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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리는 인류의 것

[창조와 과학 스토리]

by trustwons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창 1장 1절)


8. 진리는 인류의 것


과학이 실용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프랭클린의, 그리고 미국과학에서의 특징이지만, 피뢰침 이외에도 그는 난로를 개량하여 열의 이용도를 높이고,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는 것도 발명했다. 1740년경의 일이다. 이것은 매우 평판이 좋아 주총독(州總督)의 칭찬과 함께 앞으로 수년간 특허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 이유는 「모든 진리는 인류의 것」이라고 하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필라델피아의 가로등을 개량한 것도 그였다. 런던에서 만들어진 공모양의 램프를 개량하여 그을음이 잘 끼지 않고 또 잘 깨뜨러지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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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1771년부터 착수한 『자서전』(The Autobiography)은 많은 자서전 중에서도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 책 가운데는 그의 기독교와의 관계에 대한 기술도 있다. 그는 쉬운 말로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나는 장로교회의 회원으로서 경건한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 하느님의 존재,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섭리에 좇아 이것을 다스리신다는 것, 하느님이 가장 가상히 여기시는 봉사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 영혼의 불멸, 모든 죄와 악행은 현세 또는 내세에서 반드시 벌을 받고, 도 업보를 받으리라는 것 등에 대해서 나는 결코 의심한 적이 없다.”

<과학자와 기독교/와다나베 마사오 글/오진곤·손영수 역/전파과학사>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주로 유럽영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은 중세 이후의 르네상스 혁명으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발달에서 근대에 들어서면서 근대화의 영향으로 종교와 사회의 변화가 불가피했던 시대에 신대륙이 등장하면서 미국이란 신생국가가 등장하면서 자본주의 사상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가게 되었다.

그런 시점에서 과학문명이, 기술발달이 번창하면서 유럽중심의 지식이 미국에서도 뿌리를 내려지면서, 미국에서도 유명한 과학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분은 '코턴 마서'와 '벤자민 프랭클린'을 말할 수 있겠다. 역시 이 두 과학자는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프랭클린은 연을 날리는 실험으로 뇌운의 전기를 라이덴병에 저장함으로써 전기와 같은 성질이 있음을 밝혔던 사실이다. 그 후에 그는 피뢰침을 발명하였던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많은 발명을 했었다. 물론 잘 알려진 발명왕 에디슨도 미국인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독서를 많이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지식을 습득하는 태도는 인지능력이 있는 유일한 인간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아마도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바라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문명은 그러한 인간의 지식습득을 위한 태도를 미련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발달하게 된 것이 컴퓨터의 지적관리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수많은 인간들은 점점 작은 기계 속에서 지적관리를 할 수 있는 편리함을 추구하고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뛰어난 과학자는 등장하지 못한다. 단지 범상한 기술자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미래의 꿈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스템이나 생활도구를 구상하고 개발하고 있다. 그러한 꿈을 대표적으로 상상하는 것으로는 ‘아바타’(avatar-인터넷 채팅이나 머드 게임 등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가상의 존재를 내세우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써)의 개념을 말할 수가 있겠다. 점점 인간은 아바타의 현실화에 믿음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지식현상들이 등장하며, 수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지식현상 중에는 진실과 거짓의 양 날개로 비상하고 있지만, 점점 진실적 지식보다는 거짓의 지식이 풍만해져 가면서 그 비상은 추락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는 가상적이지도, 거짓 지식에서는 오래가지 못하는 사실적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지식은 모든 인류의 것’이라고 말했으며,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특정인간들, 스스로 슈퍼맨, 초인처럼 의식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누리려는 교만과 탐욕이 극히 적은 지식을 독점하여 인류를 지배하려는 꿈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노아홍수 이후에 시날평야에 대제국을 건설한 니므롯의 사상(꿈)이 업보로 진화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대도시마다 ‘오벨리스크’의 탑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서나 프랭클린 같은 순수한 과학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교만과 탐욕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발달할수록 인류세계를 커다란 공포에 직면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과 이런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서』 속에서 밖에는 발견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럼 예수가 말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태복음 10장과 16장에서 찾을 수 있겠다.


“몸을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 10:28)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는가?”(마태 16:26)


그러므로 진리는 이러한 허상을 깨고 진실의 눈을 갖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진리는 매우 보편적이며, 참되기 때문에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진리는 인류의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물며 프랭클린은 자신이 발명한 것들로 자신의 특허권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성서』 속에서만이 참된 지식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런 참된 지식은 진리의 길로 안내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성서’와 ‘진화’의 두 갈림길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끝은 어떠할까? ‘혼돈’, ‘혼란’인 것이다. 그때는 미혹과 소문이 온 세상을 덮을 것이며, 거짓과 부도덕과 방탕이 보편화가 될 것임으로, 어떠한 진실도, 사랑도 보존할 수도 없고, 인간들은 무감각해져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를 예수님은 어둠의 때라고 하셨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한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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