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과학 스토리]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창 1장 1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공간에 빛들이 생겨 낮과 밤을 나누고, 절기들과 날짜들과 연도들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게 하라. 그리고 그것들이 하늘 공간의 빛이 돼 땅에 비추게 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 두 개의 큰 빛을 만드시고 그 가운데 큰 것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것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한 별들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공간에 두셔서 땅을 비추게 하고, 낮과 밤을 다스리고 빛과 어둠을 나누게 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넷째 날이었다.』(창 1:14~19)
실제로 뉴턴의 최대 업적은 운동의 기본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그리고 이것들에 의해서 지상의 물체의 운동도, 행성의 운동도 또 핼리혜성과 같은 혜성의 운동도 모두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근대역학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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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키피아』의 첫 부분에서 뉴턴의 운동, 즉 물체가 공간 속에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그 위치를 바꾼다고 하는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전제가 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각으로부터는 독립된 무한하고 균일하며 연속적인 「절대적인 시간」과 「절대적인 공간」이어야 한다고 미리 일러두고 있다. 당시에 이와 같은 인간의 감각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시간」이라든가 「절대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적이고 보편적이며 부동한 절대자로서의 기독교의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라고 연구자는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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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물체(행성과 혜성)는 실은 단지 인력의 법칙만에 의해서 그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 법칙으로부터 궤도의 규칙적인 위치를 최초에 스스로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 이 참으로 아름다운 태양과 행성과 혜성의 체계는 지혜와 힘으로 충만하신 존재자의 계획과 지배로부터 서만 태어날 수 있다. … 그는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전능하고 전지 하시다. 즉 그의 지속은 영원에서부터 영원으로 걸쳐지고, 그의 존재는 무한에서부터 무한에 미친다. 그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시고 무릇 존재하는 것, 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신다. … 그는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어디에든지 계신다. 그리고 항상 또 어디에 건 빠짐없이 존재하심으로 그는 지속(시간)과 공간을 설정하신다. … 지고(至高)하신 하느님이 필연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은 모든 것에 의해서 인정된다. 그리고 이 필연성에 의해서는 그는 항상 이렇게 어디에든지 빠짐없이 존재하신다. …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를, 그의 참으로 현명하고 뛰어난 사물의 구조와 궁극인(窮極因)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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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까지 나는 중력(만유인력)의 이들 여러 가지 성질의 원인을 현상으로부터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 우리에게 있어서는 중력(만유인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가 밝힌 법칙에 따라서 작용하고, 천체 및 우리의 바다의 모든 운동을 설명하는 데서 두드러지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서 충분하다.”
여기서 뉴턴은 만유인력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밝힌 수학적인 여러 법칙, 즉 운동의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서 천체의 운동도, 지상 물체의 운동도, 조석의 간만도 모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 뉴턴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만유인력의 원인, 만유인력이 어떻게 하여 전달되느냐고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모색해 왔지만, 도저히 그것을 밝힐 수가 없어, 내심으로는 그것을 하느님의 직접적인 작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연구자는 지적하고 있다.
<과학자와 기독교(갈릴레이에서 현대까지)/와다나베 마사오 글/오진곤과 손영수 역/전파과학사>
세상에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인류는 이런 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문명을 이루어갔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자들은 크게 두 분류로 생각할 수가 있겠다. 첫째 부류는 니므롯의 사상, 즉 인본사상과 진화론 이념에 기초한 과학적 지식들이라고 생각되며, 둘째 부류로는 로마기독교, 즉 천주교적 사상에 기초한 과학적 지식들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다. 아이작 뉴턴의 시대는 1643년에서 1727년으로써, 성공회와 청교도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니깐 뉴턴이 태어나기 전에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 갈릴레이와 케플러 이후에 영국의 성공회의 기독교적 신앙에서 자란 뉴턴은 어느 정도 종교와 과학의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활동한 과학자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자연과학(주로 만물의 과학)과 행성운동(우주과학)에 화제가 되었던 때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때에 뉴턴의 신앙관은 그의 고백에 의하면 매우 성경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는 진화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설적 과학론을 배제한 직설적 과학론을 주장하는 과학자였다. 뉴턴은 아인슈타인과 같이 매우 직관적이며, 사고(思考)의 자율성을 가진 과학자라고 하겠다.
그는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한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았고,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영향에도 많은 부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는 흑사병으로 휴학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깊은 생각들을 정리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만유인력과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 놀라운 이치를 깨달아 과학계에 획을 긋게 되었던 것이다.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에 대해서 살펴보면, 성경책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과정에서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힘(POWER)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생각을 나누기를 바라며, 그는 절대적 시공간을 전제로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역시 이는 태초에 가장 먼저 창조자가 빛을 있게 함으로써, 시공간이 드러났으며, 여기서 일반적으로 시간은 흘러가는 이미지로 보고, 공간은 존재적 의미를 가졌던 것이 오늘날에 과학자들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좌표처럼 고정되었고 설정되었다고 본다. 반면에 공간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 즉 공간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유동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우선 뉴턴의 운동법칙의 이해로써,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곧 힘인 것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이라는 놀라운 해석을 했다. 즉 만물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영향과 유지에 작용한다는 것을 뉴턴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절대적 시공간으로 이해를 했으며, 절대자의 지혜와 뜻으로 계획되었으며 지배받고 있다고 뉴턴은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창조적 관점에서 바라본 자연만물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유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원리를 뉴턴은 운동의 법칙으로 설명을 했다. 첫째로는 관성의 법칙인 것이다. 다음은 가속도운동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성서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1. 관성의 법칙이란 만물에는 항존(恒存) - 어떤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안정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로써 자연만물의 안정성과 생존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관성이 사라진다면, 안전성과 생존성에 엄청난 불편과 불안을 야기케 되어 존재의 변화가 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만물에만 아니라 생물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섭리를 하나님은 두셨기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2. 가속(도) 운동의 법칙이란 물체의 운동 상태를 드러내는 법칙으로써, 만물 속에 힘이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만물에는 약간의 가속운동이 존재한다. 만일에 가속운동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만물에는 고인 물이 썩듯이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의 좌표에서 자연의 순환이나 변화와 성장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한과 무한의 인식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에 의한 가속운동, 자동차나 비행기, 로켓이나 그 외에 여러 가지 인위적 가속운동 등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창조자가 만든 만물에는 가속운동이 위험보다는 성장과 조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천체의 운동은, 지구의 회전운동도 등속운동이 아니라 가속운동인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바로 관성의 속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3.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란 만물에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고 해도 일방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이치인 것이다. 만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공짜를 싫어한다.’는 유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힘에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힘의 조화가 필연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열차를 타고 달려도 평안함, 그리고 유일한 지구의 대기압 속에서도 전혀 압력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도 바로 작용과 반작용의 평형상태에 있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대기의 압력과 인체의 압력이 평형을 유지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뿐만은 아니다 자연을 둘러보아도 전혀 힘에 의한 변화가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느끼는 것도 바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가 주는 힘의 균형, 평형성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기보다 더 압력이 큰 물속에서도 물고기는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도 역시 놀라운 이치가 아닌가? 물속에 사는 물고기와 물의 압력의 평형을 유지되기 때문인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한다면, 관성력과 가속운동과 작용과 반작용의 원칙을 발견한 뉴턴은 매우 놀라운 과학자이다. 그런데 뉴턴은 말하기를, 바다 해변에 모래사장에서 하나의 조개를 발견할 뿐이었다는 것이 아닌가? 매우 겸손하다고 할지 모르나, 뉴턴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서 매우, 극히 작은 부분만을 이해했을 뿐이지만, 인간에게는 얼마나 자연을 이해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인간은 단지 이런 자연의 원리를 매우 일부분만을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하기 때문에 인간세상은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지식인들은 말하기를, 인간의 문명에 의해 종말이 올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