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말하는 안정이라는 불안 ④

[우당탕탕 설늙은이] 업신여김을 받을지라도 나아가는 것만이 내 것이었어요

by Pabe
[ 우당탕탕 설늙은이 오디오북 ]


남들이 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곧 자신인 것처럼 행동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했던 그분의 행동은 바뀔 일이 없었다. 일은 계속 들어오고 센터는 일에 대한 결정이 미약했기에 무엇이든 받아낼 뿐이었고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분은 평가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었기에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편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 전체가 못마땅했다. 분명 다른 부서는 업무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단호한 거절의사를 총괄하시는 분께서 전달하셨던 걸 많이 봐왔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부서는 달랐다. 그저 개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만이 이곳의 환경이었다. 어째서 일에 영역이 없는지, 일의 체계는 어째서 사람에 따라 이리저리 달라지고 그저 처리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껏 차오른 고민은 생각을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나를 이끈 생각은 어릴 적에 읽었던 어린 왕자였다. 어린 왕자가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던 때에 만난 다섯 번째의 별의 어떤 착실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에 비해 별이 도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1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끄는 행위를 했어야 했는데 어린 왕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사내를 보며 타인에게 업신여김을 받겠지만 이 사내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일하기에 친구가 될 사내로 생각했다.


나는 이 사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돌아가는 데 있어 수수하고 소소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있기에 원활하게 세상은 돌아간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 사내 정도의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의문과 함께 혼란이 공존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문제의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할 사항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비록 내가 명쾌하게 디자인을 앞세운 곳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라는 그럴싸함 아래 들어오는 모든 일을 쳐내야 하는 역할이었음에도 나는 그곳에서 디자이너였다. 내 행동과 결실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역할을 다했기에 나는 한순간도 디자이너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디자인이란 참 딜레마가 큰 직업이었다. 그곳에서 '그린다'와 '만든다'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속했다. 해야 하는 주 업무는 그것들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이곳의 환경에 따라 흘러갔다. 나름의 선을 그으려 애써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가뿐히 넘어 들어왔다. 그러자 그 사내가 하는 일이란 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쓰고 애써서 기반을 붙잡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누군가 보기에 업신여겨질 수 있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일이야. 모든 문제가 말해주고 있잖아. 흔들릴 필요는 없어.'


코로나가 터지고 난 후에는 일이 더 들어왔다. 첫 일은 해결책을 구하는 듯 방문하신 분께 이쪽에서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인력과 일정 등의 이유로 정중히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드리자 윽박과 함께 압박을 마지막 카드로 내비쳤다. 그 상황은 날이 추워서인지 더 서늘하고 날이 선 듯이 느껴졌다. 애초에 안된다는 건 마음속에 여러 조건 중에 두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긍정을 내놓을 때까지 이어졌다. 결국, 일은 하게 되어있었다. 장소가 부족해서 다른 곳을 빌리는 것까지 이어졌고 쉼 없이 움직여야 했다. 들어온 일을 쳐낸다는 문장을 자주 쓰게 된 때도 이때쯤이었다. 마치 공장을 돌리듯 일하고 또 일하고 옮겨가서 일하고. 그러고 돌아오면 전화업무와 우리를 찾는 다른 분들의 문의사항이 또 한가득 쌓여있었다.


"너네는 어디를 이렇게 다니는 거야. 여기 업무는 어쩌자고!"


치열하게 업무를 쳐내고 돌아오자 들었던 한 소리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일이 쌓였을 것이라는 예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분신술을 쓸 줄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부랴부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기운이 쭉 빠져버렸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얼른 짐을 싸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너덜너덜한 상태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면 현대식 불멍인 휴대폰을 켜놓고 그 안의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내게는 정신이 쏙 빠질 듯한 그 아득한 시간에 대한 쉼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보상심리가 강해져 휴대폰을 보고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이 편안한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그 위에 누워 휴대폰을 하다가 밖으로 기어나가 어중간한 저녁식사를 하고는 다시 한껏 구부린 새우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응시했다. 그 행동은 달콤했으나 끝끝내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걸 느낄 때쯤 눈을 뜨면 또다시 출근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서서히 이상해져 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밥을 챙겨 먹고 도시락을 싸서 밖으로 향했는데 가스불은 꺼져있는지 집 문은 잘 잠궜는지를 몇 차례 확인하고 그리고 밖으로 향하면 곳곳에 내가 비쳐 보이는 모든 벽면에 내 모습을 살폈다. 옷을 쥐고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는지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 확인하는 버릇은 내가 길에 있든 지하철에 있든 버스에 있든 상관없이 몇 번이든 옷깃을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집과 회사만 오가야 한다는 압박이, 눈을 뜨면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리고 그곳에서의 인간관계와 업무가 나라는 한 개인을 지워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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