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니고데모와 대화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60. 니고데모와 대화


예수님이 유대인의 관원이며, 구약의 유력한 교사인 니고데모를 대하신 방법을 살펴보자. 바로 그 사람의 가장 깊은 필요의 핵심을 찌르신 것이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 3:3)

이 말씀을 받아들이든지 버리든지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방법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오직 성령님만이 각 사람의 가장 필요한 부분을 아시며, 우리가 궁핍한 영혼들과 만나는 순간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정말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신다. 완전히 초자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내가 닮고 싶은 예수/조이 도우슨 지음>


학식 있는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신 예수님은 단순하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말씀을 나누셨다. 이보다 더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는가?

‘거듭나다’란 뜻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는지? 머릿속에 기억됐다고 아는 걸까? 그 영혼이 진정 깨달았을 때에야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이지. 인식하는 것과 인지하는 것은 하늘땅 차이다. 거듭남은 인식의 변화요. 그 영혼의 깨달음인 것이다. 오직 성령만이 거듭남을 도우신다.


다시 읽고 다시 깨달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와의 대화에 대한 설교는 참으로 많이들은 부분이다. 그러나 얼마나 깨달았을까? 그 당시 예수를 따라다녔던 무리들, 유대인들을 포함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받아들였을까? 깨닫기 전에 먼저 받아들였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주변에, 이웃과 대화, 친구와 대화, 가족과 대화, 그리고 지인들과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대화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주창 열변을 토하는 대화를 많이 보았다. 또는 받아들임에 따라 편을 가르고, 차별하고, 적대시하고, 공격하고, 살인까지 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상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인다거나, 알겠다고 하는 의미는 참 깨달음은 없고 동조하거나 공조한다는 공생의 원리에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공생의 원리는 철저한 진화론적 사상에서 파생된 진화론적 사회성인 것이다. 즉 자연생태계의 표면적 현상만을 인식하여 구축된 사상인 것이다.

실제로 자연계에 공생(共生)과 상생(常生)은 창조주의 창조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이다. 즉 공생과 상생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생과 상생은 관계적인 섭리인 것이다.

따라서 니고데모가 예수께 질문한 것, 예수님은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거듭나지 않으면, 이는 근본이 변화되지 않으면 함같이, 삐뚤어진 것이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좌사고(左思考)에서 우사고(右思考)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사고(正思考)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직함인 것이다. 정직함, 진실함, 의로움 등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 주어야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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