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모세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완전히 닮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 그리스도 이후에는 믿음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대가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을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롬 10:9)
예수 그리스도는 멀리 계시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바로 내 마음에, 내 입에, 내 귀에, 내 눈에 계신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 예수님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 율법은 이미 완성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의 생애와 그 모습을 마음에 담고 생활하면서 늘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함께 하는 삶이다.
<거꾸로 읽는 신약성경/정영식 지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모세의 율법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으며, 인간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선민인 유대인들은 제사예배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율법으로 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분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주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모세의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됨과 구원이 이루어졌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이 완성되었음을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다시는 율법의 제사는 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것이다.
다시 읽어보면서,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믿는 자에게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말한,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베전 1:16)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말이다.
조선의 유교사상으로 ‘거룩하다’이라는 의미를 해석한다면, 왕 같은 존엄한 자나 양반의 체통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에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점잖은, 교양 있는, 품위 있는 등등…….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이라면 타인에게 거룩한 품행을 보여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로운 행위나 교양 있는 행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강조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문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10)
여기서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이며, 일획일점도 틀림이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거룩하라 하는 것은 일획일점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에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한 자,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예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 거룩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 이어야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단순히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거룩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자신과 예수님을 속이는 것이 된다. 그래서 양과 염소는 둘 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던 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염소는 거룩한 믿음이 아니었고, 양은 거룩한 믿음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란 거룩한 믿음을 가진 자란 것이다. 온전한 믿음은 거룩한 믿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