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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서로 발을 씻김이 옳다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52. 서로 발을 씻김이 옳다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 13:12,13,14,15)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 22:36,37,38,39,4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 13:34,35)

~~~~~~~~~~~~~~~ Bible ~~~~~~~~~~~~~~


신약성경의 사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요한복음서에만 요한이 기록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전날에 한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실 때에, 예수님은 심히 마음이 민망하여 저녁 먹는 중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는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었다.

왜 요한 제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내용을 기록했을까? 아마도 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뜻을 깨달았기에 빼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예수가 요한의 발을 씻기실 때에 깨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떤 뜻을,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을까? 아마도 요한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베드로와의 관계에서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 앞에 왔을 때에 베드로는 저항을 했었던 것이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그래도 베드로는 완강히 거절을 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는다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서 베드로가 마음을 바꿔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씻겨달라고 말할 때에,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아마도 요한은 이런 대화를 주시해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베드로와 대화 내용을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이미 깨끗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이미 모든 죄는 깨끗이 씻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는 아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가롯 유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해당이 되는 말씀임을 요한은 알았기에 이 말씀을 기록하신 것이었다. 가롯 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있으나 세상적인 논리나 세상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기독교인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 말이다.

한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일지라도 세상을 사는 동안, 사도로써의 사역을 하는 동안에, 그들이 행하는 걸음마다에 죄를 짓게 됨을 아시고, 그것까지도 씻기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요한은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에는 유일하게도, 사랑에 대한 말씀을 많이 기록하였던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의 말씀도 기록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화(聖化)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구교에서는 그런 현상화가 많다. 예수님을 만났다거나, 마리아를 만났다거나 했다는 사람이나 장소에 대해 성화를 만드는 것을 많이 보고, 또 그 성화된 곳으로 성지순례의 길목이 됨을 알 수 있겠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전에 성화된 존재인 성자로 살지 않았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도 어느 누구도 성자로 기록된 것은 없다. 하지만 구교사상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성자로, 성군으로, 성인으로 신처럼 받드는 신앙을 키워왔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낳은 어머니, 마리아는 성모(聖母)로써 인식케 하는 신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음을 깨우치시기 위해, 마지막 유월절 저녁식사에서 식사 중에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을 보이셨던 것이었다.

“이미 목욕한 자에게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예수님이 베드로와 대화한 내용을 사도요한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는 모든 죄를 다 씻기었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그리고서 예수님을 믿는 후에도 행적이, 행동이, 죄를 짓게 됨을 예수님은 아시기에 그것까지 씻기심을 말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다는 아니라고 했다. 이는 바로 가롯 유다를 말하는 것이니. 유다도 역시 예수님을 믿었으니 온몸이 깨끗함을 받았으나, 그의 행적은 결국 죄를 다시 짓게 되었음을 아심으로 예수님은 민망히 여기셨던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도 그의 행적과 행동에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음을 예수님은 아시고, 아니 알게 하시려고 본을 보이신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믿는 자가 조심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요한을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말했다. 그것은 곧 이 말씀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 13:34,3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한 15: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8,9)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일서 4:10)


이처럼,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뜻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사랑의 근원, 사랑의 본질,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녀의 사랑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일 뿐이라서 그 사랑은 변할 수 있고, 갈등과 고통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극히 일부를 깨달을 수 있고, 부모의 사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에서도, 남녀 간에 사랑에서도 참다운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모습을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본을 보이심으로써, 너희들도 이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씻겨줌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사소한 잘못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발을 씻김을 받는 자에게가 아니라, 발을 씻겨주는 자에게 해당하는 말씀인 것이다. 발을 씻김을 받는 사람도 감동을 받겠지만, 더욱 놀라운 곳은....... 발을 씻겨주는 행위가 진실하다면, 발을 씻겨주는 사람은 더욱 감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예수님의 제자인줄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신도 알게 될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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