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말하는 안정이라는 불안 ③

[우당탕탕 설늙은이] 알고 보면 주먹구구식 업무인 세상입니다

by Pabe
[우당탕탕 설늙은이 오디오북]

내가 직장에 들어갔을 때 함께 일하게 된 사람은 이곳에서 일한 지 아주 오래된 한 분과 나보다 약 일 년 정도 앞서 들어온 사람으로 총 3명이서 같은 업무를 분업해야 했다. 그중에 일을 오래 한 분은 그 분야의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전전긍긍한 면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부서에서 업무를 요청하면 이것이 우리 부서에서 해야 하는 일인지, 센터장의 승인이 났는지의 유무보다 앞서해줘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 기저에는 자신의 평판이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이 더 발달하게 된 이유는 직장의 생태가 기반된 것이기도 했다. 업무요청이나 업무지원이라는 글자는 행정적으로 그럴싸한 포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이거 너네가 할 줄 아니까 너네 업무잖아 라는 다소 논리가 빈약한 말들이 놓여있었다. 업무지원 요청으로 일을 지원하면 분명 지원일 텐데 일 자체를 처리하게 되는 황당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게다가 어떤 때에는 전화 한 통으로 공문을 보내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 업무시간인 9 to 6는 늘 형식적인 것이었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알지 않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다들 집에 갈 때 집에 갈 수 있는지, 이 엉성한 업무처리에 조금씩 피어나던 의문에 질문을 몇 차례 던져보았지만 늘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이거 안 해주면 소문이 어떻게 나는 줄 알아? 진짜 사람을 이상한 사람 만든다니까?”

“그럼, 일 안 받으면 되지 않아요? 이래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거면요. 애초에 이쪽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닌 데다, 일처리는 여기서 하고 공은 그쪽에서 먹는다면서요."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그러면 뒤에서 욕해.”


그분의 볼멘소리에는 늘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업무지원을 해줘도 욕먹고 안 해줘도 욕을 먹는 이상한 환경에 놓이고 공은 또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나. 애초에 무엇을 선택하든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고 이쪽 일이 아니면 안 받으면 될 텐데 해주고 불만을 쌓아 올렸다. 서서히 깨달았지만 그분은 싫은 소리에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 비슷한 것을 갖고 있는 어른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쏟아져 들어오는 업무를 그저 쳐내기만 해야 했다. 꼼꼼히 애쓰고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9시 이후까지 남아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 일을 잘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그 분과 그 모습을 보고 기특해하는 상사를 보고 속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매번 늦은 시간까지 처리하는 업무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의문은 의문을 쌓아 올리는 벽돌 같았다.

확실한 건 계속 이렇게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코로나가 터지고 난 이후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분명 잘 정리하고 업무를 나눈다면 제시간에 일을 끝낼 수 있었고 이전보다 업무의 크기나 질 그리고 속도를 따져야 하는 업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더 이상은 보여주기식의 모습이나 정치적인 행태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디인가. 회사의 첫인상은 모두가 바쁘게 움직여 자신이 맡은 바를 다 끝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속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것이 환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에 바빴고 잘하는 사람 덕을 본 사람은 여유가 넘치지만 아닌 척 연기하는 곳, 그곳이 회사였다.


누가 이런 환경을 만들었는가 라는 책임의 담당자를 찾는다면 그건 마녀사냥에 가까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운이 나쁜 누군가가 걸릴 수도 있고 더 교묘한 연기와 수를 내놓을 것이 뻔한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명석하게 파악했다면 좋았겠지만 실전 사회경험이 없는 초년생은 그저 모두가 대단해 보였고 그럴싸한 근사함에 대단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저 하나씩 쳐내고 계절이 바뀌고 또 새로운 해가 오면 알 수 있게 되더라. 이곳이 이상적인 곳은 아니라는 걸 의문을 쌓아 올리다 보면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첫인상과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했을 때 혼란을 겪기도 했다. 내가 잘못된 생각과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된 것인지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한 적도 있었으나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럴싸함은 착실한 누군가의 혼란과 노력으로 일궈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그럴싸함보다 외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기에 그런 모습이 일반적인 것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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