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1,2)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베드로전서 4:6,7)
~~~~~~~~~~~~ Bible ~~~~~~~~~~~~~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의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이미 우리의 죄는 그쳤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죄에 대하여 근심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의 죄이든, 미래의 죄이든, 현재의 죄이든 다 소멸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늘 하는 말, ‘내 죄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그 죄가 소멸되고 멈췄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더 쉬운 말로 말하면, 우리의 죄로 인한 고통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육체로 다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은 죄로 인한 고통을 잊어버리고, 그분이 받은 고통의 마음으로 너희 스스로 무장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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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도 항상 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죄의 노예가 되어 이미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멈춰버린 것을 믿지 못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은 죄에서 자유하여 그리스도께서 멈춰버린 사실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 말씀/ 최희원 글>
천지에 뭇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유일하게 사람에게는 육과 영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자연에서 얼마든지 깨달을 수가 있겠다. 단, 진화론자들이나 진화론의 이념으로 관념을 가진 자들에게는 매우 부정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나 문화로써는 거역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 진(眞)은 그 자체가 온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 위(僞)는 온전한 척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동물과 식물에게는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력이 존재하지만, 인간에게는 영혼(靈魂)이 있기에 스스로 생각할 수가 있고, 동식물처럼 육(肉)을 위하여만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서 지식을 창조하고 응용하고 문화와 문명을 개척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식물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즉 동식물은 자연의 원리를 잘 터득할 뿐만 아니라 잘 적응해 살아간다.
그러나 생각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 잘못된 지식을 쌓아간다면, 즉 그릇된 논리와 합리로 인해 동식물보다도 못한 미련한 결과를 낳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미련한 자들은 동물에게서 지혜를 배우려고 하거나 동물의 뛰어났다고 하는 것을 모방하는 우둔한 모습을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도 진리를 알고자 하는 현자들이 나타나 인간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기에 그나마 크게 그릇된 길로 가지 않게 해 준 지혜에는 고마움과 바르게 활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답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특히 기술문명이 극도로 발전함으로 인해, 편리와 즐거움을 누리는 현대인들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환상적인 산업기술에 매료되어 고금(古今) 지혜들을 배척하는 짓은 더욱 스스로 맹인이 되어갈 뿐인 것이다. 즉 그들은 환상세계나 비상식화에 인간의 고유한 존재인, 인격을 파괴하거나 포기하는 꼴이 될 뿐인 것이다. 물론 현대기술문명을 누리는 지혜로운 인간이란 그 기술문명에 종이 되지 않고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 지혜로운 인간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따라 객관적인 관념을 가질 줄 알면서, 객관적 관계를 가질 줄도 알며, 문명의 변화에 대해서도 예견할 줄 아는 지식을 가진 자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려면, 육체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영혼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 4:4)이라고 말했다. 인본주의 인간들은, 유물론 사상을 가진 인간들은 인간에게는 빵의 평등권, 18세기에 프랑스혁명 때에 있었던, “빵을 달라.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했었던 사회주의 혁명의 시초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 후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탄생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무서운 사상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육체의 만족만으로는 살아간다면, 인간은 병들어가게 될 뿐만 아니라 짐승보다 못하게 비참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이 어떤 것인지 예를 살피면, 마약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을 보아라. 짐승보다 못한 모습을 보지 않는가?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가졌으므로 육체를 위하여도 살아가야 하겠지만, 영혼을 위하여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즉 영육이 건강한 인간이 되어야지 행복한 존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불행한 인간들이 하는 말 중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내 죄 때문이야’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인간은 육체에 극한 된 존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인간은 막연하게나마,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달프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역시 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미련함인 것이다.
이런 미련한 인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 피고 마시고 하지 않는가? 잘못된 줄 알면서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는가? 무서운 줄 알면서 피하지 않고 같이 살지 않는가? 악한 짓인 줄 알면서 악을 행하지 않는가? 이러한 모순된 환경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를 하나님은 인간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그 의지조차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이용하는 사악한 권력자, 통치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이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병든 자에게 치유를, 눈먼 자에게 광명을 주기 위해 왔다고 했다. 특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 증표로써 십자가에 죽음을 역사에 기록되게 하셨던 것이다. 즉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을 주신 것이다. 포악한 통치자들, 폭군, 독재자들은 이런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악용하여 인간의 자유와 인격을 빼앗고 노예처럼, 짐승처럼 부리지 있지 않는가? 그래서 성경에서는 세상의 지도자들은 결코 천국에 갈 수가 없으며,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베드로 선생은 말하기를, 육체의 고난을 받고 있는 자의 죄가 그쳤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사라졌으니, 죄의 멍에를 벗어내고 진리 안에서 자유 됨을 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라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