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인생 - 6

[한 장애인을 위한 소설 편]

by trustwons

소리 없는 인생


6. 누나가 외출하다


나뭇가지에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철민은 날이 밝아져서야 자리에서 깨어났다. 철민은 밝은 창문 쪽으로 다가와 창밖을 바라보며 또 소리 없는 하루를 시작하네 하고 생각을 하였다. 그는 어둠보다는 밝은 낮을 더 좋아하였다. 그가 침대를 정리하고는 마루로 나오니 부산하게 움직이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는 외출을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을 하였다. 동해바다에 있을 때에도 누나가 외출을 하려고 할 때는 매우 부산하게 움직였던 것을 철민은 잘 알고 있었다.

철민은 어머니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직 어머니는 잠자리에 누워계셨다.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심을 알고는 철민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는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는 몸을 좌우로 흔들어 무거운 몸을 풀었다. 그리고 텃밭으로 갔다. 늘 어머니께서 심심찮게 가꾸시던 작은 밭이었다. 아직은 크게 자라난 것들은 별로 없지만 골고루 심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을 하였다.

철민은 수도에 호수를 연결하여 텃밭에 물을 주었다. 흠뻑 젖은 잎들이 더욱 생기를 돋아내는 것 같아서 그는 재밌어했다. 스펀지처럼 물을 잘 들이마시는 흙은 곧 물곬을 만들어냈다. 여기저기 흘러가는 물줄기가 더욱 재밌고나 하고 철민은 생각을 하였다. 갑자기 호수에서 물이 멈췄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철민은 뒤를 돌아보았다. 누나가 수도꼭지를 잠그고는 철민을 보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였던 것이었다. 철민은 호수 줄을 돌돌 말아서는 한 곳에 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서 머리를 단장하시고는 식탁으로 나오셨다. 철민은 손을 씻고는 식탁으로 와 앉았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철민의 어깨를 어루만지시면서 어제 잘 잤느냐 하는 듯 미소로 말하셨다. 철민도 눈치를 채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답을 했다. 누나는 생선국을 준비했는지 마지막으로 국을 내왔다. 그리고는 식탁 옆자리에 앉았다.


“어머니, 몸은 어떠셔요? 어제 술을 좀 하셨던데요.”

“응, 괜찮아! 피곤했나 봐 뭐.”


향긋한 생선국 냄새에 철민은 미소를 지으면서 국을 떠 마셨다. 언제나 철민의 가족들은 조용하였다. 어머니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이시고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시었다. 평소에 쾌활하신 어머니가 철민의 앞에서는 말이 없으셨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 못지않게 깊은 사랑이 오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철민은 이러한 가족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철민은 일찍이 철이 든 셈인지 모른다. 온 식구들이 자기를 위해 너무나 잘해주는 마음을 읽고 나서는 그는 더욱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팔방미인이라 할 정도의 누나의 도움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었던 것이었다. 오늘의 철민이가 존재하게 된 것은 오직 누나의 힘이었던 것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누나는 서둘러 설거지를 끝마치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민은 마루에 서서 담장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솔잎이 두 가지 색으로 보였다. 철민의 눈에는 짙은 초록빛 솔잎과 연한 초록빛 솔잎이 살랑살랑 서로 어울려 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철민은 생각했다. 연한 초록빛 솔잎은 올해에 돋아난 잎이겠지. 사실 솔잎은 2년생 낙엽송인 것이었다. 격년마다 솔잎은 떨어지고 하니 매년 솔잎은 푸름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그러할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멀리 산에 나무들이 푸르게 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더울 듯싶다. 아침부터 공기가 매우 후덥지근하다고 철민은 생각을 하였다. 누나는 누군가 하고 꽤 오랫동안을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랑 수다를 떠는 모양이었다. 그리고서 어머니 방으로 건너간 누나는 어머니와도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고는 마루에 있는 철민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철민은 마루턱에 걸쳐 앉아서는 누나가 준 쪽지를 천천히 펴서 읽었다.


“철민아,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잘 지내! 이젠 어머니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이잖니? 얼마나 사실지도 모르잖니? 그러니 모자간에 시간을 가지도록 해! 누나는 잠시 옛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게. 이해하지?”


누나는 곱게 옷을 갈아입고는 어머니께 절을 하고는 툇마루에 있는 동생에게 와 눈인사를 하고는 대문을 나섰다. 자동차가 신작로를 따라 사라질 때까지 철민은 마루에 서서 담장 너머로 바라보았다. 철민은 누나에 대한 연정의 느낌으로 허전한 마음에 자동차가 살아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에 어머니가 나오셔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얻고는 함께 사라져 가는 차를 바라보셨다. 철민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는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는 한참 동안을 그러고 있었다. 어머니도 철민의 마음을 아시는지라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대로 계셨다.

어릴 적부터 말이 없는 철민, 아니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을 잘 아시는 어머니는 그를 잘 이해해 왔던 것이었다. 또한 철민이도 그런 자신을 많이 이해해 주시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한없이 컸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시고 어머니는 노상에서 장사를 하러 나가시고 언제나 혼자 있어야 했던 그에게는 누나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친구가 되어주었었다. 그런데 지금 누나가 외출하자 그는 왠지 모르게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는 오랫동안 잊었었던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 저는 남들처럼 마음껏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사람들이 입술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저는 그들이 무엇을 먹는 줄로만 알았어요. 서로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어떤 말을 했기에 그런지를 몰랐어요. 제게 보이는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고,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느리게 움직이기도 하는 것만이 저의 마음을 흥분하게 했어요. 그러나 향기로운 냄새가 저를 즐겁게 해 주었어요. 식구들이 뭐라고 중얼거릴 때마다 나뭇가지에 앉아 조잘대는 새들처럼 늘 그런 줄로만 알았어요. 어미 개가 새끼 강아지에게 하듯이 저는 어머니가 제게 그렇게 하는 줄로 알아차리고 늘 웃음으로 제 마음을 보여주었어요. 제가 웃으면 어머니도 밝은 표정을 지으시곤 하였지요. 세상에 언어가 있다는 것을 저는 몰랐어요. 누나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저는 사람들이 서로 말한다는 것을 몰랐을 거예요. 또한 세상 사람들이 글자를 사용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제가 여러 나라의 글을 읽고 글로 제 생각을 전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비록 소리는 듣지 못하여도 다른 방식으로도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어머니가 제게 뭔가를 전하고 있다는 것도 어머니의 가슴에서 느낄 수가 있어요. 어머니는 제가 말 못 하는 것을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어머니의 표정과 가슴에서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어머니, 저는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어요. 늘 미안해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저는 괜찮다고 밝게 웃어주었어요. 제가 말을 할 수 있더라면, 이처럼 어머니의 셈세한 표정과 감정을 알 수 있었겠어요? 저는 세상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부분들을 보고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입술만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저는 새들이 조잘대는 표정만 보아도 새가 뭐라고 하는지 알고 있어요. 누나랑 산에 갔을 때마다 나무와 풀들이 말하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뭐든 가만히 살펴보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닫게 되어요.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도 어머니가 저를 가엽게 여기시는 마음을 잘 알아요. 그래서 저는 외롭지 않아요. 해외에도 친구들이 많아요. 세계의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지 않아요? 어머니, 이젠 마음을 편히 하시고 즐겁게 살아가요.”


철민은 어머니의 가슴 품에 파묻힌 채로 이렇게 속삭이듯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철민은 속마음으로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이런 철민의 마음을 아셨는지 철민을 꼭 품어 안고는 중얼거리며 말을 하였다.

“얘야, 너의 착한 마음을 어찌 엄마가 모르겠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너와 내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기뻐했을 거야. 지금쯤 땅속에서도 우리들을 지켜보고 계시겠구나. 어쩜 너와 누나가 이 어려운 시기에 절망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로선 너무나 흐뭇하고 기쁘단다. 이제 시집 장가갈 날만 남았구나. 그러나 너희 둘이 너무나 의형제같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누가 떼어놓을까 하는 걱정도 된단다. 자, 우리 과일이나 먹을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시고는 어머니는 철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과일을 먹자는 말을 하니 철민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었다. 어머니는 철민을 마루 중앙에 있는 탁자로 데리고 가서 앉게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곧 과일과 차를 준비하려고 부엌으로 가셨다. 철민은 어머니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활짝 마루의 문을 열어놓아 마루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훗훗하였다. 마룻바닥에 덜렁 누워버린 철민은 천장에서 돌고 있는 대형 선풍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간간히 더위를 잊게 해 주었다.

어머니는 시원한 주스와 토마토 화채를 만들어서 큰 그릇에 담아 오셨다.


“애야, 이젠 제법 더워지려나 보다. 공기가 제법 후끈하구나.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토마토 화채를 해왔다. 어서 먹으렴.”


아들이 듣거나 말거나 그렇게 말하고는 아들 옆에 와 앉았다. 어머니는 작은 유리그릇에 토마토 화채를 얼음과 함께 담아서 철민이 앞에 놓아주었다. 후루룩 숟가락으로 화채국을 떠 마시는 철민은 어머니도 드시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래, 맛이 어떠냐? 오랜만에 토마토 화채를 먹어보는 것 같구나.”


그렇게 또 혼자 말하듯이 말하시고는 어머니도 한 그릇 화채를 담아 드셨다. 늘 그렇듯이 철민은 어머니가 해준 화채를 매우 맛있게 먹었다.


“더 해주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철민은 괜찮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렌지주스를 훌쩍 들이마신 철민은 두 다리를 쭉 뻗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간혹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있었지만 철민은 인기척만으로 알았다. 그리고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부산 떠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탁자를 밀어내고는 철민의 옆에 와 앉았다. 철민은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얹으며 나무새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다가 사르르 눈이 감겼다. 철민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철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철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보, 이 아이가 이렇게 컸어요. 어릴 적에는 왜 말을 하지 않는지 모르고 그저 말이 적은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 못 하는 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얼마나 가슴이 메고 걱정도 많았습니까? 장애인 학교에도 보내지 못하고 방구석에만 처박혀 지냈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하게 보이네요. 그런데 이제는 제법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 내고 있어요. 아니 정상인 보다 훨씬 더 능력 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동생이라고 성숙이가 얼마나 이 아이를 위해서 애썼는지 몰라요. 그 달동네에서 공기 맑은 덕릉네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애들은 동해바다가 보이는 강원도 후진항 바닷가에다 좋은 집을 짓고 거기서 일을 한답니다. 당신이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보, 고생고생하시다가 아이들이 다 장성한 모습도 보지 못하고 가셨어요. 오늘은 성숙이가 친구들 만난다고 시내로 갔고, 저와 철민이랑 함께 있어요. 이렇게 제 무릎에 누워 자는 모습이 어쩜 당신을 빼닮았을까요.”


철민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조용조용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이 든 철민의 손목에서 시계가 진동을 하면서 불이 반짝반짝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누가 메일을 보냈구나 하면서 철민을 깨웠다. 고새 깊이 잠이 든 모양인지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피는 철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 뚜껑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철민아, 누나다. 친구들이 너를 보고 싶다고 하는구나.”

“응, 집으로 오라고 해! 어머니께 인사도 드릴 겸.”


철민은 간단하게 답장을 시계의 자판을 쳐서 보냈다. 어릴 적에 누나의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집에만 있는 철민을 가엽게 생각하면서도 귀여워해 주었다. 그때마다 철민은 맛있는 빵이랑 과자를 먹을 수가 있었다. 누나의 친구들이 사다 준 것이었다.

고새 어머니는 마당에로 나와 화단에 물을 주고 계셨다. 이젠 해가 중천을 지나가고 있었다. 따사한 햇살에 채소들이 모락모락 잘 자라고 있었다. 나무들도 신바람이 났는지 짙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나부끼었다. 담장 옆에 자리한 장독대에는 장독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고풍을 자랑하듯 으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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