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생각]
얼굴 흰 사람들은 은행이라는 큰 집에 돈을 맡기고 가끔씩 이자를 붙여 찾아간다. 그러나 우리 인디언에게는 은행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돈이나 담요가 남으면 부족의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며,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서 얻어다 쓴다. 주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은행인 셈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삶의 기준을 돈에다 두고 있으며, 진실과 거짓조차 돈 앞에서는 자리가 바뀐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우리 인디언들과 사뭇 다르다.
얼굴이 흰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진리에 대해 잘 말하고, 진리가 적혀있다는 책을 늘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세상에 그들만큼 진리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자들도 없다. 만일 인디언 부족 내에 그런 자가 있었다면 당장에 부족 밖으로 추방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책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으며, 누가 어떤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책에다 적어 놓고 찬양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곧 삶이다.
<인디언의 영혼/ 오히예사 지음>
문명세계는 삶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백인의 문명세계는 정복의 역사였다. 진리는 그들에게는 변명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디언들의 삶은 어찌 보면 자연이 말하는 진실함에 충실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책으로 된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깨우치는 수단에 지날 뿐이다. 참 진리는 살아있고, 인간사에 역사하는 능력이 있다.
오래전에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모든 여행계획을 세워서 미국으로 갔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아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기로 했었다. 어찌 보면 그 사람의 도움을 기대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여행계획을 세밀히 세웠는데, 그리고 여행비용을 차입해서 왔는데 말이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피곤하게 계획을 짰니? 그냥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볼거리 있으면 관광하고 그렇게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좋지 하고 말이다.
계획도 없이, 떠돌이처럼 자가용을 이용해 편리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긴 여행을 못하고 자동차도 점검도 하지 않았나 보다. 여행을 중도에 끝내고 그 사람의 집으로 돌아왔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생에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계획 없이, 아닌 그냥 살아간다고........
자연의 생물들을 보면, 동물이나 벌레들도 그냥 살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항상 부지런하다. 그런데 인간만이 되는대로 산다? 그러니 게으름이 있고, 범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인디언이 말하는 ‘삶이 진리이다.’라는 말에 매우 공감을 하게 된다. 그 뜻을 아는가? 왜? 인생이 진리라는 것을 말이다. 모든 인간들의 삶에는 허(虛), 공(空), 무(無)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이런 신비한 말에 현혹되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감격을 한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은 실존이며 사실이다. 이 말은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은 헛되게 살았다는 고백인 것이다.
서양인들은 진리의 책을 갖고 다니며 찬양한다고 인디언이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책으로 인식하는 자에게는 삶 속에서 진리를 찾지 않고 책에서 찾는다. 한편 성경과 성경책의 차이도 그렇다. 그래서 성경책은 거룩한 것이라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그러니 어떤 신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책을 착 펴는 순간, 거기에 쓰인 말씀으로 은혜가 되었다고 자랑한다. 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이는 성경책이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비록 성경책일지라도 그 속에 기록된 성경(거룩한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않겠는가? 인디언이 삶이 진리라고 했듯이, 그들은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처럼 성경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삶을 소중하게 살 것이다. 삶? 자연에서 사는 인생에는 자연에서 진리를 보게 된다. 사람과 함께 사는 참 인생에는 사람에게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디언이 말하는 진리가 곧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