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설늙은이] 첫 번째 이야기
안녕, 우리 되게 오랜만이다. 그렇지?
너무너무 오랜만이야.
이 글을 쓰기까지는 마음속에서 깔끔해 보이는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굽이굽이 진 산길을 넘어 깊은 바닷속까지 지나와야 했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아직도 여행 중이야.
글을 시작하게 된 건 꽤 오래된 일이야. 그런데 왜 글을 쓰고 싶었는지에 대한 내 답변을 써 내려가기까지가 참 오래 걸린 것 같아. 스스로 가진 질문에 답을 내려고 멋진 글을 보고 유명하고 마음에 와닿는 말을 해주는 강연자의 강연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어. 나의 미미한 노력이라는 겉포장 안에는 사실 끝없는 나에 대한 의문과 검열 속에 있던 시간들이 담겨있었지. 그런 과정 속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져서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고 글을 쓴다는 행위가 마음을 아프게 해서 덧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어. 이상하지? 글쓰기가 마음이 아프다니 그런 게 무슨 소리인가 싶고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나 싶었어. 근데 허무맹랑한 글을 쓸 수는 없더라. 내 마음은 붕 떠올랐다가도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데 보는 사람 좋자고 빛 좋은 개살구의 글을 쓴다는 건 속은 텅 비어있으면서 소리만 요란한 과자 같은 느낌이었거든. 사실 너도 잘 알 거야. 그런 글은 서두만 읽고 뒤로 가기를 누르게 되니까.
그래서 긴 시간을 내게 주었어. 살면서 생각이라는 무대에 나를 주인공으로 올린 적 없던 내가 나를 무대 위로 올렸지. 이게 영화라면 주인공 나, 조연 나, 행인 1 나, 감독 나, 편집 나 이렇게 흘러가겠지? 응, 쌩쑈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어. 지금까지의 나와는 너무 다른 행동이었지. 하지만 무의식 어디에선가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이한 경험을 했어. 내가 가진 말로 풀어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어. 내게는 쌓이지 않았던 어떤 것들의 데이터가 필요했거든. 그런데 위인의 명언, 유명한 사람의 말 이 모든 게 마음에 닿았지만 온전히 내 것은 아니라는 것과 그들도 자신이 한, 명언이 되기 전의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만의 슬로건을 만드는 것이 주요 과제일지도 모르겠어.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안 하면 나는 또 아플 테니까. 누군가는 그럴 거야. 너 그럴 시간에 공부를 더하고 일을 열심히 하라고. 근데 그런 말은 우리 모두가 모든 말을 차단하는 헤드셋을 끼고 상대방한테 전달하는 말 같지 않아? 고요 속의 외침. 나는 꽤 그 말에 집중하던 1인이긴 했어. 사회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 말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거든. 동시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지. 주위를 돌아봐도 모두가 열심이던 환경에서 나 혼자 청개구리 같이 행동하는 건 에너지 소비가 큰 일이었어. 허들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식으로 모두가 가는 길을 따르면서 정반대의 방향을 갈망했어. 그런데 끝이 없더라. 이래야 해. 저래야 해. 쌓아야 할 덕목은 내 인생에서 다 끝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고 쌓여가고 있었어. 숙제를 끝내야 내가 놀 수 있을 텐데 끝나지 않더라. 수능이 끝나면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물론 수능 공부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그게 주는 압박감이 굉장했지. 나의 대부분을 교정해야 알맞은 정답 같은 거였으니까.
그렇게 대학을 들어가서 1학기가 끝나고 2학기 중반쯤이었을까, 몸이 너무 좋지 않은 날이 찾아온 거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아주 추운 날이었고 동아리에서는 놀러 가자고 하는데 몸살처럼 몸이 아프길래 집으로 향했어. 집까지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버스나 마을버스로 환승해서 가는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기 시작한 거야. 마치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걸 해본 적 없는 육지로 올라온 물고기 같이 숨이 역행하는 기이한 감각이 날뛰기 시작한 거야. 식은땀이 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앞이 하얘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존재감을 보였지. 몸에서 힘이 빠져서 걷는 게 아슬아슬한 상태에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여름날 아스팔트에 누군가 떨어트리고 간 아이스크림처럼 식은땀이 아주 아주 주룩주룩 흘러내리더라.
곧 첫 번째 환승역이었어.
'그래 이번에 내리면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조금만 쉬자.'
문이 열리기만 하염없이 바라면서 문 앞에 기다란 손잡이를 있는 힘껏 붙잡고서 정신을 가다듬었지.
여기서 감동 포인트는 손잡이를 꽉 붙잡고 쓰러지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뿌듯해. 좀 장하잖아?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했으니까.
내가 고대하던 지하철 문이 열리고 눈앞에 보이는 의자까지 한 발 한 발 용써가면서 걸어가 앉았고 본능적으로 손을 모아 입을 가렸어. 호흡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앉아있으니까 괜찮아지더라. 그래서 환승을 하고 집으로 걸어갔지. 집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방금 있던 일을 이야기했어.
"엄마, 아까 내 몸이 이랬다?"
"어머, 그럼 바로 병원으로 가야지!"
"아냐, 괜찮아졌어. 그리고 여기 집 앞인데 집 가서 쉬고 싶어."
부디 나 같은 곰탱이가 있다면 부디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라.
그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무심코 지나치는 선택을 한 결과는 아주 오랜 시간 혹독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