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으로 가득한 저녁

[어른이도 찡찡대고 싶어요] 공기로 흩어질 말

by P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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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멋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명언 같은 말을 뽐낼 것이다.

"공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공을 가진 당신이 어떻게 하기에 따라 물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황한 상황을 깔끔하고 감동이 있게 말할수록 명언의 자태를 갖춘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결국 하나의 문장에 귀결된다.

'어찌 되었든 네 스스로 잘해봐.'

그래서 재미가 없다. 사실 이런 조언은 10번 해준대도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공을 가진 사람도 모르는 말이 아니니까.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안 하든 대부분 화살을 밖으로 던지지 않는다. 화살을 계속 자신에게 겨눈다. 자려고 누운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을 하면 좋았을지, 더 좋은 말은 없었는지 시뮬레이션을 자꾸 돌린다.


인수인계받은 업무들을 스스로 처리하면서 나름 익숙해져가고 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 사람 분량의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하기에 조금 더 빨리 업무에 익숙해져야 했다.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바쁜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앉아 빠르게 뒤로 사라지는 풍경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건네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휴대전화 너머에서는 고함이 넘어왔다. 같은 부서의 D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우렁차다. 전화업무를 하고 있으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떤 물건을 찾는 것 같았는데 보이지 않아 전화로 물어보려고 한 전화 같았다. 화가 가득한 큰 목소리에 놀라 당황한 나머지 아주 천천히 말을 건네자 화를 내며 전화가 끊어졌다.


분명 모든 업무가 끝나 다들 집으로 향했고 처리하지 않은 업무도 없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문제를 찾기 위해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를 다시 재생시켰다. 문제가 되었던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 이건가. 저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퇴근시간의 지하철의 모습은 산속의 절처럼 고요하다. 다들 치열했을 공간에서 자기 몫을 다 해내고 집으로 가는 에너지만 조금 남겨두었기에 아침에 조금 있던 생기마저도 없다. 말할 힘도 정말로 없다. 그런 적막을 한 통의 전화가 부쉈다. 휴대전화를 내리니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애처로운 것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었다.

'아, 다 들렸구나.'

황급히 고개를 돌려 조용히 내 무릎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실수들이 쌓여서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탈피하면 나아질까.

가끔씩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을 회상하게 된다. 어른스럽게 경험이라는 빛깔 좋은 단어를 얹어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림을 배우면 묘사가 필요하다.

대상의 특징인 질감을 잘 살려내서 그 사물다워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무는 나이테나 결을 살려야 하고 쇠는 대비감과 무게감을 그리고 유리는 가볍고 안이 투명하게 보이는 느낌을 잘 살려야 한다.

이때, 겁을 먹고 그림 시범만 보여달라고 하면 보는 눈은 좋아졌을지 몰라도 실속이 없다. 반대로 묘사하는 것에 겁이 없어 계속 파고 있는 경우 대상의 형태감이 무너지기도 한다. 둘 다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쌓아야 하지만 그래도 둘 중 더 나은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다. 후자는 가까이 다가가서 어깨를 톡톡 치고 말해주면 된다.

"거기까지."

정도를 알려주면 된다. 어디서 멈추면 되는지, 이쯤 하면 되었다고.


이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데 왜 가끔 옛 기억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지금도 내 바람은 찰나였을 뿐인 전화 한 통이 저녁을 망치지 말고, 놀랐을 감정을 정리하는 것에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회사원이 되었으니 회사에서의 일로 고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을 기약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나를 다독일 필요가 있다.


어린 어른은 늘 밖의 것이 고민이다. 누군가 멈출 구간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잠을 자려고 누운 밤에 애써 잠을 청하면서 고민을 잠시 멈췄다.


회사원의 고민은 쉬운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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