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말하는 안정이라는 불안 ⑥

[우당탕탕 설늙은이] 빛과 어둠이 가장 강한 곳은 회사가 아닐까

by Pabe
[우당탕탕 설늙은이 오디오북]

나는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었으나 이곳 나름의 규칙 아래에 이루어지는 문제해결을 하고 싶었다. 규칙이 있다면 그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형태이길 바랐다. 문제는 그 나름의 규칙이라는 것이 부재했다. 그래서 늘 찾아오시는 분들에 따라 다른 지시사항을 받았다. 누군가는 조건 없는 지원을 해주고 누군가는 적당한 지원을 해주는 형식을 가졌다. 그러고 나면 또 지시사항을 받았다. 이곳의 규칙을 세워서 모두가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막상 동일한 지원을 해주고 나면 또다시 다른 말을 들어야 했다.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그렇게 일을 처리하면 어떻게 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아, 어쩌라는 거지.'


그런데 일이라는 것도, 회의를 가장한 면박도 거치다 보면 쌓이는 데이터라는 게 존재했다. 이 역시 인간관계가 자리 잡은 문제였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누구와 친해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누구라는 것 그리고 그냥 누군가 정도의 것으로 자리 잡은 관계가 나의 일처리방식이 융통성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지원하는 대상이 누구든 동일한 지원을 받으려면 그간 있었던 문제사항들을 확인하고 처리방식을 세우고 그걸 원칙 삼아 처리하는 것이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방향일 것인데 그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당자의 고민 끝에 나온 결괏값이라는 건 그저 일을 엉뚱하게 처리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것일까, 나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부재한 것을 존재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문제들을 다시 되짚어보는 것을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끝끝내 지원요청서식을 만들어냈다. 몇 차례에 걸쳐 완성된 서식으로 이전보다는 수월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찾아보고 알게 된 것들 중에는 무작정 일 전체를 우리 쪽으로 떠넘기는 것이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규칙이 없다는 것은 이런 일들을 당연한 업무로 가장해, 기반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것을 넘겨도 그럴 듯 해보이는 논리로 보여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이보다 앞서 떠넘기기식 업무에 화가 나긴 했지만 또 다른 면에는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 나름의 값진 결과였다.


일을 하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살고 있는 이 생의 형태라는 게 바둑판 같이 보일 때가 있었다. 내가 흑이고 상대가 백이든 아니면 그 반대의 형태를 가지든 간에 상관없이 늘 창과 방패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있다. 나는 공격을 할 것인지 방어를 할 것인지를 고르고 골라야 할 때가 많아서 일을 끝마치고 난 후에는 그렇게 방전된 것 같은 모습을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관계에서 오는 모든 것들은 그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그런데 삶이라서 그것에서 이기든 지든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장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지 몰라도 또 다음 판으로 넘어가기에 그것이 가진 의미라는 것은 그리 무게가 있지 않았다. 그마저도 속도가 붙으면 그저 치열함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쁜 일이 되어주었다. 나 혼자만의 소소한 기쁨이 아니라 일의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고 매일 배경음악처럼 깔리던 전화소리가 1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줄어들었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날도 생겨나기 시작했기에 기뻤다. 나름의 고민과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은 고요한 것이었다. 물론, 문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업무량이 줄어들지는 않았으나 나름의 낙에 기쁨을 한 껏 만끽했다. 내게 있어 일에서의 소확행은 그런 형태를 가졌었다.


이와 반대로 힘겨운 것들도 분명 함께 존재했다. 같은 부서에 근사한 분들과의 업무환경은 너무 행복하기만 한 것이었으나 이와 반대되는 것들로 힘겨운 싸움에 서서히 지쳐갔다. 회사에서의 인내심은 기르다 못해 나중에 사리가 나오면 다행일 것 같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했다. 이때 아이러니함에 혼란을 가득 안고 있었다. 분명 좋은 분들과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좋은 환경은 맞는데 어째서 힘겨운 마음을 갖고 있는 걸까. 업무 떠넘기기, 억지 쓰기, 흔하디 흔한 정치질은 어디에나 있지만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번 고비를 넘는다고 해서 더 이상 생기지 않는 문제도 아니었고 이후에 더 큰 일들이 터지기도 했으며 친분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사소한 것들 틈까지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 부자연스러움에 이곳저곳이 어긋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되려 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기도 했다.


마치 끈적끈적하고 질척 질척한 땅 아래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애써서 발버둥 쳐보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빨리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세상에 빛과 어둠이 있다. 모르는 척, 아닌 척 연기를 해서 두루뭉술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지만 그 대비감이 가장 선명한 곳은 이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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