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설늙은이] 나는 또 한 번 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예리함이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사회에 나와 직장을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내 하루하루가 가득 찼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온 신경은 일에 집중되어 있어서 쉬어야 하는 퇴근 후나 주말에도 온통 일과 관련된 생각뿐이었다. 이런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보기 좋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흔히 보는 쇼츠에는 어느 대단한 제력가의 말을 일부 인용해서 일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에 지름길이라고 설명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훌륭하게 잘 단계를 밟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딱 알맞은 평균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닥쳐온 모든 일들이 끝나고 나서는 너무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쇼츠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정말 적재적소의 영상이지 않은가. 짧은 길이였으나 웅장한 음악과 진중한 그 사람의 말을 설명하는 영상은 탈탈 털린 이후의 나에게 허탈함을 안겨줬다. 물론, 내가 잘못 적용했을 부분도 있었겠으나 시기별로 유행하는 근사한 누군가의 말은 항상 존재했고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와 반대되는 느낌의 영상들이 또 인기를 누렸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면 어리숙했던 부분에 대해서 민망함에 눈을 꾹 감았다 뜨기도 했으나 그게 모이고 모여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었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냈음에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고 난 나머지는 후회의 조건을 갖춘다. 나는 일에 오롯이 몰두했기에 걸려오는 가족들의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 내내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빴기에 그랬던 것이 주된 이유였으나 그것이 상처가 되었던 것을 알았을 때 후회가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했던 것인지 이 질문 아래에 휘몰아치는 혼란과 후회를 가득 안고 있었다. 일을 한다는 건 쉽게 말해, 먹고살기 위함인데 배울 것이 많았고 코로나라는 특성이 나를 일 밖의 영역에는 손쉽게 시선을 주지 않게 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러했다. 집과 회사만 오가야 하며 권장이었던 것은 의무였으며 한껏 예민해졌고 타인의 행동을 너무 손쉽게 재단할 수 있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 같은 말을 겉에 포장한다면 그럴싸 해보일 수 있겠으나 지나온 것에서 배운 것과 느낀 것이 많아진 나는 더 이상 사회가 말하는 안정에 걸맞은 행동을 하며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게 삶을 사는 답지가 되어줄 수 없었다.
보다 이전에 갑상선 문제로 약을 먹고 공황과 과호흡이 오던 경험을 잊지 않고 행동하려 했으나 나는 또다시 여러 가지 병을 얻었다. 한 곳이 문제가 되자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곳저곳이 문제가 되었다. 손목 염증, 과민성대장증후군, 이석증이 그러했고 그 끝에는 혈뇨가 있었다. 병의 크기를 따지자면 갑상선 문제보다는 소소할 수 있겠으나 그건 나에게 신호였다. 나를 챙기지 못하고 외부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면 나를 서서히 죽이는 꼴이라고 내 몸은 둔한 내게 말하고 있었다.
"검사를 해봤는데 지금도 소변에서 미량의 혈이 나오고 있어요. 나중에 소변을 봤을 때 똑같은 일이 생기면 이곳이 아니라 관련 병원으로 곧장 가야 해요."
갑상선으로 일정주기를 두고 다니던 병원에 그 주기를 깨고 방문해서 검사 했을 때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답변은 단순했지만 이 병이 낫지 않아 다른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이 병원 말고도 또 다른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한다는 점이 두려웠다. 이전의 병을 앓았던 기록과 기간이, 긴긴 시간 동안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수치로 더디게 줄어갔던 약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 그 모든 것들이 내 몸에 남아있기에 더 이상 기약 없는 병을 앓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산다면 난 꽤 젊은 나이에 내 할당량을 채우지 않고 떠날 것 같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너무나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는 몸이었다. 나는 약한 사람이라고 했던 복싱장 회원의 말이 종처럼 그 소리가 마음과 머릿속에서 소리를 울려 퍼트렸다. 인정하고 안하고의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흑백논리 같아서 선택하는 걸 무척 싫어하는 나였으나 그 말의 의미와 무게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