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03] 과하면 터지고 비워내야 한다.
우웩!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너무 많이 하면 힘이 든다. 스스로도 너무 벅차다는 것을 알지만 묵묵히 버텨내 본다. 하지만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많이 먹거나 마시면 토해내듯이, 너무 불어대면 팡하고 터지는 풍선같이.
대화도 그 하나이지 않을까. 오가는 대화에서 서로에게 혹은 제3자와의 대화에서 받은 말은 받게 되면 게워내야 하는 단계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살면서 많은 대화를 이어간다. 말의 형태가 스몰토크 수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야기의 소재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기분 혹은 생각에 따라 묵묵히 쌓아오던 것의 맹점을 발견하고 쏟아내기도 한다. 그럴 때 모든 감각에서 다양한 것들을 느낀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으로, 대학생 혹은 사회초년생으로 흘러가며 듣도 보도 못한 환경에서 그 감각기관은 소위 열일을 한다.
특정 상황이나 환경 같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 주길 바라보지만 하루 온종일 시달리기를 몇 번. 또, 어떤 이는 눈치 없이 굳이 찾아와 하는 말에 겨우 가라앉힌 감정이 날카롭게 세워져 날을 부서 내기도 몇 번. 위에서 쏟은 말이 아래로, 그 아래에는 또 아래가 있어 또 쏟아지기를 몇 번. 바람 잘 날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지겹고 답답한 말들 속에서 온전히 나로 존재해 나를 지켜낸 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의연하며 어른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아니, 어른이란 무엇일까. 다들 그저 이렇게 살아내는 것인 걸까. 애써 표정으로 가리고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말아 올려 보길 몇 번. 숨 가쁘게 지낸 오늘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하루의 끝에서 풀어내는 과정은 나를 위함일 것이며 오늘 함께 지쳤던 이들과의 이야기는 쓴 약을 먹고 난 후 먹는 사탕 같다.
나 지금 누구한테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가끔 이렇게 비워내는 과정마저 무차별적이며 무형상의 대상에 대해 쏘아붙이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날 하루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를 위한 대화였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과열되어 가는 것 같은, 마치 그때 가지고 있던 감정에 기름을 부어 더 타오르게 하는 것 같을 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오늘 하루가 벅찬 거겠지.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나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게워내는 과정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내 모습은 가끔 낯설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인 걸까,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인 걸까. 조절하려고 만졌는데 멈출 줄 모르고 가속만 붙은 기차 같은 인상을 받는다.
적당한 선이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 곳곳에서는 건강한 대화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강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경우 어떻게 방어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세세한 설명이 나열되어 있어 목록을 읽는 그 자체로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켜내는 것에도 수많이 담금질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받고 싶지 않은 선물처럼 부담이 마음에 고인다. 어쩌면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고이는 것 자체일 수도 있겠다.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모두 연소하여 재가 될 때까지 게워내기를 반복한다.
언제쯤이면 이런 과정이 멈출까. 즐기거나 익숙해지거나 혹은 멈추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포기하게 될까. 내 나름의 삶에서 꽤 오래 생각해왔지만 나에게 적절하고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날은 없었다. 사실,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속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하느라, 한참 이후에야 나 자신이 또 똑같은 굴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Over -, 겉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아도 너무 많은 것에 얽혀 사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