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 죄 없는 자가 먼저 쳐라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17. 죄 없는 자가 먼저 쳐라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돌아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으며,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요한 8:6~9)[표준 새 번역]

------------ Bible -----------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뜻을 이루려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잘 아셨다.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아무렇게나 행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행하셨던 것이다. 그 후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다가 다시 성전으로 오셨다. 때때로 예수님은 산으로 가신다. 새벽녘이거나 저녁에 산으로 가신다는 구절이 나온다. 예수님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으시다. 군중에 있을 때에도 그는 홀로 산으로 가시거나 한적한 곳으로 피신하신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때때로 세상에 살면서 일에 시달리다가도 종종 조용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 생략 -----------

성전에 이르렀을 때에 백성들이 모여들어 예수님은 자리에 앉아 그들을 가르쳤다는 것은 오랫동안 말씀을 주시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른 아침에 간음한 여인을 잡아 데려왔다. 이는 처음부터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는 “모세의 율법은 이러한 여자를 돌로 쳐라 하였다. 너는 어떻게 하려느냐?” 이런 식이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예수님이 이러한 인간의 속마음을 모르겠는가? 예수께서는 그들의 심리를 이용하셨다. 조용히 땅에 뭐라고 쓰시고는 저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리고는 계속 땅에다 일일이 죄목을 썼을 것이다. 아니 저들의 죄상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씩 조용히 도망을 간 셈이다.

<진리를 알라 너희가 자유케 된다/최희원 글/ 정문사>


전능하신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첫째는 선악의 정의가 사라질 것이다. 둘째는 진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선악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상황을 말할까? 그것은 바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약육강식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인간들이 인간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것도 포함된다. 이미 중국역사에서 보면, 왕국과 왕국이 싸울 때에 패한 왕국의 왕을 잡아 가마 속에 넣어 끓여서 수장들이 나누어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야만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고 쓰여 있다는 것이다. 공자도 역시 모친을 위해 인육(人肉) 국을 드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선악이 사라지면, 무엇이든지 강한 자의 말이 선하고 정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진리가 없다면, 인간세상은 암흑의 세상이 될 것이다. 즉 진리가 없어진다면 빛은 사라져 미래도 없고, 희망도, 소망도,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마치 영혼이 없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즉 사나 죽으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자 예수는 무리들을 피하여 산으로 가셨고, 새벽녘에 성전으로 내려오셔서 무리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이때에 자칭 유대인이라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잡아와 예수 앞에 던져 놓고는 간음한 여인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세의 율법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시고 땅에다 뭔가를 쓰셨다. 평소에는 이런 자들을 만나면, 말로 응대하셨던 예수님이 일절 응대하시지 않고, 땅에다 글로 응대하셨다. 물론 예수님이 쓰신 글이 무엇인지는 사도 요한은 기록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는 제자들이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땅에 쓴 글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하여 많은 신학자들은 유추하여 여러 설들을 내놓고 있다.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느냐?”(예레미야 17:9)

“……. 그들은 땅바닥에 쓴 이름처럼 지워지고 만다.”(예레미야 17:12,13)

“그곳에 모인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과 유명인의 이름을 하나씩 쓰고 그들의 숨은 죄목들을 썼다.”

“손가락으로 쓰신 것은, 구원에 대한 주님의 절대적인 비밀을 게시하시는 사건이며, 율법의 사슬에서 자유를 선포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었다.”


이처럼 많은 말들이, 설들이 신학계에서는 분분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치 에덴동산에 아담과 여자가 생각이 난다. 하나님이 선악의 나무에 열린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뱀이 말했듯이, 그들은 어떤 말이나 생각을 가졌는지는 기록에는 없고, 단지 뱀의 말만이 나온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창 3:1)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 3:4,5)


그렇다. 인간의 죄악의 근본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함, 그리고 남을 정죄하기를 즐기는 교만함, 그것은 뱀이 아담과 여자에게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처럼 되어서 인간의 선악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과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참다움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목적과 부합된 것이다. 즉 여기에 예수님이 땅에 쓴 글이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품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나 아담과 여자가 선악의 열매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땅에 쓴 글이 무엇인가가 아닌 것이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사악함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한편, 그 당시에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의 시대적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들처럼 인간들이 얼마나 사악한 가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즉 정의와 진실을 왜곡하는 인간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오늘날에 인간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같은 인간들이 아닐까? 더욱 놀라운 것은 현대사회에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인간이 누굴까? 그것은 국가를 좌우하는 법조계에 있는 자들과 국회에 있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처럼 권위(權威)와 지위(地位)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역시 그들에게도 예수님은 침묵하시며 땅에 손으로 쓰실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사악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간음함 여인처럼 힘없는 자들에게는 냉혹한 잣대를 대고 재력과 권력을 지닌 자나 지위가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잣대도 내려고 하지 않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8. 하늘이 아기의 칠 일째 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