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걸 알게 되니 아프다③

[우당탕탕 설늙은이] 우선순위에 들지 못한 내 건강

by Pabe
[ 모두가 각자 아픈 구석이 있다 ]


제대로 진료해 주는 곳으로 갔어야 했다는 핀잔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당시 병원에 대한 신뢰가 좀 깨져있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때 빗길에 고속도로 초입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무릎을 기준으로 다리가 크게 멍이 들었다. 무릎을 굽혀 걷는 것을 할 수 없어 컴퍼스 마냥 한쪽 다리를 크게 원을 그리며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길로 집 근처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정형외과를 방문했는데 (-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것 같이 옛날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옥색의 아주 오래된 병원 디자인이었지만 오래된 만큼 의사 선생님에 신뢰가 두터운 병원이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지하에 있던 물리치료실로 내려갔다. 그곳에 있던 물리치료사분들께 치료를 받았는데 무릎 두 쪽이 기묘한 색들로 얼룩덜룩 부어올라있는 내 다리를 처음에는 두쪽을 다 치료하다가 다음 방문부터는 색다른 방법으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분명 얼룩덜룩하니 추상화 같은 무릎 두쪽을 다 까서 보여줬건만 물리치료기기를 손에 들고서 질문했다.

"네?"

"어느 무릎이 제일 아프세요?"

질문의 의도나 알맞음 정도를 이해할 수 없어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쳐 갔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고가 났을 당시 크게 부딪힌 쪽은 오른쪽이라 오른쪽이라고 하자 물리치료기기를 오른쪽에만 붙였다. 이후에 방문을 해도 계속 오른쪽 무릎만 고집했고 나아지는 느낌을 받지 못해 재방문을 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로 한의원에 방문했을 때 그 황당한 경험이 기억나 이야기하니 한의원에서도 교통사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더 아쉬울 뿐이었다. 결국 그 당시 크게 다쳐 부어오른 오른쪽 무릎은 그 형태 그대로 고착화되었고 비가 오는 것을 알리는 시큰한 무릎으로 변해버렸다. 비가 많이 오면 무릎의 통증은 발목과 쎄쎄쎄를 하며 고통을 함께 나눴다. 비가 오기 전이면 무릎과 발목의 신경이 시큰해서 꾸준히 그 시즌이 다가오면 한의원에 가서 침치료를 받았다. 이후 운동을 한다고 무릎에 무게가 실리면 내피를 뾰족한 무언가로 찌르는 느낌이 남아있어 푹신한 물건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간혹 과방에서 다리가 시큰하면 밖에 나가 밥을 사 오려는 애들을 웃기려고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얘들아, 우산 챙겨가."

"왜? 지금 비 안 오는데?"

"아냐, 올 거야. 곧."


몸은 다른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4번에 계절이 변하는 간절기 때에 맞춰 매번 편도가 부어오르고 열이 펄펄 끓어오르며 사이렌을 울렸다. 그럼에도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등 나의 일상을 이어갔다. 특히 여름에 편도가 부었을 땐 몸이 으슬으슬하니 추운데 여름이라 더운 것도 동시에 느끼는 희귀한 경험도 했다. 그 기묘한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지던 여름날, 학교에 도착해 같은 수업을 수강하는 선배에게 내 상태를 농담처럼 이야기하며 지나쳐갔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은 끝까지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셋, 두울, 둘 반의 반의 반, 반의 반의 바안-."

신호를 읽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은 죗값을 톡톡히 봤지만.


여기까지 보면 지 입으로 둔탱이라더니 진짜 속 터지게 만드는 둔탱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내 삶에서 우선순위들이 늘 존재했다. 이걸 하고 나면 다음에 할 것이 정해져 있었고 꽉꽉 들어찬 수업과 과제를 쳐내기 위해 아침부터 리포트를 끝내는 등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는 것들을 끝냈다. 우선순위라는 글자아래 나는 중요순위에서 늘 밀려났다. 그나마도 덜 아플 때가 아니라 몸 상태가 나쁠 때로 나빠진 상태로 병원을 갔다는 게 문제여서 집 앞에 매번 들락거렸던 이비인후과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

"38.7도인데 지금 오면 어떻게 합니까!"

우선순위들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늘 앞섰기 때문인지 체온이 매번 널뛰어도 그게 또 익숙해져서 버틸만했다는 게 내 변명이다. 만약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거나 빨리 낫지 않을 때에는 이비인후과에서 링거를 맞으면 마치 게임 속 포션 같아서 훅 떨어진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에 나름 믿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사실 우리 과는 모두가 다 어디 한 군데는 아프다. 디자인이라는 전공은 겉으로 봤을 때 우아하고 멋져 보이지만 개강을 기점으로 일주일이 지나면 다들 본래의 모습을 보인다. 퀭하고 창백한 인상에 후드티나 모자를 쓴 모습에 손목 보호대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학교에서 하는 체육대회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디자인 전공이랑 붙어서 지면 그건 진짜 심각한 거다."

매일매일이 과제고 시험인 전공인지라 체력이 마이너스를 찍는 전공한테 진다는 건 건강상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체육대회를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도 해 그마저도 과제를 하는 하루로 이어졌다. 나를 이루고 있는 환경이 이렇다 보니 내가 아픈 것이 크게 와닿지 않기도 했다. 무덤덤과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주를 이뤘다.


"너 완벽주의니?"

한 날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당시, 자세한 뜻은 모르고 내가 열심히 한다는 점을 알아준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기만 했다. 그게 20대의 나였다. 손이 느린 탓에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고서 마무리 일정에 여유를 갖는 스타일인지라 늘 바쁘고 모든 게 촉박했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해내야 하는 걸 해내고 받아야 하는 성적을 받아야 했기에 건강이라는 키워드는 꽤 먼 것이었다. 젊을 때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그때에도 있었던 말이지만 글자로 읽혔지 마음에 와닿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잠이 부족해도 방학에 몰아서 쉬고 자면 되니까. 그리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으니까 방해받고 싶지 않아.'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중해서 작업을 할 때 머릿속에 고민들이 고요해지고 온전히 집중한 희열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건강은 실시간으로 미끄럼틀을 타듯 순위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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