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02] 나이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떡국으로 셈하는 나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빛나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꺼내보는 날이 많다. 무한한 꿈과 앞으로의 가능성 그리고 활력은 나이가 어린 사람과 함께 빛난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릴 적 학교에서 꿈을 묻던 선생님의 질문에 각자 생각하는 원대한 꿈을 이야기한다. 대통령, 가수, 배우,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사람. 활짝 웃으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아이의 얼굴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 눈이 부시다. '어리다'는 것에서 오는 순수함에 어른들은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던 것 같다. 친구들과 꿈을 이야기하던 나마저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부드럽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느껴진다. 마냥 재미있었으니까. 멋진 어른이 된 나를 상상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는데 공식적으로 나이 먹었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설날은 아주 큰 행사였다.
"나 설날에 세 그릇이나 먹었어."
"나는 다섯 그릇 먹었거든? 형님으로 모셔라."
집에 자녀가 많은 집이면 어른으로써의 대우를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서 금세 떡국은 없어진다. 동생들에게 추천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떡국을 열심히 먹고 형·누나·언니에게 반말하지 말 것. 돌아오는 것은 딱밤이니 추천하지 않아요. (나도 이미 해봤고 동생이 반말하는 것도 들어봤다.) 설날은 잘 먹지 않는 아이도 집중해서 먹는 날이기에 그런 모습에 부모님은 활짝 웃으셨고 설을 보낸 후 만난 친구들과는 먹은 떡국 그릇 개수에 대한 이야기만큼 핫한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다. 이렇게 나이는 모두에게 동경에 대상이었고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스무 살을 기점으로 확 변한다. 물론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는 조금 신기할지 몰라도 그 마음이 계속 지속되기는 어렵다.
"야, 우리 이제 반 오십이야."
"와, 일 년 일 년 느낌이 달라. 몸도 좀 달라져서 밤샘도 못하겠어. 어릴 때나 쌩쌩해서 수업시간도 끄떡없었지."
정말 그랬다. 우리는 매해 달라지는 느낌에 이런 말 하면 반 오십을 넘으신 언니 오빠들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고 곧 나도 그런 눈빛을 보냈었다. 어릴 적에는 내가 어른이 되려면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볼 정도로 천천히 흘러갔었는데 막상 스무 살을 기점으로 미끄럼틀을 타듯 빠르게 다음 해를 맞이했고 어른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것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릴 적 멋진 꿈은 크면서도 많이 변하기 때문에 아주 어릴 적 꾼 첫 꿈만큼 반짝이지 않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더 크게 다가온다. 시간이 가속을 받아 흘러간다는 점과 내가 부지런을 떨어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체력도 없어 집-직장의 루틴 속에서 살게 된다. 한 번은 일을 끝내고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생과 함께 같은 전공 동생을 만났는 데 너무 잠이 오고 피곤했다. 체력이 바닥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며 마이너스 값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온 동생의 얼굴도 내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중력은 일을 하는 데 몰아 썼기 때문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에 SNS에서 나이 때 별 깨어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설명한 이미지를 봤을 때는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웃어넘겼지만 몸소 느끼고 있다. 아니 뼈에 새겨지는 중이다.
나이가 가지고 있는 숫자의 의미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고 다른 말을 하시지는 않는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를 형용사처럼 앞에 붙이고 무엇을 했거나 다녀왔을 것이라며 젊었을 적을 회상한다. 나이 중 가장 빛나 보이는 청년의 나이를 지나쳐 오면 이전의 날들이 더욱 애틋해지는 것 같다. 같은 이십 대여도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서 바라본 이십 대마저도 작년의 기억이 더 아련하게 남는 것처럼. 특히 부모님의 세대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과 휴일이 좀처럼 없는 직장을 다니는 시간을 지나오셨지만 과거의 어느 하루가 인상 깊어 마치 비디오테이프처럼 틀어서 보고는 또다시 되감아 재생시킨다. 그리고 내 아이의 나이 때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가장 재미있는 하나의 영화인 것 같다. 애틋하고 철없고, 반성하고 어렸지만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똑 부러질 때는 똑 부러졌던 그리고 나아가는 나. 너무나도 다양했던 내가 있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사랑한다. 아마 나에게 '나'라는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물론 듣는 사람은 거리두기가 없는 정보에 무척 괴롭지만.
딱 어느 시점이라고 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나이에 대한 동경이 붙잡고만 싶은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나이 앞에 붙는 너무 많은 단어들은 애써 나이에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이는 것 같다. 내게 나이는 늦은 밤 아빠의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을 때 차창 밖으로 날 따라오는 달과 같다. 그저 그곳에 그대로 평행하게 혹은 동등한 존재. 하지만 보편적 시각에 의해 화려한 옷을 입는다. 그 반동으로 단점만 부각되어 보인다. 자연은 꽃이 피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난 후 겨울을 맞이하고 곤충은 탈피해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이에 반해 사람은 외적 변화가 더디기에 내 것 중 눈에 띄게 변하는 나이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물론 그만큼 나이를 먹어보지 않았고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감정 또한 느껴보지 못해서 일 수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에게만 너무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숫자에 대해 뭐 그리 깊이 생각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나에게 너무 인색하다. 단지 나이 하나만으로 이미 확정을 지어놓았다. 내가 나를 이뻐하고 가꾸지 않으면서 모두가 생각하는 인색한 나이 평가 속에서 살아가게 할 것인가.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그래."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의 아버지가 말했던 대사인데 듣자마자 마음에 정착한 대사였다. 사실 그렇다. 태어나기를 원래 아빠인 것만 같은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다. 아빠라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듯, 1살도 처음, 13살도 처음, 28살도 처음.
앞으로도 다음 해의 나는 처음 겪는 나이일 것이다. 우리는 다음 해가 왔을 때 새해라는 상징성에 기대어 보지 나의 첫 서른다섯 살, 첫 쉰세 살이라는 처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새해, 새로 시작하는 해처럼 우리 모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늘 흘러가는 일상에 무던해진 것일까,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기에.
28년 산입니다. 당신은요?
우리가 늘 부르던 나이는 몇 살, 90년생처럼 처음에는 나이를 있는 그대로 들어내거나 학교라는 기관에서 벗어나면 내가 몇 살인지 몰라 태어난 년도로 말하거나 학생 때 나의 교실 반 번호처럼 이름을 부른다. 그런 것 말고 나이를 말하는 색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숙성될수록 값이 뛰는 것들이 있다. 똑같이 나이를 먹는다면 내 나이가 값 비싸고 가치가 좋은 것이 좋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28년 산입니다."
이런 인사가 낯설 상대방의 표정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은 이런 말로 시작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찮거나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졌어도 시간이 흘러 가치를 보이는 때가 꼭 온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사람이라면 가치의 재발견을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날을 잘 보듬고 이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너무 예뻤고 한참 예쁘고 예쁠 예정이야."
내게도 처음 겪는 50살이 있을 것이고 60살이 있겠지. 유튜브를 보면 지금 그 나이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많다. 물론 나 스스로 무척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멋있다. 내가 가장 감탄하는 것은 오늘의 나를 위해 하는 것들이 오랜 시간 내가 나에게 공들여 살았다는 것이 느껴지고 그게 멋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저 나이에 도착했을 때 고유의 멋스러움이 몸에 배어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