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소설(이하늘의 인생론)]
하늘이가 임신한 지 30주가 넘었다. 오늘은 하늘이가 스무 번째 맞는 생일날인 5월 10일이었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하늘이 잠옷차림으로 거실로 나와 소파에 홀로 앉아있었다. 아직 부모님도 강인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서히 밝아오는 창가에 깊숙이 들어온 햇살을 받으며 하늘은 얼굴을 창가로 향했다. 그러나 하늘에게는 여전히 어둠뿐이었다. 아침부터 참새들이 창밖에 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았다 날고 다시 날아와 앉았다. 이제 하늘이도 배가 많이 불렀다. 조금 힘든 듯이 하늘은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셨다.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 하늘을 보자 어머니는 하늘에게 다가가 곁에 가만히 앉아 하늘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때 하늘은 그 손을 만져보며 어머니임을 곧 알았다. 그리고 하늘은 어머니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얼굴을 어머니께 기대었다. 어머니는 그런 하늘이 어깨를 팔로 안아주었다. 그러던 어머니는 하늘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왼손으로 옷소매를 당겨서 하늘이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하늘이의 얼굴을 당겨 가슴에 품었다. 그렇게 하늘은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힌 채로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어머니도 이런 모습의 하늘을 생각하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면서, 왜 일찍 일어났으며, 왜 홀로 앉아 눈물을 흐리고 있을까, 어머니의 생각을 끝없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강인이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하늘이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본 강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꼼짝 않고 서있었다. 어머니와 하늘은 강인이가 거실로 나와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아버님도 방문을 열고 나오셨다. 거실의 분위기가 엄숙할 정도로 가라앉은 느낌을 받은 아버님은 강인을 가만히 이끌고 세면실로 들어갔다. 세면실로 들어온 두 사람도 별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먼저 간단하게 얼굴을 씻고는 강인에게 툭 치며 세수하라고 했다. 강인이도 간단하게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거실로 나왔다. 아버님과 강인은 조심조심 하늘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어머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하늘을 품었던 팔을 풀고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하늘은 아버지와 강인이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자 하늘이 곁에 앉아 있던 강인은 점자판으로 하늘에게 말했다.
“여보, 어디 몸이 안 좋아요?”
“아니에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사람을 주시하여 보고 있었다. 강인은 또 점자판으로 말을 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군요.”
“네.”
“꿈자리라도 안 좋았어요?”
“아니에요. 소리를 들었어요.”
“무슨 소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정말? 무슨 소리지?”
“제가 아직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에 들었던 소리였어요.”
강인은 하늘이 어머니께 하늘이 말하는 것을 전했다. 하늘이 아버지도 곁에서 들었다. 어머니 태중에서 하늘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대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임신 중에 자주 태아에게 음악도 들려주고 대화도 하곤 했었다. 그때가 바로 지금 하늘이의 임신시기와 비슷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태아교육을 위해 기도할 때에도 손을 배에 대곤 했다. 성경을 소리 내어 읽으며 태중에 아기에게 들으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늘은 그때에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점자판으로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그때에 어머니는 저에게, 아가야~ 일어났니? 아침이란다. 그렇게 말했지요.”
어머니도 점자판으로 하늘에게 대답을 했다.
“그래, 매일 아침이면 그렇게 말했지.”
“그뿐 아니죠. 지금 해가 떠오른단다. 또 지금은 해가 지고 있단다.”
“그랬지.”
“그리고 식사할 때마다 이것은 무엇이란다.”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는구나.”
“예, 다 기억나요. 성경말씀도 또박또박 읽어주셨어요.”
“그래 그랬지. 효과가 있었구나.”
지금도 어머니는 하늘이랑 점자판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여 하늘이 아버지와 강인이도 들으라고 하였다.
“어머니, 지금도 가끔 제가 어머니 배속에 있는 건가 할 때가 있어요.”
“아~그랬구나. 하늘에게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으니…….”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가 저는 매우 편안했어요.”
“그래, 그래.”
옆에서 듣고 있는 아버지와 강인은 숨을 죽이고 둘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하늘이의 말을 너무나 공감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도 꼭꼭 말해주었지요.”
“그래야, 빨리 부모의 이름을 알까 해서지.”
“아버지의 이름은 이원웅(李原熊), 어머니의 이름은 강덕신(姜德信).”
“그렇지, 똑똑했구나.”
“어머니가 늘 부르시던 찬송도 알아요.”
“찬송?”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그래~ 맞아!”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허허~”
하늘이 아버지도 강인이도 감탄을 했다. 그리고 놀라워했다.
“지금 전 제 아기에게도 어머니처럼 하고 싶어요.”
“그러면 좋지.”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한담?”
이때에 강인이가 끼어들었다.
“어머니, 병원에 의사 선생님께 상의를 해보면 어때요?”
아버지도 곁에서 듣다가 끼어들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전화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예.”
강인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어머니께도 전화로 오늘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자고 말했다. 하늘은 또 놀라운 고백을 했다.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에는 밖에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번 들은 것은 잊지 않았다고 했다. 반복 들은 소리는 차츰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태교를 중요시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은 태중에 태아는 지능이 제로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편견적 생각이었다. 이제 하늘이가 식구들에게 고백한 내용을 본다면 놀랄 것이다. 다시 하늘은 점자판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에는 특히 어머니의 소리를 너무나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어요.”
“대화의 소리를 들었고, 걷는 소리와 문 닫는 소리 등도 들었어요.”
“특히 어머니가 찬송을 부를 때와 기기에서 나는 음악소리도 들었어요.”
“또는 어머니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기억을 했어요. 그 맛을 기억했어요.”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갑자기 작은 구멍으로 머리가 빨려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강한 압박을 받으면서 정신을 잃었어요.”
“그런 후에 어두운 우주 공간에 놓인 듯했어요.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어요.”
“볼 수가 없었어요. 제 눈에는 어둠뿐이었어요.”
“그러다 무엇인가 내 몸에 닿았어요. 그리고 무슨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어요.”
“제 입으로 무엇인가 들어왔어요. 저는 힘껏 무엇인가를 빨았어요.”
“제 배속에 채워지자 안정이 되었어요.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았어요.”
“점점 저는 나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차츰, 제가 태중에 있었던 분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 저는 제 배속에 아기를 보는 듯 느껴져요.”
“제 아기도 저처럼 느끼고 듣고 생각하고 할 것 같아요.”
하늘은 자신이 태중에 있었던 때에 가졌던 느낌들을 말했다. 하늘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강인이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강인은 하늘이가 왜 이러한 말을 하려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하늘이 어머니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깊이 하늘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늘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하는지 아셔요?”
“그래, 나의 태중에서 우리 하늘이가 어떠했는지를 알 것 같구나.”
어머니는 놀람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끄덕이며 말했다. 하늘이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글쎄, 남자로서는 이해할 수가 있나?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강인은 멋쩍은 듯이 태도를 취하면서 중얼거렸다. 하늘은 잠시 보이지 않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하늘이 손을 잡아주었다. 또 하늘이의 다른 손을 강인이가 다가와 잡아 주었다. 하늘은 두 사람의 손을 잡은 채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하늘은 다시 손을 놓고 점자판을 들었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와 나왔을 때의 아기는 다른 것이에요.”
“무슨 뜻이지?”
어머니가 되물었다. 강인은 점자판으로 어머니의 말을 전했다. 하늘은 다시 점자판으로 말했다.
“그러니깐, 태중에 세상과 밖에 세상이 다르다는 것이에요.”
“그렇겠지.”
어머니는 응대를 했다.
“이제 저는 다시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될 거예요.”
“그럼 인생은 삼단계인 건가?”
강인은 조금은 이해하는지 되물었다.
“맞아요. 사람은 태중에 있을 때와 세상에 나왔을 때와 그리고 세상을 떠났을 때로 나뉘어요.”
“그러니깐, 하늘이 말은 태아가 태어났다는 것은 자궁 속에 있을 때와 밖으로 나왔을 때는 구별된 다른 세상이란 거니?”
“예, 그래요. 태중에서 나올 때에 잠깐 죽었다가 깨어난 거죠.”
“어머니, 알고 계셨어요?”
강인은 점자판에 하늘의 말을 보고는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을 했다.
“글쎄, 태중에서 아기가 나오면 의사는 아기의 엉덩이를 때려주지……. 그러면 아기는 앙~ 하고 울면 살았다고 하고 울지 않으면 죽었다고 하는 것 같아요.”
“음……. 하늘이 말이 맞는 거네?”
“그런데 그 순간 깨어났을 때 세상이 달라진 거란 말이지.”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하자 어머니도 수긍한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렇지, 달라졌지.”
“저는 아니었거든요.”
하늘이가 강인을 통해 점자판으로 대답을 하자 이때에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랬구나. 울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었다는 것을 의사도 저도 몰랐지. 단지 아기가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밖에…….”
“저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어요. 그래서 태중에 일들을 기억한 거예요.”
“그럼 다른 아기들은 태중에서 나오면서 태중에 일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거군.”
강인이가 하늘의 말에 그렇게 대답을 하자 하늘은 강인이 쪽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듯이 취하면서 말했다.
“맞아요. 제가 고백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거예요.”
“왜 갑자기 그런 고백을 하려 해?”
“주님이 말씀을 주셨어요. 나의 심정을 말하라고…….”
그러자 하늘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강인이도 주님이 그리하라고 했다는 말에 크게 놀라며 하늘이의 말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늘은 곧 아기를 낳게 될 텐데 많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식구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하늘은 자신의 배속에 아기가 자기처럼 태중에서도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기에게 무엇인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늘은 태중에 아기처럼 소리를 듣고 싶어 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따라 이 아침에 거실로 나와 홀로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러한 심정을 식구들에게 고백한 것이 아닐까. 잠시 시간이 흐른 후에 강인이가 입을 열어 말했다.
“하늘이의 소망은 태중에 아기에게도 무엇인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때에 어머니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하지? 하늘은 말할 수도 없으니 말이에요.”
“음악은 틀어주면 되겠는데……. 어떤 말을 해주려나?”
하늘이 아버지가 고민하시는 듯이 말했다. 강인이가 이어서 대답을 했다.
“제가 내일 녹음기를 사 오겠어요. 그걸로 녹음해서 들려주면 어떨까요?”
“이왕이면 하늘이와 어머니가 음성이 비슷하니 어머니가 대신 아기에게 자주 말을 해주면 좋겠구먼.”
하늘이 아버지가 보태어 말했다. 어머니도 좋은 생각이라고 고개를 끄떡이셨다.
“그리고 성경말씀은 낭독하는 테이프를 팔아요. 그것도 사 오겠습니다.”
“그것 좋네. 가끔 우리도 성경을 읽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버지가 의견을 제시하셨다.
“네, 좋아요.”
강인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점자판으로 하늘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하늘은 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강인이 품에 안기었다. 강인이도 하늘을 꼭 안아주었다. 그때에 하늘이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아침식사를 위해 준비하려 부엌으로 갔다. 하늘이 아버지는 곧바로 에프엠 라디오에 맞춰 음악을 틀어주었다. 거실 내에 음악이 잔잔히 흘러 퍼졌다. 하늘이와 강인이는 서로 기대어 감싸 안고 앉은 채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니 하늘은 들을 수가 없었고 강인이와 태중에 아기는 듣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