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소설(이하늘의 인생론)]
1. 어머니의 묘소
어느 날 미루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은 신작로를 따라 하얀 경차가 달리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 자동차 안으로 싱그러운 봄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새소리가 광일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산길을 굽이굽이 달리던 자동차는 한 고개 두 고개를 돌고 돌아 언덕 위에 멈추었다. 자동차에서 내린 광일은 눈앞에 탁 트인 산 아래에 작은 마을들을 바라보았다. 그때에 하늘 높이 솔개 한 마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다시 광일은 우측에 보이는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며 잣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광일은 숨을 크게 내쉬더니 잣 향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100미터쯤 되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팔십 평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언덕에 아담한 무덤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는 잔디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광일은 무덤 앞에 있는 비석을 손수건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닦았다. 비석에는 ‘어둠의 사십 년’이라고 크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이하늘의 묘’라고 새겨져 있었다. 광일은 어머니 무덤 위에 있는 잡초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정성껏 뽑아내었다. 광일은 무덤 앞에 서서 잠시 어머니의 묘를 바라보더니 비석 앞에 무릎을 끊고 성경책을 꺼내어 펴서 말씀을 소리 내어 읽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베드로전서 1장 16,17)
광일은 다시 비석의 뒷면에 적힌 글씨를 맨손으로 닦으며 소리 내어 읽었다.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장 17절)
그리고 광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덤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하였다. 한 번도 광일이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였던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잘 알기에 더욱 크게 광일은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광일은 어머니 무덤 옆에 잔디 위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잔디 위에 드러누워서 팔베개를 한 채로 남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참으로 푸르렀다. 하얀 뭉게구름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광일은 뭉게구름들을 바라보면서 작은 소리로 뭉게구름의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이 땅의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그러자 언뜻 광일은 어머니의 모습처럼 보이는 구름을 발견하고는 그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어머니…….’ 하고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광일아~”
그러자 어디선가 광일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광일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잣나무 숲에서 불어와 광일이의 얼굴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광일은 혼자 중얼거리며 사람 앞에서 말하듯이 말했다.
“그래, 어머니의 마음인 거야~ 아니 어머니의 향기였어. 지금 내 곁에 와 계신 거야. 어머니~”
그토록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래서 잣나무 숲에서 나를 불렀던 거야 하고 생각한 광일은 잣나무 숲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광일은 다시 팔베개하여 누우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보듯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광일은 스르르 눈이 감기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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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일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니, 어머니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계셨다. 광일은 기쁜 마음에 살며시 어머니께로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움찔하며 손을 안으로 당겼다. 다시 광일은 어머니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얼굴에 대주었다. 그때에 어머니는 아들의 냄새를 맡고서야 아들인 줄 알고는 손을 뻗어서 광일이의 얼굴을 조목조목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광일이도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있었다. 부엌에서 할머니가 나오셔서 두 사람을 바라보시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광일이도 어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광일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는 어머니는 종종 거실로 나와 앉아 계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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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에는 광일이가 없을 때에 어머니는 점자로 된 성경을 읽고 계시기도 하고, 또는 점자타자기로 성경 말씀을 치시기도 하셨다. 광일의 어머니는 소리 내어 성경을 읽지는 못하지만, 성경 말씀을 거의 기억을 하고 있었다. 광일은 어머니가 책상에 앉아 점타 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광일이 나이가 겨우 11살인데도 어머니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말을 못 하고 듣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어머니를 광일은 더욱 사랑하였다. 마치 여동생을 보살피는 마음처럼 광일은 어머니를 아끼고 보살펴주고 하였다. 그래서 광일은 다른 아이들처럼 철없는 시절이 없었다. 광일은 일찍이 어른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두 살까지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그러나 세 살부터는 어머니가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어머니를 도와주며 자라온 광일이었다. 항상 어머니 곁에 있어서 심부름을 하였다. 물을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실 때에는 이끌어주었고, 옷을 찾을 때에는 가져다 드렸다. 그렇게 광일은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와드렸다. 광일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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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화창한 봄날이었다. 광일은 어머니를 이끌고 집을 나서서 가까운 공원에 갔다. 마침 5월이라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였다. 광일은 어머니와 함께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조용했다. 해가 기울었지만 아직은 땅거미가 내리지는 않았다. 그때에 어머니가 광일이의 손을 잡고는 어머니 코에 가져가며 손으로 뭐라고 말하는 듯했다. 광일은 곧 눈치를 채고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카시아 꽃 한 송이를 따서 어머니의 코에 가까이 댔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쁜 표정을 지으시며 꽃을 어르마지셨다. 다행히 어머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에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신 것이었다. 그러자 광일은 아카시아 꽃을 한 아름 따서는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그 꽃을 꼭 잡고는 광일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광일은 꽃병을 찾아 드렸다. 어머니는 손수 꽃병에 물을 채우시고는 아카시아 꽃을 꽂아서 방안에 탁자 위에 놓으셨다. 어머니의 방안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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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난 광일은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의 비석을 어루만지고 나서야 어머니의 무덤을 떠났다. 산에서 내려온 광일은 자동차를 타고 다시 신작로를 따라 달렸다. 운전하면서 광일은 잠시나마 꿈속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었다. 운전석 옆 자리에는 어머니가 쓴 ‘어둠의 사십 년’이란 책이 놓여 있었다. 광일은 그 책을 바라보았다.
자동차는 신작로를 벗어나 넓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자동차는 한 시간을 달리고서야 어느 작은 연립주택 앞에 멈추었다. 광일은 연립주택의 1층에 있는 101호로 들어갔다. 광일이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었다.
“할머니, 저 다녀왔어요.”
“우리 광일이 수고했구나. 어머니는 잘 계시더냐?”
할머니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셨다. 광일의 소리를 듣고 잠시 성경을 덮고는 광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광일은 곧바로 할머니 옆에 다가가 앉았다.
“어머니는 잘 계셔요. 그런데 어머니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정말 네 어미가 널 부르더냐?”
“그럼요, 제가 어머니 무덤 옆에 누웠거든요. 그리고 하늘에 어머니 모습의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에 뒤에서 절 부르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래? 네가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였구나! 그러니 어미도 널 보러 찾아왔나 보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향긋한 냄새도 맡았거든요.”
“허허……. 너는 좋겠다. 그래 어머니가 뭐라더냐? 이 할미 얘기는 없더냐?”
“거봐~ 할머니도 제 말을 인정하잖아요.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래그래, 네 어미가 세상을 떠난 지가 벌써 3년이 되었구나. 다음엔 이 할미도 데려가주렴.”
“정말요? 당연히 모셔가야죠. 어머니도 좋아하실 걸요.”
“뭘 먹었니? 배고프겠구나.”
“생각해 보니 배가 많이 고프네요.”
“알았다. 나도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할머니는 소파에서 일어나 성경책을 소파 위에 놓고는 부엌으로 가셨다. 광일은 소파에 놓인 성경을 바라보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책상 앞에 어머니 사진을 들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머니, 왜 일찍 가셨어요. 제 곁에는 어머니의 자리가 아직도 비워있는데요. 세상사는 게 그렇게 힘드셨나요?”
광일은 어머니 사진을 어루만지면서 그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광일이의 어머니는 스무 살에 광일을 낳았다. 그리고 이십 년을 광일이와 살았었다. 물론 광일이의 아버지는 항공사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광일의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더 많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은 너무나 기적적이었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