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걸 알게 되니 아프다①

[우당탕탕 설늙은이]

by Pabe
[어지러움과 역행하는 호흡 그리고 식은땀에 힘들었던 기숙사 통로]


아픈 걸 알게 되니 아프다니 정말 둔탱이 중에 둔탱이 같은데 말까지 둔탱이스러우니 고구마를 우유 없이 먹은 듯 답답함이 한가득이지만 이때의 나는 명확히 그리고 선명하게 이런 아이였다.


대대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던 시점을 논하자면 친구와 마주쳤던 날로부터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한차례의 지하철 사건 이후에 학교에서 100명을 뽑아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1년을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학교의 엄청난 경제적 지원 아래 자매를 맺은 미국학교에서 그곳의 문화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건 무조건 가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 첫 해외는 무조건 학교 돈으로 간다!'

나의 이 폭발적인 열의는 교내 외국어 교육원에 수업을 신청해서 원어민과 되지 않는 영어대화를 씨름하게 했다. 동사 다음에 주어인지 주어 다음에 동사인지 모를 말로 한마디 뱉어보겠노라 했던 내 노력의 기저에는 고등학교가 있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이 근처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때에 갑자기 똥종이 하나를 받게 되었다. 읽어보니 어디로 수학여행을 가고 싶냐는 질문이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는 전통적으로 제주도를 가던 학교였다. 목록에는 제주도도 있었지만 남도라는 항목이 있었다.

'남도..? 남쪽 어디 섬을 말하나? 그럼 제주도보다 더 재미있지 않을까?'

"야, 이거 여기 남도라고 쓰여있는데 이거 혹시 어디 섬인가?"

"그러게 말이야."

모두의 선택에 수학여행의 재미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신중히 남도를 골랐다. 그리고 그 결과 전라남도를 가게 되었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학교의 말장난에 속았다는 것에 화가 났다. 거기에 2박 3일 일정에 7박 8일 일정을 꾸역꾸역 쑤셔 넣어 체력 좋은 고등학생도 지치게 만들었고 다음 학년부터는 자율형 사립고가 되어 수학여행을 유럽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경험들이 나의 해외에 대한 갈망에 아주 아주 좋은 땔감이 되어주었다.


서류, 면접 그리고 원어민 수업을 거쳐 미국에 도착해서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참가했다. 예를 들어 핼러윈 유령 역할, 새해 준비 이벤트, 멕시코 집짓기 봉사 등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참여하며 수업 외에도 배울 수 있는 모든 걸 배우고 경험했다. 한국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환경이 신선했고 그걸 배울 수 있음에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었다. 돌아오기 두세 달 전쯤부터 지하철역에서 겪었던 일이 매일매일 일어났다. 방학기간에 학교 밥이 아닌 기숙사 부엌에서 밥을 지어먹는 걸 선택했는데 밥을 먹지 않으면 손이 덜덜 떨렸다. 손을 넘어 팔까지 덜덜 떨렸고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으로 머리가 젖고 앞이 일그러졌다. 방에서 부엌까지 약 열다섯 걸음의 거리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고 통로를 빠져나가는 동안 벽을 짚고 걷지 않으면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찌어찌 도착해서 쌀을 대충 씻고 냄비밥이 다 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라앉혔다. 이때는 하루일과는 동면에 가까운 잠과 식사 정도가 거의 대부분이었기에 매일매일 이 일이 일어났지만 아침과 점심을 제때 먹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힘겹지만 밥을 먹으면 진정되었기 때문에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그 쯤해서 몸이 안 좋은 애들이 한의원을 다녀왔기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되돌아가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굳이 가야 할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멘토 학생(-현지 대학생을 선발해서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활동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이 바깥의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멘토와 함께 멘티들이 모여 해산물을 먹으러 가서 신선하면서 맛있는 해산물을 배불리 먹고 근처 마트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계산대 앞에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식은땀과 호흡이 가빠져 몸을 가눌 수 없어 계산대 앞에서 몸이 기억자로 구부려졌다. 무슨 힘이었는지 그러고 나니 좀 괜찮아져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기숙사로 돌아와 차에서 내리는 순간 털을 뱉어내는 고양이 마냥 구토감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멘토와 멘티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멀리 도망쳐 게워냈다. 정말 최악의 경험이었던 건 여태껏 살면서 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토가 올라왔던 점이고 토를 하고 나니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는 거였다.

약간의 시간차가 있지만 위와 아래가 정말 들끓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기보다 괜찮을 줄 알았고 그게 그렇게 될 줄도 몰랐다. 몸이 진정될 때까지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화장실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정리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걸어서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내가 아프다는 것보다 아무도 내가 아팠던 걸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어린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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