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참예자(Partaker)가 필요하다.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59. 참예자(Partaker)가 필요하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베드로전서 5장 1절)

~~~~~~~~~~~ Bible ~~~~~~~~~~~~


성경을 하나의 세상적인 학문으로 인식한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이나 신학을 배운 사람 중에도 성경의 이야기를 문학적인 소재로 보고 해석하는 경향을 많이 본다.

성경의 사실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진실된 말씀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하나님을 증명하는 실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추상적이거나 드라마틱한 재미있는 소설 같은 꾸민 글이 아니다. 그리고 성경의 말씀들은 이스라엘의 인물 역사를 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실증을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에서 행하여진 사실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베드로가 그 당시에는 신분으로는 천한 사람이고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지식도 배웠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지각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도 상당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지식을 비교한다면, 동양에 노자나 맹자와도 훨씬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의 신앙은 매우 깊고 풍부한 지식을 내포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은 여전히 베드로는 무지한 사람이고 바울은 학식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신분도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바울의 서신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니 신약성경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바울의 서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은 베드로의 신앙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베드로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증인이요, 그리고 장차 올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례(partaker)할 동반자라고 말했다. 여기에 묘한 단어가 있다. ‘참여’라는 단어이다. 이는 어떤 예식에 참여한다는 의미로써, 기독교의 예배의식 같은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어떤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베드로의 신앙은 매우 놀라운 믿음이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닫고 알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신약성경에 베드로의 말씀이 적은 것이 안타까울뿐이다. 그러나 베드로전후서에서 가르치는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면 놀랍도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많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묵상으로 읽는 베드로전후서 말씀/ 최희원 글>



인간들의 세상에는 지혜를 깨우치는 경전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놀라운 지식들도 많다. 하지만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경전이나 지식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진리’라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멋진 글이나 말, 또는 이성을 놀라게 하는 지식들, 그리고 철학과 경전 같은 것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진리를 표방하고, 모방하고, 유사한 모습을 띨 뿐이지 참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만일에 진리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고 하며 다양한 진리를 말한다면, 그것은 진리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것일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971년부터 기원전 931년까지의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린 왕이 솔로몬(המלש:쉴로모)이었다. 그 시대에는 솔로몬의 지혜가 너무나 놀라워한 열국에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원하고 각종의 예물을 들고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에는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인도에까지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열국의 왕들은 솔로몬에게 무엇을 듣고자 하여 왔을까?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전하였던 여호와의 이야기였을까? 성경의 전도서와 잠언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솔로몬은 열국의 왕들에게 전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이기보다는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 지혜들이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시대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에서도 평화로운 시대였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모두가 솔로몬의 지혜를 따랐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통치방법은 온전히 선한 것은 아니었음을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통해 알 수가 있겠다. 하지만 솔로몬의 통치지혜는 거의 완전한 것이었기에 그 시대는 전쟁이 거의 없었고 평화로운 시대라는 것을 열방의 역사에서도 엿볼 수가 있겠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석가모니의 시대와 중국의 춘추시대에는 많은 현자들이 나타난 시대였다. 현자들이 많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평화로운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다.

한편 현시대를 돌아보면, 이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경제적으로 국가나 개인에게 너무나 혹독한 시대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일차, 이차 세계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차세계전쟁이 끝난 직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눈부시게 문화와 경제, 즉 문명이 고도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국제정세가 위태위태하여져 갔다. 거의 침체상태라고 볼 수가 있겠다. 즉 제 삼차, 사차, 오차 산업혁명을 부르짖고 있지만, 이미 중세말기와 세계전쟁 직전의 국제정세와 너무나 흡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극히 일부 학자들은 내다보고 있지만, 열국의 통치자들은 눈앞에 이익과 영광만을 생각해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상황에 돌입할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에 로마제국 시대가 그 정점을 찍는 시점임을 다니엘의 꿈 해몽에서도 계시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이다. 그 시점을 로마제국을 통해 인류역사의 분기점을 찍게 하셨다. 그것이 바로 기원전과 기원후의 분깃점인 것이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엉뚱한 설(說)을 주장하지만, 분명히 말해주도 싶은 것은 이러하다. 이스라엘의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기 전에 최초의 선지자는 모세라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마지막의 선지자는 세례요한인 것을 아는가? 예수는 선지자가 아니다. 그런데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선지자 예수’, 이것은 복음을 혼란하게 만드는 짓인 것이다. 즉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가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가 오심에 대해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이후에는 선지자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이 잡혔음을 안 후에 예수는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을 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 4:17)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마태 4:23,24)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태 9:37,38)

이처럼 예수 이후에는 추수할 일꾼이 필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올 것을 전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추수할 일꾼으로서 사도(使徒)와 제자(弟子)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장로 된 베드로는 신학적, 역사적, 교리적 종교학을 가르치는 분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베드로’라 하는 새 이름을 주신 뜻이 바로 믿음의 반석이 되게 하신 것이었던 것이다. 사울이 바울이라 이름을 바꾼 것은 스스로 한 짓이지만, 시몬을 베드로라 하신 것은 예수님이셨다.

그러한 베드로의 믿음을 안다면, 어찌 무식하다 할 수 있을까? 천한 신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관념을 가진 자들은 인본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사상이 무엇인지 아는지?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는 사상인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니므롯의 사상인 인본주의 사상으로 인간세계를 다르시고 지배하려고 하는 것에서 나온 것들이 바로 인본주의 사상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성경 전체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복음을 알려고 하기를 바란다. 복음은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와 베드로전후서만이라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란다. 이 말씀 안에서는 진리를 충분히 깨닫게 된다. 욕심은 성령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진실은 성령을 유혹합니다. 꼭 성령을 만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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