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선생님은 그전부터 그리스도인이었습니까?” 하고 상곤이 물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하고 레이 학장은 대답을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름뿐으로 성경을 도무지 등한이 하는 이가 많습니다. 따라서 확신도 없습니다. 나 역시 처음엔 하나님에게서 떠나 독립해 있던 모더니스트인 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모더니스트란 무엇입니까?” 하고 정규는 물었다.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그저 이론일 뿐입니다. 현실화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이 너무도 절망상태에 있는 이 세계를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조작해 낸 허위적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으로 항상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유일한 친구가 되시는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은 그렇게 하나님을 개인의 하나님으로 믿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고 현진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개인적인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시고 친구입니다. 내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이것이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에 대해 놀라곤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진리에 대한 표준이 높아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경험으로 해서 나는 더욱더 성경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진리의 높고 깊고 넓음에 대한 그 본질을 알기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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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경을 정직하게 과학적으로 살피면 살필수록 나는 대천문학자 존 허설(John Herschel)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인간의 발견은 성경 가운데 함축되어 있는 진리를 한층 더 확증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여러분들도 과학의 진리와 성경의 진리는 완전히 합치된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나 ‘좀 더 확실한 진리의 근원이 어디 또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또 ‘좀 더 좋은 소식이 있습니까? 좀 더 정확한 기록이 있습니까? 성경이 알려주는 것과 같은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 세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생명의 근원과 이를 존속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예배의 본능을 어디로부터 얻었습니까?’ 고 물어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때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정당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창조주 자신으로부터의 계시보다 더 좋은 계시는 없다. 역사가, 연대학자, 고고학자는 성경과 같이 정확한 기록은 이 밖에 다시없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러한 하나님이 안 계시면 이 세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안 됩니다. 꽃이 태양을 향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구하고 있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생각합니다.”
<과학자가 본 하나님/레이몬드 무어 글/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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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에 서점에서 발견한 책, 「과학자가 본 하나님」의 제목이 내 눈에 확 들어왔었다. 그 당시에 나의 신앙은 매우 깊어있었다. 그런데도 대학생이 되고 나니 교만한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성경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있을까 하는 의욕이 솟아났었다. 일반사람들은 ‘과학’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과학의 힘은 대단했던 것이다. 물론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인간의 지식과 문명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중심에는 과학이란 부분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TV와 영상매체가 활발하게 발전하면서 인간의 상상세계는 넓게 깊게 퍼져나갔다. 그 당시, 내가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시기는 1969년 9월이었다. 이 책은 이미 단기 4289년(서기 1946년)에 나온 것이었다. 지식이 짧은 나에게는 크게 얻은 것은 적었지만, 매우 소중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기독교계에서는 과학은 성경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가룟 유다와 같은 존재로만 여겨왔기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외면하였던 것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반도체의 발견으로 눈부시게 발전해 간 지금에서는 너무나 다양한 정보대체용으로 등장한 컴퓨터, 핸드폰 등에 있어서는 더욱 과학의 위력은 높아만 갔다.
이런 시점에서 종교는 사라질 것이라는 자칭 지식인들이 매체를 통해 떠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종교는 더욱 인간에게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불확실한 인간의 지식은 인간을 더욱 세미하게 불안의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경을 이해한 지식인, 과학자들에게는 더욱 성경에 대해, 창조주에 대해 신뢰가 깊어져 갔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명과 과학적 지식은 빛이 어둠과 밝음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듯이 거짓과 진실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조주는 더욱 힘을 얻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다시 손에 들고 펴본 책, 「과학자가 본 하나님」은 다시 읽어보게 되었을 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이 젊은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왜냐하면, 이 책은 진리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혼돈의 세계는 깊어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본의 삼육학원(대학 수준)에 원장으로 있는 레이몬드 무어는 아시안 계에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종교의 관념을 가지도록 힘썼던 사실을 볼 수가 있겠다. 그러나 종교서적이나 기독교 서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오늘날에도 이처럼 훌륭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 당시에 세계이차전쟁이 막 끝난 시기에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주말마다 모여 지적토론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나누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한편 레이 학장은 이런 말을 했다.
그 당시에 알려진 대천문학자인 존 허셜의 말을 인용했다.
“모든 인간의 발견은 성경 가운데 함축되어 있는 진리를 한층 더 확증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만일에 창조자 하나님이 없다면, 안 계시다면, 이 세상, 인간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누님과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가장 보잘것없는 들풀들이 어떻게 해서 자라날까? 누가 키우지도 않으며, 관리하지도 않으며, 파종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는, 노아가 들풀의 씨들을 가져와 심었을까? 물로 인해 모든 생물이 물에 잠겨 쓸어버렸는데 말이다. 어떻게 산과 들에 들풀은 가득하게 자라고 있을까? 이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하나님이 심고 거두고 하시면서 관리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인간들이 신이 없다고 외쳐도 하나님은 여전히 천지를 관리하시고 계시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