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인생 - 5

[한 장애인을 위한 소설 편]

by trustwons

소리 없는 인생


5. 어머니 집에서

철민이 타고 온 자동차는 불암산 뒤편에 작은 마을에 도착을 했다. 철민이와 누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어서 동해바다에서 가져온 해초류가 함께 들어있는 생선상자와 예쁘게 포장한 꾸러미를 꺼내었다. 철민은 무거운 생선상자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노트북 가방을 들었다. 예쁘게 포장한 꾸러미를 들고 누가가 앞서 나아가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철민은 누나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집안에는 동네의 아줌마들이 와 계셨다. 어머니가 아들딸이 온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아이고,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지.”


어머니와 같이 장사하시는 금희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철민에 손에서 생선상자를 받아주시며 반갑다고 하셨다. 집안에는 벌써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만드셨는지 냄새가 자욱하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내려오시면서 반가워하시며 누나와 철민의 손을 꼭 잡으셨다.


“그래, 문단속은 잘하고 왔나?”


어렵게 살아오신지라 자식들이 스스로 자립해 이렇게 찾아오는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는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담장이 높지 않아서 바깥 신장로와 집들이 잘 보인다. 동네 꼬마들이 작은 개울가에서 뭘 잡는지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동네가 많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멀리 높은 건물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길 따라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많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제법 높은 고층빌딩들과 아파트와 주택단지들이 들쑥날쑥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도 산기슭에는 배나무 밭이랑 과수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담장을 높이 쌓는 것을 싫어하셨다. 담장이 높으면 답답하다면서 이웃과 왕래하기에도 어렵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루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만 담장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이웃들과 자주 왕래하면서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았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종종 맛있는 음식을 해서는 이웃 아주머니들을 불러서는 함께 나누어 먹고 하셨던 것이었다.

오늘은 아주머니들이 음식 솜씨를 내실 모양인가 보다. 어머니의 생일이라고 저마다 맛있는 음식들을 장만하여 오셨다. 그리고 부엌을 독차지하시고는 신나게 음식들을 요리하시랴 야단법석이었다. 어머니는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게 사시는 방법을 터득하셔서 이웃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인심 좋은 아줌마로 알려져 있었다. 생활이 어렵던 때에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후하게 대접하곤 하셨던 것이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셔도 늘 인색하지 않으셨다. 이윤을 조금 남길지라도 손님을 만족하게 하시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늘 단골손님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철민은 방 안으로 들어가 방안을 살폈다. 달동네에 살다가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집인지라 한적하고 공기 맑은 곳에다 집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두 개의 방과 넓은 마루가 있는 작은 기와집인 것이었다. 마당이 넓어서 약간의 정원을 꾸몄지만, 어머니가 텃밭을 좋아하시는지라 삼분의 이가 텃밭이었다. 그리고 마루를 넓게 꾸며서 부엌과 연결되어 있어서 요리하시는 데에는 불편하지 않았다. 안방은 꽤 넓은 편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쉴만한 공간이 충분하였다. 침대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 어머니에게 두터운 요단을 마련해 드렸다. 그리고 고전적인 붙박이 장롱으로 한 벽에 장식되어 있었고, 해가 잘 드는 창가에는 곱게 꾸민 진열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난과 화초들이 방안을 더욱 환하게 해 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이 진열대 위에 놓여 있었다. 마주 보는 벽에는 누나가 그린 바다풍경의 큰 그림이 걸려 있었다.


누나는 어머니를 위해 아줌마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랴 쉴 틈 없이 분주하였다. 아줌마들의 떠드는 소리가 집안에 가득하였다. 철민은 소리는 듣지 못하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매우 흡족한 얼굴로 건넌방으로 갔다.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다. 가끔 서울에 오면 철민이가 자주 드러눕던 침대였다. 철민은 침대 위에 드러누워서 팔베개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 접어든 탓인지 햇빛이 짧게 내려와 방안의 밝기가 은은하였다. 살랑 부는 바람이 철민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니 사르르 눈이 감기며 철민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이 방안에 자욱하였다. 가만히 눈을 뜬 철민은 창문을 바라보니 하늘은 여전히 화사하였다. 동해의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하늘과는 다르구나 하고 철민은 생각하였다. 조금 있으니 누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 옆에 와 앉은 누나는 철민의 손을 가만히 잡고는 유심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철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와 함께 마루로 나갔다.

어느새 준비를 해 놓았는지 거창하게 음식들이 식탁 위에 가득 차려져 있었다. 식탁 가운데에는 어머니가 앉아 계시고 동네 아줌마 세분이 양옆으로 함께 앉아 계셨다. 철민과 누나는 어머니와 마주 보는 쪽에 나란히 앉았다.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렸지만 하늘은 여전히 화사하여 실내 등과 함께 더욱 분위기를 북돋아 주었다.

섬세한 성격의 누나가 어느새 준비해 놓았는지 예쁘게 포장한 작은 선물을 어머니 앞에 내놓았다. 아주머니들도 뭔가를 준비하셨는지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선물들을 내놓으셨다. 음식까지 장만하셨는데 선물까지 내놓으시니 어머니는 당황해하시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그러자 누나가 일어나 아주머니들에게 큰 절을 하며 감사를 대신하였다. 향긋한 음식 냄새로 입안에 군침이 넘쳐나고 있었다. 먼저 생일케이크에 불을 밝히니 긁은 촛대 다섯과 가는 촛대 넷이 빛을 밝혔다. 어머니의 생일이 쉰네 번째가 되었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단숨에 촛불을 끄니 손뼉 치며 아주머니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들을 건네주었다.

어머니 오래 사셔요. 건강하셔요 하며 철민은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어머니는 철민의 손을 덧잡으시고는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이럴 땐 철민의 아버지도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꼬…….”


비롯하여 듣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장성한 아들 덕분에 혼자서 호강하게 된 것을 어머니는 미안해하시는 것이었다. 누나도 옆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눈물을 닦고 있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엄숙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금희 아주머니가 일어나셔서 노래를 흥겹게 부르시는 것이었다. 곧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시고 사방을 손으로 휘저으시면서 말했다.


“어서들 드십시다. 음식이 다 식겠어요. 군침이 돌아요. 군침이…….”

“그럽시다. 누구 음식이 참 맛있는지 내기합시다.”

“암, 내 음식이지. 안 그래!”

“아냐, 내 음식이야!”

“하하,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자 드십시다.”


어머니가 서둘러 앞에 있는 음식부터 한 접 드셨다. 그러자 저마다 젓가락이 오고 가는데, 철민도 어느 것부터 먹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눈앞에 있는 음식을 집어 들었다. 워낙 생선을 좋아하는 철민이라 집어 든 것은 생선 튀김이었다. 모락모락 냄새 풍기는 생선전골을 한 수저 떠 마신 어머니는 한 마디 하셨다.


“깔끔하게 맛있어요.”

“고것이 내가 만든 겁니다. 어대, 끝내주죠!”


금희 아주머니가 나서서 말하니, 연숙 아주머니가 질세라 재빨리 부침 조각 하나를 떼어 내어서는 어머니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요것도 드셔 봐요! 감칠 나게 맛날 거요.”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누나는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철민의 어깨를 툭 쳤다. 만족스럽다는 뜻인가 보다. 철민도 기분이 좋아서 맛있게 음식들을 먹었다.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가쁘다고 허리띠를 푸는 철민을 바라보시며 어머니가 전골을 한술 떠서 철민의 입에 넣어주셨다. 철민은 주저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늘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아들에게 한 술을 떠 먹여야 만이 흡족해하시곤 하셨던 것이었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아는 철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받아먹곤 하였던 것이었다.


“아이고! 누가 아들이 아니라 할까 봐서 꼭 그렇게 먹어주기는……. 어디 아들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암, 부럽지! 어떤 아들인데 탐내나 어림없는 소리야~”


그럴 때마다 누나는 더욱 말이 없었다. 딸은 어디를 가나 식구대접을 받기는 힘든 것처럼 누나도 몇 안 되는 식구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누나는 특히 장애인 동생을 위해서 잠잠했을 뿐이었다.

오늘은 어머니도 약간의 술을 하셨나 보다 흥겨웠는지 일어나셔서 노래를 부르셨다. 장단을 맞추는 아주머니들이 더욱 분위기를 높여주고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친 철민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건넛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노트부글 열어서는 어떤 연락이 왔는지 살폈다. 누나는 열심히 비운 그릇들을 정리하고 새것으로 바꿔주면서 뒤치다꺼리에 바빴다. 철민은 마음도 쉴 겸해서 인터넷 카페로 들어갔다.

인도에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인도는 비가 매우 많이 온다고 하였다. 장마가 시작된 것 같다고,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대피를 하고 있다고 했다. 뉴델리에는 큰 피해는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낡은 집들이나 천막들은 물에 잠겨서 살림가구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강가에도 물이 불어나 떠내려가는 가축들도 많다고 하였다.

철민은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하나하나 내용들을 흩어보며 동영상에 나타난 물난리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동영상에는 영상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까지도 들려오지만 철민은 들을 수 없으므로 더욱 동영상을 깊이 살펴보고 있었다. 철민은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하였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클릭해서 확대하여 자세히 상황을 살려보았다. 강가로 떠내려가는 가축들도 철민은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강가로 떠내려가는 것 중에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잠시 동작을 멈추게 하고는 학대 학대하여 살펴보니 어린아이였다. 철민은 그것에 눈을 멈추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떠내려가는 어린아이를 철민은 놓질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재빨리 인터넷상에 이 비극적 현상을 낱낱이 퍼 띄었다. 그의 손놀림은 매우 빨랐다. 때와 장소와 시간을 일일이 써 내려갔다. 삽시간에 그의 글은 온 세계에 인터넷으로 퍼져갔다.

그는 다시 친구에게 글을 보냈다. 즉각 연락되는 카페에서는 글과 글이 오가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철민은 언제나 이 카페를 자주 이용하여 많은 친구들을 얻었던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친구들은 그와 신의가 깊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한국에 사는 철민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가 말 못 하는 것과 듣지 못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예리한 판단과 풍부한 외국어와 지식에 친구들은 감탄을 많이 하였다. 더욱이 철민의 진실성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었다. 아니 철민의 진실성은 누나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누나는 매우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진지하고 진실한 성품을 가졌다. 그녀의 어머니도 또한 진지하신 편이었다. 늘 낙천성과 적극성으로 살아가신 어머니셨다. 한편 돌아가신 아버지는 매우 곧고 진실하셨다. 그가 팥으로 매주를 썼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은 믿을 정도였다. 그만큼 천성이 착하고 곧은 분이었다. 누나는 아버지의 그러한 성품을 많이 닮았던 것이었다.

잠시 후에 철민은 동영상에 나타난 간디스 강가를 다시 보았다. 누군가 비디오로 계속 찍어 보내주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의 친구인 도비쉬였다. 그는 강가의 강변 쪽에 높은 건물에 살고 있었다. 그는 가끔 옥상 위에 올라가서 카메라 장치를 설치하고는 이곳저곳을 살피며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런 그가 비가 오는 오늘 강가에 떠내려가는 것들을 찍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영상에 나타난 것들이 보였다. 헬기 하나가 날아오는 것이었다. 강가에는 워낙 넓어서 물살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구해진 것이었다. 누군가가 철민의 글을 보고 인도 정부에 즉각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그것도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인터넷의 위력은 놀라운 정보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잠이 드신 모양이었다. 친구 분들이 다 돌아갔으며 누나가 혼자서 집안일을 정리하고는 철민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철민이가 노트북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한 누나는 조용히 둘러보고 나갔다. 꽤 밤이 깊었나 보다 어둠이 짙고 고요하였다. 집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인지 밖에는 희미한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어서 대체로 어두운 편이었다. 간혹 산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철민은 노트북을 접어두고 자리에 누웠다. 창문에 비치는 나뭇가지들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그의 시선이 있을 뿐이었다. 누나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을 대는 이미 철민은 잠들어 있었다. 누나는 얇은 이불을 펴서는 동생을 덮어주었다. 집이 산 터에 있는지라 아침이면 제법 공기가 차가웠다. 누나는 이러한 날씨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루로 나가 자리를 깔고 누어서는 훤히 내리비추는 달빛을 따라 멀리 달을 바라보며 누나는 잠을 청하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리 없는 인생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