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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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종교는 하나님의 진리를 모방한 거짓 진리 단체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종교는 인간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나약한 인간들을 위한 지배적 수단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상 종교는 그럴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진리는 하나일 것이다. 참 길도 하나일 것이다.
세상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듯하지만, 결국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문명도, 전통도, 문화도, 관습도, 제도도, 인간사(人間事)도 말이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성서 구약의 역사만 보더라도 이스라엘의 왕조역사가 얼마나 파란만장하였는가?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위인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려는 계시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정확히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인간의 집단, 국가제도로 전략하고 만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계급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인 것이다.
계급사회란 다스리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인간세상은 누군가가 집단을 다스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제도화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왕이 필요하고, 왕을 보좌할 신하가 필요하고, 정책을 논할 인재가 필요하고, 법이 필요하고, 군대가 필요하고, 경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인간제도가 필요 없다. 오직 성령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며 일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고 하신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에게 권하노니.......”(11절)에서도 베드로는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하여 나그네와 행인인 것이다. 세상에 정착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세상에 나그네와 행인처럼 사셨다. 만일 예수님이 세상에 정착민으로 살아가셨더라면 그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때에 군중의 동요에 따라 새 나라를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자리를 떠나셨다.
<근신하라 깨어라/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의 말씀/최희원 글>
베드로의 글을 읽을수록 그의 믿음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예수님이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반석)이라 부르게 하신 것과 이를 깨달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단순히 있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비록 베드로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고백한 것이지만, 예수님이 그러함을 말했을 때에 베드로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서신에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첫째로 다락방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써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니, 각 지방에서 온 유대인들이 놀라며 베드로가 열한 제자들과 함께 소리 높여 말하니,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전하였으니, 듣는 그들이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나누며 기도에 힘썼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이 그날에만 있고 그 후에는 없었을까? 아니다. 그 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가운 것은 예수의 복음 속에 세상의 사상과 이념들이 끼어들면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지 않고, 세상에 정착민으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은 한 철학자가 말한 대로, 인간이 만든 종교처럼 세상의 복을 위하여, 또는 위로의 수단으로 믿음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가라지의 비유’에서 명확히 밝히셨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게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알곡)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태 13:28,29,30)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 것이다. 이 비유는 앞으로 있을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가라지’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이 아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종들로 뽑아내지 말라 하신 이유도 놀랍지 않은가? 오늘날에 얼마나 서로 이단이니 거짓이니 교단들 간에 논쟁하지 않는가? 그뿐만 아니다. 믿는 자들 간에도 서로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 하지 말라는 것도 포함이 되는 것이다. 단지 진실만을 전하고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 하실 일이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일을 전함에서도 성령이 듣는 이들로 깨닫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이방인들에게 선을 행하여 비방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는 또한 예수님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하시다. 그러므로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서로 사랑을 잃지 않고 선행을 행하도록 힘쓸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종교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종교의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복종하게 만들 뿐이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생각까지 지배하려고 하여 사람의 자유와 의지를 파괴하거나 빼앗아버린다. 그들은 그러한 사악함을 진리라는 포장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 진리는 사람을 존중하여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간섭하지 않는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때때로 인간은 신이 없다고 호소할 때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꼭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절대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지 말라, 개인의 자유를 파괴하지 말라, 즉 사람을 존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라고, 천한 신분이라고, 여자라고, 가난하다고, 과부라고, 고아라고, 병신이라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은 자라면, 절대로 사람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 않는다. 즉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