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다시 본 그날을 기억해

[우당탕탕 설늙은이] 안녕, 친구야

by Pabe
1.jpg [그곳에서 우연히 너를 만났지]


그날은 당황스러움에 연속이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아빠 가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너무 덥다고 생각했다.

가게에 도착해서 밥을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가 심각하게 날 쳐다봤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우리 언니는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아가는 건강염려증 인간이라 하다 하다 이제는 내 목소리 가지고 뭐라고 하는가 했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언니는 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보며 목소리가 이상하기에 병원에 무조건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뭐가 이상하다고 하는 거야? 왜 이상하다고 그래!"

언니를 잘 아는 아빠는 그런 언니의 말에 얘가 또 호들갑을 떤다며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언니는 말을 그만한다거나 하지 않고 완강했다.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니 병원에 가야 한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내 목소리가 문제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엄마와 건너편 병원으로 향했다.


'결국 병원행이구나. 어차피 큰 일은 없을 텐데.'

언니의 호들갑은 나도 겪어봐서 아는 것이라 큰 감흥이 없었다. 드라마틱한 상황 연출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런데 큰일이었다.

병원에서 나는 1차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은 후 다시 의사 선생님 방에 불려 갔다.

엑스레이 사진에는 시커먼 배경 위로 뼈와 내부장기들의 모습이 하얗게 보였다. 유독 한 곳이 큰 비중을 차지한 상태의 조금은 묘한 사진 끝에 내 이름 석 자가 적혀있었다. 땀을 닦으며 앉으니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봤다.

"여기 이거 보이시죠? 이게 심장인데 일반적으로는 손 정도의 크기인데 크기가 너무 큽니다. 갑상선도 지금 문제가 있고요. 제가 병원을 소개해드릴 테니 바로 병원으로 가세요."

좀 벙쪘다. 뭔가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병원을 나와 바로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소개받은 병원은 꽤 유명한 병원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그 많은 사람들을 정리하느라 간호사분들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병원이 큰 건물로 확장이전을 하기 전 그곳에서의 마지막 날이어서 많이 부산스러웠다. 사실 이 날은 바쁜 인상이 최대의 기억이다. 바쁜 병원과 의사의 소개서를 들고 간 날이라는 점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벅차 전문 의사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에 확장이전한 병원으로 가서 더 상세히 진료를 봤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려 바로 보이는 수납 데스크로 갔다. 그때였다. 수납을 받는 여성분이 너무 묘했다. 진료를 위해 왔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의 얼굴이었다. 진료를 위해 수납을 하고 있는데 문득 그분이 내게 말을 건넸다.

"우리 어디서 봤지 않아요?"

질문하는 그분의 얼굴도 그리고 나도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이전의 기억들을 되돌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오래 전이 아니라 꽤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는데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라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약 4년 만에 보게 되었는데 어였한 직장인이었던 내 친구를 병원에서 마주하게 될 줄 몰랐지만 먼저 사회에 나와 멋지게 일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반가워 기쁨의 어떤 감탄사를 내뱉으려던 찰나 친구가 날 당황스럽게 했다.


"널 이곳에서 보고 싶지 않았어."

어느 말도 이보다 단호할 수 있을까? 친구의 말에 나오려던 인사말이 목에서 탁하고 걸려버렸다.

직업의식이나 병의 크기보다도 동네병원이 아닌 큰 병원에서 친구와의 재회는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었겠지. 친구는 그곳에서 나이와 성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병을 마주했을 것이고 대부분에게 드문 일들이 드문 게 아닌 현장에 있었기에 나에게 단호한 다정함을 내게 건넸다. 하지만 그 말의 형태는 내게는 너무 낯선 대화방식이라 엄마가 친구에 말에 옅은 미소를 띠며 친구의 말을 설명해 줬지만 그 말에 내포하는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친구야, 그때 너무 둔탱이 같이 굴어서 미안. 그래도 많이 아팠던 초반에 병원을 가는 게 많이 벅차지 않았던 건 네가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그 앞에 있어줘서였을지도 몰라. 수납 데스크 옆 번호표를 뽑고 나를 호명하는 사람이 너일 때마다 반가웠어. 수납해 주는 너도 웃고 나도 그런 널 보면서 씩 웃었으니까. 병원을 찾던 그 하루에 웃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 너의 다정함의 크기와 깊이를 완벽히 이해했는데 이제 서른이 되었네. 진짜 둔탱이다, 그렇지? 거기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친구가 이 글을 읽는 우연한 날이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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