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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의 의미

[일상 생각 08] 숨에 형태와 색이 있다면.

by Pabe

'후우.'

깊이 들이마시고 그 깊은 숨을 다시 내쉰다.

소리만이 그것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마저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호흡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구름처럼 솜사탕처럼 형태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한숨의 형태는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생긴 숨인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숨.

일상에서, 그것도 아주 곳곳에서 시각으로 형태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그 사물의 기호를 묻는다면 길을 걷다가 그것이 머문 냄새를 맡고 이내 숨을 멈추고 발 빠르게 근원지에서 벗어나는 편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내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하나의 경우로 보였다. 어쩌면 한숨을 내쉬는 이유를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 자체에 이런 미사여구를 붙이는 게 퍽 이상할지 모르겠다.


일하다 보면 의식을 하고 있든 아니든 숨이 한숨으로 바뀌는 상황은 꽤 많다. 하루에 계획한 것과 달리 갑자기 당일이 마감기한인 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경우. 특이하게도 더 이상 끼울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사이사이 곁가지 같은 작업들이 생긴다. 그런 작업들은 특이하게도 오늘 계획 우선순위에서 내려놓기에는 애매한 일들이어서 얼른 처리해야 앞뒤가 꼭 맞아지는 지라 얼른 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허겁지겁 처리하고 난 뒤 돌아오면 결과물을 보내 달라는 독촉 전화가 온다. 처음에는 내 정신을 컨트롤해가며 해내려 애를 쓰지만 시간이라는 제약에 한쪽 다리를 덜덜 떨어내었다가 이내 의식하고는 멈춰내곤 하였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면 마치 무반주에 맞춰 의자에 앉은 상태로 최대치의 급박함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을 터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이내 툭하고 터져 나온다.


'후.'

방금 내뱉은 한숨이 형태와 색이 있다면 들기 조금 버거우며 거친 형태에 어두운 색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는 돌이었을 것 같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향한다.

'하아.'

이건 꽤 가벼워서 내쉬어내자마자 위로 상승하는 깃털 한 조각일 것 같다.


내 선에서 우선순위들을 다시 정리하여 계획하고 하나하나 쳐내고 나면, 몸을 격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숨이 차오르던 것이 조금씩 고요해지고 나면 잠시 밖에 나가 몸을 풀고 그날 저녁의 공기를 마셔본다. 오늘 하루치 빠릿빠릿함이 방전되어 멍한 상태로 주변을 잠시 빙글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리고. 머리에서 나머지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 그려서 책상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한다.

메일을 쓰고 첨부파일을 보내고 오늘 치의 일이 끝난다. 오늘의 목록에서 대기번호를 뽑고 우선순위에 오르길 바랬던 일들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집으로 가자.


'하아아아아아아아아.'

오늘 할 일이 마쳤음을 알리는 긴 숨이다. 뱀처럼 기다란 형태를 가지고 이리저리 슉슉 유하게 움직이다 사라질 것 같은 숨만이 나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애연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숨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와요.

그러면 아무리 추워도 밖에 나가 안과 밖의 온도 차로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차디 찬 공기를 몸속 깊이 마셨다 내뱉고 싶어요. 호호 분다니 그 분위기에 호빵도 하나 챙겨나갈 수 있는 여유가 묻어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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