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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해에 새벽하늘을 바라보다

[인생소설(이하늘의 인생론)]

by trustwons

[어둠의 사십 년]

33. 동해에 새벽하늘을 바라보다


아직 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신 하늘의 부모님은 나갈 차비를 하고서 거실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거실 창가에는 어둠 속에서 찰랑거리는 파도소리만이 끝없이 들려왔다. 잠시 후에 광일이도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는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는 할머니 옆에 반기대어 앉았다.


“할머니, 엄마, 아빠는 아직 안 일어나신 거야?”

“곧 나오겠지. 기다려보자!”


할머니는 다 큰 손자 광일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광일의 어깨에 팔을 얹으시어 끌어당기시었다. 광일은 아직 잠이 덜 깨듯이 할머니의 어깨에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광일이 할아버지는 캄캄한 창밖을 지켜보면서 날이 밝기를 바라시는 듯이 보이셨다. 서서히 하늘이와 강인은 방문을 사르르 열고는 이미 외출차림을 하고 나왔다.


“아버님, 어머님 일찍 나오셨습니다. 오, 광일도 일어났구나?”

“자네도 잘 잤는가? 피곤하지요.”

“괜찮습니다. 어젯밤에 하늘이와 포근하게 푹 잤습니다.”

“하늘이가 뭔가? 광일이 앞에서 말일세. 친군 줄 알겠네.”

“네? 친구 좋죠. 광일아~ 이해하지?”

“뭐~ 괜찮아요. 미국사람들은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상대방을 존중할 때에 그렇게 부른데요.”

“오~ 그걸 어찌 알았니? 자녀가 부모님의 이름을 부를 때가 있지. 힘들어할 때지. 인간적으로 힘내라고 말이다.”

“책에서 읽었어요. 자유와 평등,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지요.”

“그래? 어떤 면에서 그렇지?”

“아이들에게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주어요.”

“예를 들면 어떤 경우지?”

“감사하다와 죄송하다. 즉 Thank you! I'm sorry! 를 많이 쓰더군요.”

“자, 이제 나가야지 않을까?”


강인이와 광일이가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을 지켜보던 광일이 할아버지는 밖을 바라보더니 출발하자고 말했다. 하늘은 광일이 할머니 옆에 바싹 앉아 있었다. 광일의 가족은 호텔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자동차를 타고는 호텔을 떠나 외옹치(外瓮歭) 해변으로 달려갔다. 아직 어둠이 옅게 깔아있는 속초의 외옹치 해변에는 가로등만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강인의 자동차는 외옹치 해변주차장에 도착을 하였으며, 광일의 가족들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인은 하늘의 손을 잡아주며 앞장서서 외옹치 해변 안으로 들어갔다. 광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천천히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모래사장을 느낀 하늘은 신을 벗으려고 했다. 그러자 강인은 좀 더 걸어가자고 점자판으로 말해주었다. 그러자 하늘은 다시 신을 싣고는 더듬더듬 모래사장을 걸으며 강인의 팔을 힘껏 당겨 안으며 모래사장으로 들어갔다.

바다 물결이 잔잔히 파도치며 하늘의 발 가까이 이르자 강인은 하늘의 신을 벗어주며 자신도 신을 벗고는 파도물결에 다가가 섰다. 그러자 파도는 하늘이와 강인의 발등을 만져주며 물러갔다가 다시 와서는 발등을 만져주었다. 이러한 느낌을 하늘은 한없이 좋아한다. 누군가 자신의 발을 만져주는 기분에 하늘은 주님이시라고 생각하고 하였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광일이도 신을 벗고는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광일이 할머니는 광일의 신을 집어 들고는 할아버지랑 그들의 옆으로 살며시 다가섰다.

잠시 후에 외옹치 해변바다 끝에서 황금빛이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이런 황홀한 장면을 하늘은 볼 수가 없었다. 오직 하늘에게는 파도가 자신의 발등을 만져주는 것 외에는, 그리고 새벽바닷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만져주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강인이와 광일이 그리고 하늘의 부모는 황금빛 새벽여명을 바라보며, 그 감격에 침묵을 하고 있었다. 아니 광일은 엄마의 몫까지 함께 하려고 살며시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전해주려고 애썼다. 이를 아는지 하늘은 광일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꼼지락 하였다. 그리고는 광일의 손을 하늘은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그러자 광일은 엄마의 가슴이 매우 빠르게 뛰고 있음을 알았다. 광일은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아~ 엄마도 저 광경을 보고 계시는 걸까? 새벽여명을 보고 계실까?’


그때에 하늘은 광일의 손을 잡고 있던 손으로 톡톡 가슴을 치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신호를 주었다. 광일은 곧 점자판으로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 보고 있는 거야?”

“응, 나도 저 빛을 보고 있단다. 황금빛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말이다.”

“아빠! 엄마도 저 새벽빛을 보신대~”

“뭐? 엄마도?”


광일이가 흥분되어 소리치자 강인뿐만 아니라 옆에 계신 하늘의 부모도 놀라워하며 하늘이를 쳐다보았다. 하늘의 모습이 마치 바라보는 듯이 보였다. 그때에 하늘은 광일의 손과 강인의 손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광일이는 다른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광일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광일의 가족들은 서로 손을 잡은 채로 외옹치 해변에서 해 돋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해바다 수평선에는 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강렬한 햇빛이 하늘이, 강인, 광일, 그리고 광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에 비추어주었다. 그때에 하늘은 눈이 어두워지면서 자신만의 소리를 들었다.


“하늘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지? 너의 마지막 생일을 축하한단다.”

“아~ 하늘아버지,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발등을 만져주시고 내 얼굴을 만져주시니 기쁘고 감사합니다.”

하늘은 이렇게 하늘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강인도 광일이도 하늘의 부모도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늘이를 위해 가족들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점점 날이 밝아오자 하늘은 강인과 광일의 손을 잡고는 바다향기 길로 걸어갔다. 하늘의 부모님도 뒤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광일의 가족은 아침 바다산책을 마치고는 다시 자동차를 타고 아바이 마을 청호동으로 갔다. 그리고는 함경도 실향민의 전통음식으로써 아바이순댓국과 오징어순대 그리고 함흥냉면과 가리국밥과 다양한 활어회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하늘의 부모님은 너무 좋아하셨다.


“오늘 광일의 아빠 덕분에 고향의 향기를 느껴보게 되었네.”

“그러셨습니까? 꼭 아버님, 어머님을 여기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기뻐하시니 저도 감사합니다.”


강인은 장인, 장모님이 매우 만족하시고 음식도 잘 드시고 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마침 장인어른께서 말씀해 주시니 강인은 더욱 기뻐했다. 이런 대화를 나눈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광일이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광일은 아이처럼 할머니의 팔을 안으면서 물었다.


“할머니, 고향이 어디예요?”

“응, 평안북도 진남포이지.”

“진남포? 항구도시네요?”

“그럼, 그래도 유명한 항구였지.”

“뭐가 유명한데요?”

“뭐라 할까? 평양에서 가깝고, 일제 때에는 광공업이 발달했었고, 진남포제련소 공업지대와 논밭과 사과밭 등 농업지대이었었지. 그리고 항구도시로써 서해를 잇는 입구라고도 할 수 있지. 그리고 일본인들도 천여 명이나 살았었지. 그때는 살기 좋았었지.”


할머니는 그 시절을 회생하는 듯이 신바람이 났는지 열심히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만하라고 하셨다.


“다 지나간 얘기일 뿐이다.”

“그럼 엄마는 언제 태어나신 거죠?”


광일은 엄마를 슬쩍 바라보고는 이때다 싶어 물었다. 할머니는 하늘의 손을 잡아주셨다. 그리고 말을 이어 말씀하셨다.


“일사후퇴 때에 남쪽으로 내려와서는 한참 동안은 지난 후에야 60년대에 광일이 엄마가 태어났단다. 하나님의 은혜였지.”

“그럼 그동안에는 자식이 없었어요?”

“있었지. 피난길에 아들을 잃었단다. 폭격으로 인해서 말이다.”

“할머니, 죄송해요. 마음이 아프시죠?”

“이젠 괜찮다. 다 지난 일인 걸......”


광일 와 할머니의 대화를 지켜본 강인은 일전에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도 하늘의 어머니는 말씀을 또박또박 말하시는데 어딘지 모르게 슬픈 여색(悷色)을 보이셨던 모습을 강인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장모님은 매우 명량한 목소리로 광일 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광일의 가족은 아바이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는 속초의 청초호를 끼고 빙둘러있는 아바이마을 벽화거리를 돌아보았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와서 광일의 가족은 강인의 자동차에 타고 속초항을 지나 동해바닷길 중앙로를 따라 달려서는 바다전원으로 갔다. 바다정원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다. 5월인지라 날씨가 맑고 그리 덥지 않아서 광일은 바다정원의 야외에 소나무 숲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광일은 광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와 엄마를 전망이 좋은 쪽으로 앉도록 하였다. 동해바다의 바람이 소나무 숲으로 불어와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광일은 바다정원의 직원인양 가족들의 주문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뭐로 할까요?”

“글쎄~ 광일이 알아서 해요.”

“그럼, 할아버지는 시원한 ‘수제 카라멜 슈페너, 할머닌 따뜻한 바닐라 라떼는 어때요?”

“뭔지 알아야지~ 그렇게 해!”


광일이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광일은 아빠와 엄마에게는 주문을 물어보지도 않고 말했다.


“엄마는 카페 모카, 아빠는 아메리카노, 뜨거운 걸로?”

“우린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하니?”

“맘에 안 들어요? 바꿔줘?”

“됐어! 잘 알아서 했겠지~”


광일은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자리를 떠나 주문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재차 물었다.


“참, 빵은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는 광일은 휙 돌아서 갔다. 사람들이 많은지라 주문하러 간 광일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넓은 쟁반에 빵과 커피 등을 가져왔다. 광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광일이가 가져온 커피와 빵과 수제 카라멜 쿠키를 드시면서 동해바다를 감상하고 계셨다. 광일이도 아빠와 엄마 옆에 앉아서는 커피와 빵 등을 먹으며 탁 트인 동해바다를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인과 광일이 사이에 앉아 있는 하늘이만은 맑은 하늘과 푸른 동해를 바라볼 수는 없었다. 단지 하늘은 소나무 숲의 솔바람을 얼굴로 느끼고 감상하고 있었다. 하늘은 점자판으로 강인에게 말했다.


“여기 커피가 참 맛있어요. 하와이 생각나요.”

“나도 그래, 우리 하와이 갈까?”

“너무 멀어요. 여기도 좋은 걸요.”

“여기 자주 올까?”

“네, 여기가 동해바다라 했지요?”

“응, 우리나라 동쪽에 있는 바다야!”

“그럼 서쪽에는 뭐가 있어요?”

“서해바다가 있어.”

“그럼 동쪽, 서쪽 다 바다가 있네요?”

“남쪽에도 바다가 있지. 부산 송도 가봤지?”

“송도? 네, 그럼 우리나라는 동쪽, 서쪽, 남쪽이 바다네요?”

“그래서 한반도라고 해요.”

“그럼 북쪽은 뭐가 있어요?”

“북쪽은 바다가 없어. 육지로 이어져요.”

“부모님 고향이 북쪽이라던데…….”

“그래요. 북쪽에는 고향이 있어요.”

“부모님 고향은 어떤 곳일까?”

“한 번도 못 들어 봤어?”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몰라요.”

“부산하고 비슷하지. 바닷가에 있거든.”

“배가 들어오는 항구도 있어요?”

“그래요. 그래서 당신도 해산물을 좋아하잖아!”

“어머~ 그래요? 저의 아버지도 좋아하셔요.”


옆에서 아빠와 엄마가 대화하는 것을 슬쩍 본 광일이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도 바다고기를 좋아해요?”

“생선? 좋아하지. 소고기보다는 싸니깐.”

“할아버지는 말린 가오리 생선을 매우 좋아하신단다.”


광일이 할머니가 광일이 어깨를 툭 치시면서 끼어들어 말했다. 광일은 할머니 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가오리 생선이라면 뭐지요? 어떻게 생겼어요?”

“허허, 광일인 가오리도 모르다니……. 뭘 배웠나?”

“가오리는 아주 넓적한 물고기지. 그리고 입은 몸의 밑에 있어서 넓적하고 튼튼한 이빨이 있지. 마치 쟁반같이 납작하지. 그리고 바다 밑으로 다니면서 바다달팽이, 조개, 굴 갑각류 등을 잡아먹지.”


광일이 할아버지는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자 다 듣고 난 광일은 이제 알겠다는 듯이 툭 말을 뱉었다.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한번 물어본 거죠. 참, 남쪽에 할머니 친구가 사신다고 했지요.”

“그래 네가 중학교 때에 한 번 집에 놀러 왔었지. 지금은 작은 섬에 산다더구나!”

“네, 알아요. 그……. 손녀랑 함께 산다고 했었어요. 한번 본 적이 있어요. 이름이 뭐라더라?”

“너 기억하고 있구나? 그 손녀 참 똑똑하지~”

“네, 우리 엄마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맞아요. 이름이 소라예요.”

“그래, 그래, 금소라지. 보고 싶니?”

“아니, 뭐! 궁금했을 뿐이에요.”

“혹시 너? 그 아가씨를 말했던 거냐?”


옆에서 듣고 있던 광일이 아빠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끼어들어 물었다. 광일은 갑자기 아빠의 질문에 당황해했다. 그리고 아빠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아버님,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지요? 늦으면 차가 밀릴 것 같아요.”

“그래, 이젠 올라가도록 하지. 하늘이도 충분히 바다를 즐겼으니…….”

“네, 이제 가요!”


광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 쟁반과 잔들을 챙겨서는 반납하러 갔다. 강인은 하늘이에게 점자판으로 이젠 서울로 가자고 말하고는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하늘이와 함께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곧 광일이도 뒤따라 왔다. 광일의 가족은 강인의 자동차에 모두 탔고, 먼저 강인이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바다정원을 빠져나와 속초, 양양으로 해서 동해고속도로를 달렸다. 점점 차들이 늘어나면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강인의 자동차는 홍천에 들어서서야 홍천휴게소에서 점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광일이 운전대를 잡고는 고속도를 달려서 남양주에 들어서서 겨우 서울로 들어서게 되었다. 너무나 긴 여정이었는지 하늘은 어머니에게 기대어 어머니와 같이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차창 밖을 열심히 바라만 보고 계셨다.

서울에 가까이 들어서자 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간단한 간식과 함께 커피를 마시었다. 하늘이와 하늘이 어머니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좀 어리바리 되고 있었다. 강인은 이런 하늘이의 손을 꼭 잡아서는 장모님과 함께 광일이와 장인어른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이번에는 강인이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서울로 들어서서는 여유롭게 안전하게 용산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광일의 가족이 집에 도착을 하니 오후 6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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