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한 3:19)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깨어 있어라” 하셨다. 거듭난 사람은 빛 가운데 있고 진리를 좇아 산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들은 시대를 분별할 줄 알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선한 길을 간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탐욕으로 사는 자들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거듭난 자들이 아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바리새파의 시상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을 보고서 믿었을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인 것이다. 거듭 말하면,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온전한 삶이란 특별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가장 평범한 삶이다. 간디도, 석가도, 노자도, 그들은 온전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거듭난 자라야 온전한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이 이 땅에 왔다는 것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을 인정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을 세워 하나님의 자리에 앉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멸시하거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멸시하는 행동은 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온전한 삶은 거듭난 삶이요, 즉 거듭난 삶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라 너희가 자유케 된다/ 최희원 글/ 정문사>
‘거듭나다’라는 말에는 엄청난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새 사람이 돼라, 난 새 사람이 됐다네, 난 변했어! 난 이전과는 달라졌어! 난 옛사람이 아냐! 하는 말을 쉽게 사용한다. 그러나 ‘거듭나다’라는 것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좌에서 우로, 과거에서 현재로, 또는 시대적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을 표현할 때에 잘 쓰는 말들이다. 이러한 달라졌다는 것은 변화되었다는 말일뿐이지, 본질은 변하지도 달라진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또다시 변할 수 있고,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나다’라는 것은 근본이 변했고, 본질이 달라졌기에 딴 존재이거나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므로 다시 거듭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말하는 모태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인가요? 또는 회귀(回歸)되어야 하나요? 그 정도로만 이해를 했다. 이런 니고데모적인 인식은 니체의 영원회귀론(永遠回歸論 - 시간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된다는) 사상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힌두교적 윤회 사상으로 전생과 내생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가들은 모두 인본주의와 진화론에 바탕을 둔 사상들이다. 그러므로 무신론적이며, 자연론적 인간관으로 회귀사상을 이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니고데모로썬 예수님이 말한 ‘거듭나라’는 것에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물며 예수님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어도 이해하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이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거듭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모태에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라고 반문했을 때에도 좋은 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모태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모두 자의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이 의도한 대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하나님의 창조한 피조물 중에서, 가장 하나님의 사역에 동반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을 수많은 역사 속에서 학대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이란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한 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너희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될 것을 말한 것이었다. 즉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물로 세례를 받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근거한 회심인 것이며,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의 의지에 근거한 은총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듯이, 새 사람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거듭난 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요한 3:16)의 말씀을 명확히 깨닫고 믿게 된 자인 것이다. 즉 이런 사람을 진리를 아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들, 그들의 죄는 무엇일까?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요한 3:19)
이래도 진리를 모르겠는가? 거듭나야 아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어둠을 미워하며 빛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어둠의 문화와 빛의 진리가 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적고, 대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라고 조선의 선비들의 행태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조선 오백 년은 암흑의 시대였던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