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을 대하는 태도

[일상 생각 07] A와 B와 그리고 C는 각자 라이프 존이 있다.

by Pabe

몇 주간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태함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간 너무 지쳐있던 내 모습이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오른 것을 발견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위화감이라는 이름의 의문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꼬여있는 실들을 풀어내 보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가졌던 생각들을 메모한 내용들과 현재의 나의 생각을 글로 풀어쓰는 과정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감정을 시각화하는 작업은 그것이 손에 쥐어지는 생경한 감각을 안겨주었으니까요. 만져진다는 것은 마치 피자 반죽을 동그랗게 빚어내는 요리사처럼 내가 이것을 다룰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굴리고 누르고 상 위에 팡하고 내리치며 모양을 잡아낸 다는 것이 단편적으로 내게 전달되는 모든 감각이 빠르게 캐치하며 그다음 수를 읽어낼 정도로 여유를 가져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글쓰기는 지친 나에게 어제를 정리하며 되돌아보게 하는 과정이었으며 글을 공유함으로써 받는 공감이 큰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선 같은 것이었을까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 컴퓨터를 켜고 손을 키보드 위에 얹으면 심장이 화한 느낌을 뱉어냈습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에 놀라 쓰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부담이 되어 그 무게감이 느껴질 때까지 방어를 하는 등의 행동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내 몸과 마음에 타이밍을 놓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역풍을 그대로 맞아 보고 있었습니다.


육체로부터 받은 신호는 평소 생활하며 느낀 것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느꼈던 불분명했던 것들이 명확해졌기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이어나가야 하니까요. 누구나 말하듯 늘 재미있는 것만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않은 것도 열심히 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요. 그렇다고 그냥의 형태로 이어가기에는 내가 나를 이해하며 나를 위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안위를 위해 식물도 키워보며 안정감을 조금씩 가질 수 있도록 해보기도 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좋은 크고 이쁜 식물이 아니라, 내 손으로 가꿔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작은 식물들을 키웠습니다. 일을 마치고 지친 마음에도 집 문 앞에 있는 내 식물들의 상태를 살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땅을 비집고 꼿꼿이 고개를 든 줄기가 단단하게 될 때까지 온 신경을 몰두했습니다. 동일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글이나 동영상 자료도 찾아보고 판매자 분에게 질문도 하며 물주는 적절한 시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뿌리를 내려 튼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조금은 덜 관심을 가져도 되지만 그간 하던 행동이 습관이 되어서 집에서 나설 때와 들어올 때 상태를 꼭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든 생각은 식물에게 한 것처럼 내가 나에게 보낸 신호를 관심 있게 살피고 필요한 것을 이해했다면 글쓰기까지 방해할 정도로 몸집을 키운 감정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잠깐 동안 열렬히 그리고 오로지 식집사로 하루를 보내며 배운 것이 있다면 내가 중심을 잡지 못했었다는 점입니다. 사회생활, 일을 한다는 것은 각자에게 있어 다른 의미를 가졌겠지만 나를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도록 나의 영역이 밟혀서는 안 되며 나 스스로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을 거쳐 어른이 되고 직장인으로서 생활하는 지금, 다양한 주제로 많은 정보들이 오고 갑니다. 순수한 정보 사이에는 마치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내 미래의 생사가 달려있다는 등의 뉘앙스의 개인의 말이 섞여있기에 이를 완고하게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바구니에 무조건적으로 물건을 담으면 그걸 집까지 들고 가는 내가 너무 힘들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애써 들고 간 물건들이 생각보다 내게 알맞지 않아 집은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도 이해해야 했습니다.


사락사락 식물을 쓰다듬은 손 끝에 남은 향을 맡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쓰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더 튼튼해진 것 같은 감각은 제게 있어 소소한 기쁨입니다.

거친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새 잎사귀를 선보이며 자라나는 제 식물처럼 스스로도 휘둘리지 않는 완연한 삶의 형태에 대하여 연구해보자 생각했습니다.

누가 뭐라 하여도 이 삶은 제 것이기에 이 영역을 탄탄하게 해야 할 의무를 가졌습니다.

제게 있어 삶이 이상적인 형태를 갖추기까지 거쳐야 할 여러 단계들이 있다면 쉽게 다음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잘 없겠지만 다 가꾸고 난 모습이 어린 왕자의 행성과 견주어봐도 정도로 손색없는 아름다움이 담겨있다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형태로 삶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른이 된 현재 저의 꿈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9살의 마지막 하루, 20살의 첫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