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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광일이가 학교에 가다

[인생소설(이하늘의 인생론)]

by trustwons

[어둠의 사십 년]

23. 광일이가 학교에 가다


어느 듯 여러 해를 지나고서야 최광일은 나이가 8살이 되었다. 이하늘이는 최강인이와 결혼한 지 벌써 9년이 되었던 것이다. 하늘은 강인이와 함께 신혼생활을 강서구 공항동에 있는 더스카이 아파트에서 9년 동안을 살아왔다. 하늘이의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아온 나날들을 강인이도 하늘이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광일이가 8살이 되면서 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학교가 조금 멀었다.

강인은 고민 끝에 가족들과 상의하기로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하늘이 부모님께 강인은 상의를 하였다. 그리고 하늘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강인이와 결혼하기 전에 하늘이가 살던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연립주택에서는 학교와 공원이 가까워서 광일이 혼자서도 학교에 갈 수 있고, 하늘에게도 익숙한 집이라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광일이가 7살 되던 해의 가을에 하늘이와 강인이는 옛집으로 이사를 갔다. 신혼생활을 한 더스카이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서 용산구에 있는 옛집인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하늘은 모처럼 옛집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집안을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면서 살폈다. 하늘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을 하는 듯이 보였다. 강인이도 하늘을 따라다니면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넓은 안방과 작은 방이 두 개가 있는 재래식 건물이지만 넓고 편안하였다. 강인은 이사 오기 전에 옛집의 화장실과 거실을 다시 꾸몄다.

하늘이 부모님도 다시 옛집으로 돌아온 것을 매우 흡족해하셨다. 단지 강인이가 출근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강인은 하늘이와 부모님들을 위해서는 매우 흡족해하였다. 광일은 엄마가 살았던 집이라는 말에 신기해하면서 집안에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살피고는 거실과 베란다도 살피고 부엌도 살피고 그리고는 마당으로 나와서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런 광일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며 광일 뒤를 졸졸 따라다니셨다.

그리고 그 해를 넘기고 겨울을 보내고 봄이 찾아왔다. 광일은 엄마 하늘이와 함께 종종 공원에 가곤 했었다. 봄이 찾아와서인지 개나리들이 예쁘게 꽃을 피웠다. 광일은 개나리꽃을 한 아름 따와서는 엄마에게 드렸다. 하늘은 무슨 꽃인지 볼 수는 없었으나 꽃향기를 맡으면서 무슨 꽃인지를 알아내었다. 하늘은 개나리꽃다발을 손에 들고는 광일을 품에 안았다. 광일은 좀 쑥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광일은 엄마의 품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사랑해요.”


광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하늘은 가슴에 울려오는 광일의 음성을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광일을 더욱 힘껏 안아주었다. 광일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하늘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 광일에 대해 잊지 않고 있었다. 주님이 하늘에게 광일이를 아들로 주셨음에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하늘은 자신이 어머니의 배속에 있을 때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에 하늘은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의 소리도 들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소리들을 들었다. 그때에 하늘이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고,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는 어둠뿐이었다. 그런 하늘에게는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을 느꼈으며, 가끔 어머니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 후에 하늘은 차츰 어둠 속에서 평안을 찾았고 광명을 보았다. 하늘은 조금씩 천천히 주변을 알아갔으며 어머니의 신앙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 하늘은 점자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유일한 대화의 벗이 되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하늘은 성경을 거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게는 성경은 유일한 대화의 벗이었고, 선생이었고, 언어였던 것이다. 하늘은 종종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나누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영적인 언어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던 하늘에게는 이제는 아들 광일이 와도 주님처럼 느낄 수 있는 관계가 생긴 것이었다. 하늘이가 광일이를 임신했을 때에 주님은 하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늘아, 이제는 나를 대신할 아들을 너에게 주었단다. 그 아이가 너를 기쁘게 할 것이다.”


하늘은 오늘 광일이가 개나리꽃 한 아름 가져와 주었을 때에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품으로 아들 광일을 안았던 것이었다. 하늘은 주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왔었던 것이다. 이제는 아들 광일을 통해서 하늘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 광일이가 3월 초에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효창국민학교를 걸어서 갔다. 광일이의 집에서 효창국민학교까지는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다른 친구들도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에 왔다. 하늘은 한 손으로는 광일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할머니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하늘이 모처럼 예쁜 옷단장을 하였다. 광일이가 첫 학교를 가는 날이니 할머니는 강인이가 사준 옷을 하늘에게 입혔던 것이다. 광일이의 아빠 강인은 이틀 전에 출국하여 해외에 있어서 광일의 첫 학교 가는 날에 함께 해주지 못하였다. 강인은 함께 하지 못하는 대신에 멋진 옷과 가방을 광일에게 선물을 해주었던 것이다. 광일은 엄마와 할머니랑 효창국민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니 광일이와 비슷한 또래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광일은 친절한 여선생님의 안내를 받아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섰다. 광일이가 첫 학교를 가는 날은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할머니와 하늘은 다른 부모님들과 함께 학교운동장 주변에 높이 솟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있었다. 하늘은 앞을 볼 수 없고 듣지도 못하지만 강인이 준 멋쟁이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잠시 후 교장선생님이 단상으로 올라오셔서 간단하게 학교 소개와 선생님들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줄지어 교실로 인도하였다. 광일은 1학년 3반이 되었다. 할머니는 하늘이와 함께 광일이가 있는 교실로 갔다. 선생님의 안내로 교실 안 뒤편에 다른 부모들과 같이 할머니도 하늘이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점자판을 꺼내어 광일이가 있는 교실에 대해 하늘에게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하늘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광일이의 할머니 옆에 태연하게 서있었다. 하늘이 옆에 서 있던 한 어머니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을 걸었다.


“어머, 참 멋쟁이십니다. 오늘 입학한 아이가 남자인가요?”

“예, 남자아이예요. 댁의 아이는…….”


그러자 할머니가 대뜸 끼어들어 대답을 했다. 그리고 말을 흐렸다. 하늘이 옆에 있던 그 어머니는 밝게 웃으시면서 대답을 했다.


“저의 아이는 여자아이예요. 저기 세 번째 줄에서 다섯 번 자리에 앉아 있어요.”

“아~ 그렇군요. 저의 손자는 같은 줄에 일곱 번 자리에 앉아 있어요.”

“어머 같은 줄에 앉아 있군요. 저의 여자아이의 이름은 지선이에요. 댁의 손자의 이름은 뭐예요.”

“예, 광일이라 부릅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같은 반이 되어서 기쁩니다. 옆에 계신 분은 어머 니신가요?”

“예.”

“얌전하신가 봐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네요.”

“예, 말이 없는 편입니다.”

“참 멋쟁이시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을 드립니다.”


할머니와 지선이 어머니가 간단한 대화를 하는 동안에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소개와 학교생활에 대해 설명을 마치고는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부모님께 손을 들어 표해주시라고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불러가며 부모님을 찾으셨다. 지선을 호명하자 지선이 어머니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다음 다음번에 광일을 호명하자 할머니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하늘이도 눈치 있게 할머니를 따라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렇게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부모님들과도 인사를 나눈 후에 학교생활에 대한 설명을 한 후에 몇 가지 전달 사항을 알리고는 선생님은 일찍 마쳤다. 광일이의 담임선생님은 여자분이셨다.

광일은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학교를 나와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거실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할머니는 간단하게 과일과 음료수를 가져와 하늘이 옆에 앉았다. 광일이도 옷을 갈아입고는 엄마의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그리고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하늘은 옆에 광일이가 와 있는 것을 알고는 손으로 광일의 몸을 더듬어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하늘은 점자판으로 뭐라고 써서 광일에게 건네주었다. 광일은 엄마가 내민 점자판의 글을 읽어보고는 다시 점자판으로 대답을 했다.


“오늘 학교에 가보니 어떠니?”

“응, 좋았어. 친구들도 많아서 좋았어.”

“그래, 선생님은 어떠셔?”

“여자 선생님이셔. 좋은 분 같아~”

“예쁘시던?”

“응, 엄마보다는 조금 예뻐~”

“광일아, 비교하면 안 돼~”

“농담이야. 예쁘셔.”


그때에 할머니도 하늘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점판으로 말해주었다. 하늘은 광일이와 같은 반에 있는 여자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광일에게 점판으로 말해주었다.


“광일아, 너와 같은 반에 지선이라는 여자 친구가 생겼구나.”

“내 앞에 앞에 있는 여자의 이름이 지선이야.”

“너 기억하고 있구나?”

“그 정도는 다 기억해~ 내 앞자리에 친구는 명일이야.”

“어머, 너랑 이름이 비슷하구나?”

“응, 내 뒷자리에는 민석이야.”

“우리 아들 대단한데…….”

“내 자리 줄에 있는 친구들 다 기억해! 말해봐?”

“아니다. 됐다. 교만하면 못써.”

“교만한 거 아냐! 엄마도 성경말씀 다 기억하잖아~”

“그건 다르지.”

“같아~ 아담도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다 기억했잖아~ 교만한 거야?”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아들 멋지다.”

“엄마 아들이잖아~”


하늘은 아들 광일을 안아주고는 광일이의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광일은 엄마가 뽀뽀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것이 광일이의 엄마가 광일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광일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광일은 할머니가 가져다 놓은 딸기를 하나 집어 엄마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늘은 광일이랑 대화를 나누며 과일을 먹으면서 매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고 있었다. 광일의 할머니도 옆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시며 흡족한 기쁨에 젖어 있었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자(母子)의 모습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아시겠지.’


광일의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창밖을 바라보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여러 마리의 나비들이 창문을 두드리듯 팔랑거리고 있었다.


“광일아~ 창문을 봐라! 웬 나비들이냐?”

“할머니~ 나비천사들이에요.”

“나비천사라니?”

“난, 알아요! 공원에 있을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이런 일이라니…….”

“엄마가 행복해할 때마다 나비들이나 새들이 날아오고 그랬어요.”

“오~ 그랬어?”

“지금 엄마는 행복한 거예요.”

“아~ 하나님!”


하늘이 어머니는 손자 광일의 말에 그만 신음하듯이 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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