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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이유?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51.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이유?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베드로전서 2: 17)

~~~~~~~~~~~~~ Bible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는 이유는 종교적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의 말씀이 바로 그런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13절)의 말씀과 상통된 말씀인 것이다. 교회 건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를 위하라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낱 일반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복과 안전을 기원하는 수단이며, 한편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제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단순히 인간의 복과 안전만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제도도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며, 창조 때부터 약속된 언약이며, 타락한 인간의 회복인 것이다. 뭇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에서도 깨닫게 된다. 단순히 웃어른의 말에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을 존경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악할지 몰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못했을 때에 매로써 훈계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 아이의 인간을 경멸하거나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또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백성을 통치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인간성을 파멸하는 행위는 허용할 수 없다는 말씀인 것이다.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폭군인 왕일지라도 백성은 왕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악이 자라서 더 그릇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성이 왕을 세웠다 해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씀이다. 또는 자식이 사악한 부모를 만나 고통을 당한다 해도 자신을 낳은 부모를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유야 어떠하든지 간에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며 고난을 받는 이유인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 말씀/ 최희원 글>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유년시절에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은 유교사상과 진화론에 바탕을 둔 가르침이었기에 절대자에 대한 복종과 반항이 나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즉 내적갈등이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서 절대자란 세상에서 힘을 가진 자를 말한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다 절대자였다. 그들 앞에 어린이들은 강아지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 강아지처럼 얌전해야만 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학교든, 직장이든, 지위나 권위에 복종해야만 했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세상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뭇사람을 공경하라? 왕(통치자)에 공경하라? 이러한 말이 베드로 사도가 말한다는 것이 매우 거북스러웠던 것이었다.

어느 교수가 한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인간 세상에 종교가 없었더라면, 인간은 메마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종교가 있어서 겨우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류역사를 돌아보면, 상당히 인간사회에 종교가 큰 몫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믿음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남들이 다니니깐, 재미있고 먹을 것도 주니깐, 교인들이 친절하게 잘해주니깐....... 특히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기다려졌었다. 선물을 주니깐 말이다.

그러던 중에 사춘기에 들면서 인생에 회의(懷疑)가 생기면서, 가정의 어려움으로 고통을 느끼면서 겉돌던 성경이야기가 마음을 두드렸다. 그러자 절망에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에 열심히 읽었던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에서 죽음이 해답이 아님을 알게 되었었다.

그때에 서서히 내 마음을 품어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은 성경의 예수였다. 흔들리는 마음이 들 때마다 생각을 이끌어주는 무엇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성경의 복음서(마태, 마가, 요한, 누가복음)를 읽고 또 읽고 했을 때에 예수의 삶이 친근감이 왔으며, 이해할 수가 있었고 위로가 되었었다. 점점 성경에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영혼이 밝아져 갔다. 그리고는 예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성경은 사실(Fact)이라는 것을 믿어지게 되었다. 아니 믿어짐을 넘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중에 베드로의 편지는 너무나 감격과 놀람이 있었다. 영적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중에 오늘의 말씀인,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베드로전서 2: 17)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이유를 말이다. 만일, 예수를 믿자마자 바로 천국에 간다면....... 또는 고통이 없는 기적처럼, 마술처럼, 살아간다면....... 그런 순진한? 아니,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된다면, 믿음이 있든 없든 예수를 믿는다고들 야단들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되면 예수전도가 쉽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망상은 진리를 아는 게 아니었다. 진리는 아는 것은 창세전부터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셨다. 아버지라고 말이다. 항상 그 마음이 진실하여야 성령이 찾아오고, 머물며 진리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뭇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세상권세에 저항하지 말라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세상을 살며 오는 고통은 믿음을 굳건히 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이다.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하늘에는 천사도 있고, 사탄도 있다. 하지만 인간세계에는, 인간에게는 선함과 악함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선한 열매를 맺고, 사탄을 쫓는 자는 악한 열매를 맺는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진리를 깨달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정착하는 인생이 아니요. 세상을 나그네로 사는 인생인 것이다.

그래서 천사도 인간의 인생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인간도 섬긴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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