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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뉴턴의 스펙트럼

[창조와 과학 스토리]

by trustwons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창 1장 1절)


7. 뉴턴의 스펙트럼


『광학』의 중심은 뭐라고 해도 프리즘의 실험이다. 뉴턴은 프리즘을 사용하여 태양광선을 스펙트럼으로 나누고, 그것을 빨강에서부터 보라까지의 일곱 가지 색깔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뉴턴은 이 일곱 색깔을 옥타브의 음계와 결부시키고 있다는 것은 제11장 「천상의 하모니」에서 소개했다.


그는 옥타브의 여덟 가지 음계와 결부시키기 위해서 본래는 연속적으로 색깔이 변화하는 스펙트럼을 아마 일곱 가지 색깔로 나뉘었던 것 같다. 프리즘의 실험으로부터 그는 빛과 색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이끌어냈는데, 그것은 종전까지 백색광이 순수한 빛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에 대해서, 프리즘으로 나누어진 하나하나의 색깔의 빛이야말로 순수한 것이며, 백색광은 그것들의 혼합물이라는 새로운 이론이었다.


그것을 그는 다음과 같은 실험으로 제시했다. 첫째는 프리즘으로 나눈 스펙트럼 중에 특정 광선 - 이를테면, 초록이면 초록의 광선 - 그것만을 다시 제2의 프리즘에 통과시켜도 그 이상으로는 더 나눠지지 않는다고 하는 실험이다. 둘째는 프리즘에서 스펙트럼으로 갈라진 광선의 모든 것을 그대로 역방향에 둔 제2의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각각의 색깔을 지닌 광선이 하나가 되어 백색광선이 얻어진다는 실험이다.

어쨌든 뉴턴의 저서 『광학』에서 영감을 얻은 시인들은 이제야 자연과 그 아름다움을 뉴턴의 일곱 가지 색깔에서 보았고, 그리고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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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린키피아』 내지 『프린키피아』에 의해서 처음으로 밝혀진 우주의 모습과 훌륭한 법칙을 따라서, 정연하게 운행하는 우주의 모습을 노래한 것으로는 무엇보다도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의 『찬미가』(Hymn)라는 제목의 시를 들어야 할 것이다. 1712년에 지은 것으로 다음과 같다.

「높이 퍼져 나가는 창공은 정기(에테르)에 가득 찬 감청의 하늘을 가지고, 또 빛나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빛을 아로새긴 하늘을 갖고서, 그 위대한 창시자를 나타내 보인다. 지칠 줄 모르는 태양은 날마다 그 창조주의 힘을 나타내 보이고, 전능하신 그 솜씨를 땅 끝까지 전해 간다.


저녁의 어둠이 번지면 곧 달은 경이에 찬 얘기를 이어받아, 밤마다 귀를 기울이는 대지에 그 탄생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그 주위에 반짝이는 별들도 또 행성도 모두 제각기, 회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증명하여 끝에서부터 끝까지 진리를 전파한다.


모든 것이 어두운 지구를 둘러싸고 엄숙한 정적 가운데서 운행한다. 빛을 던지는 천체 사이에는 현실의 목소리도 아무 소리도 없다. 그러나 이성의 귀에는 그들의 환희가 울려 퍼지고 빛을 내면서 영원히 찬송하는 그들의 장엄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노래한다. “우리를 만드심은 하나님의 손이시다.”라고 …….」

우주가 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천상의 하모니」라는 생각이 태어났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때 케플러에 의한 여섯 행성과 달의 음계를 소개했었다.


이 애디슨의 시에서 그와 같은 우주의 수학적 질서란 감각(感覺)의 귀에 들리는 화음이 아니라, 「이성(理性)의 귀」에 들리는 수학적 법칙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전체로서의 이 시의 배후에는 「시편」 19편 1~4절이 깔려 있다.

<과학자와 기독교/와다나베 마사오 글/오진곤 · 손영수 역/전파과학사>



뉴턴이 있던 시대는 근대시대라, 중세시대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문화가 싹트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시민혁명이 일어난 후에 시대였기에,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후반이었기에 학문의 활동이 자유로웠을 것이다. 한편 뉴턴은 갈릴레이의 망원경의 발견과 레오날도 다빈치의 렌즈의 발견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뉴턴은 부모를 일찍 잃고는 숙부네 얹혀살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간 끈기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뉴턴은 케플러처럼 신앙심도 컸으며, 자연에 대해, 특히 우주천체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갈릴레이나 케플러나 뉴턴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매우 컸기에 이들은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귀로는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세와 근대에 있어서 인본사상에 깊이 빠져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가 손상되지 않았으며, 건강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날에, 수많은 지식과 학문과 과학과 철학이 넘치는 시대에도 사람들을 보라! 저들은 너무나 많은 문화와 문명에 찌들어 있는 것을 보아라! “보통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른다.”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시대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해 있는 현대시대가 아닌가? 그런데도 인간들은 보아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한다. 그들은 현대의 기술문명에 의존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놀랍지 않은가? 프리즘을 통해서 빛의 순수성, 본질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이 말이다. 아마도 이러한 빛의 성질에서 미술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미 성경에서는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빛의 일곱 가지의 빛, 색깔을 가진 빛을 뉴턴이 발견하기 이전에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 하나 더 말한다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었을 때에,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기에 노아의 후손들은 무지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으며, 반면에 홍수에 대한 두려움은 컸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지개의 현상은 노아 홍수 이후에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겠다. 즉 대홍수 이전에도 하늘에 무지개 현상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얼마든지 실험으로 확인할 수가 있겠다. 바로 다빈치가 발견한 유리에 의한 빛의 굴절현상인 것이다. 그것은 대홍수 이전에는 하늘에 수층으로 투과해 들어오는 빛, 해 주변에는 무지개의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하늘에 해를 직접 바라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수층이 없어지면서 강렬한 햇빛을 인간은 바로 보라 볼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빛의 종류가 일곱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생각한 천체의 하모니에서도 일곱 가지의 음계, 조화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즉 음계에는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일곱 음계가 있듯이, 빛에도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 빛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도 6일 동안을 창조하시고 7일에 쉬셨다고 하여 날을 일곱 일을 주일(週日)로 나누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과학자들은, 케플러는 태양을 돌고 있는 지구를 포함한 일곱 개의 행성이 돌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칠(7, seven) 아란 숫자에 대한 비밀을 살짝 엿볼 수가 있겠다.


하나 더, 내 경험에 의한 사실을 알려준다면, 어릴 적에 뛰어놀다가 나뭇가지에 팔의 피부가 찢겨 피가 났을 때에, 물로 씻지 않고 나오는 피로써 상처 내부를 씻어내고서 바로 찢긴 피부를 붙여놓아 삼일을 지나면 피부가 서로 붙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칼로 벤 살에는 물을 대지 않고 피로써 씻어낸 후에 삼일이면 피부가 서로 붙는다는 사실과 완전히 피부가 붙게 되는 데에는 칠일이 경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삼’과 ‘칠’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동물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상처를 당하면 동물들은 안전한 곳에 삼일 동안 회복을 기다린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성경에 나타난 숫자들의 의미도 생각해 봄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숫자에 어떤 능력이나 효험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숫자는 또 다른 언어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 속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 즉 섭리,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릴레이나 케플러나 뉴턴 같은 과학자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https://youtube.com/clip/UgkxYOXKVvWLZjoXPOmC5F_ANSpMNtneBA91?si=yCfRMpAjEgYcOS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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