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감기에 걸렸어요.

[메모장 생각]

by Pabe
4.jpg [그림-Pabe]

예전에 말이야. 대학교를 다니던 때에 한참 자기소개서를 근사하게 작성하는 방법 같은 게 유행을 했다? 근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어릴 때 책을 좋아해서 학교의 도서관을 들락날락했던 나는 그 근사한 형태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너무 보였거든. 영웅 이야기가 담긴 소설처럼 어떤 일이나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걸 해냈다는 걸 장황하게 쓴 형태가 모두가 소설 속 영웅이 되길 바라는 것 같아 보였거든. 나는 그냥 인간, 사람. 우주에서 보면 티끌에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 존재인데 영웅이라니 세상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세상이 요구하는 걸 거부했어. 그때의 나는 많은 걸 알지 못하는 풋내기 어른이었지만 그거 하나는 알았어. 영웅 중에서도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지는 그런 영웅은 나는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어떻게 다들 그렇게 하는 걸까? 척척 해내. 같은 반 아이들을 봤을 때 어쩜 저리도 미래를 잘 그려내는지 근 사하다 못해 신기했다? 대학 이전에 고등학교는 어디를 갈 것이고 그 고등학교를 가려면 무슨 무슨 교과목이 중요하고 그래서 그걸 미친 듯이 파는 애들도 있었고 수학문제에 숫자만 적는 애보고 문제를 풀어야지 왜 대충 숫자를 적냐고 했을 때 암산으로 했다는 답변을 받고서 당혹감과 대단한 능력에 신기하더라.

나는 공부에 관심을 가졌을 때도 친한 친구가 열심히 해서 그 분위기를 따라서 했었고 어느 순간에는 이 모든 공부가 수능을 위한 거라는 게 그렇게 싫더라. 근데 그게 주변의 모습이었어. 그게 맞는 거였고 그렇게 하면 해피엔딩인 것처럼. 그런데 그것도 마음속으로는 너무 싫은 거야. 청개구리 같지? 사실은 어정쩡했어. 해야 한다는 마음과 너무 싫은 마음이 널뛰어서 아무것도 확실히 하지 않았어.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세상에 나와서 보니까 영웅은 하루하루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명함 같은 거더라. 이곳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어. 그 모습이라는 게 큰 톱니바퀴가 되었든 작은 톱니바퀴가 되었든 상관없이 다 그 자리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더라. 추켜세우는 거냐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렇더라고. 얼렁뚱땅 흘러가는 회사에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런 사람들끼리 으쌰으쌰 하기도 하고 그러더라.

그걸 보지 못해서 지금 다들 감기인가 봐. 모두모두 아픈 거야.


이해받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고 판단되기는 싫은데 판단을 하고 있어. 모두 각자의 아픔과 고통이 있는데 이해받기 어렵고 판단되어 버려서 더더욱 예민해지는 게 아닐까. 나라도 나를 지키려고 긴장하고 날을 세워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차고 시리게 곁을 내어주는 게 어렵고 믿는 것 마저도 섣부른 판단 같은 것일까 봐.

영웅은 감기에 걸렸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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