍뎅이를 위해 위령탑을 만들어요.”

“네! 할아버지! 위령탑을 만들어요.”

“만들어요! 만들어요!”

“허허, 위령탑은 사람만을 위한 거지.”

“그럼 뭐라고 해야 되죠?”

“음……. 그래, 위충탑이라고 하면 되겠다. 곤충이니깐.”

“좋아요! 위충탑, 위충탑을 만들자~”


아이들은 위충탑을 세울 막대기를 찾아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때에 한 아이가 멋진 막대기 하나를 주어왔다.

“이걸로 하자!”

“그래, 좋아!”

“어디에다 할까?”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풍뎅이를 위한 위충탑을 세울 장소를 찾았다. 결국 아이들은 수양버들나무 뒤에 숲에 알맞은 곳에다 막대기를 세우고 돌을 주어와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위충탑이란 글씨를 써달라고 해서는 막대기에 걸어주었다.

「아이들에 의해 희생된 풍뎅이여! 여기에 평안히 잠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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