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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이모티콘으로 표현합니다

[일상 생각 09] 시크한 얼굴을 한 그 사람들

by Pabe

9시가 되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간이라 손가락이 제일 바쁠 시간입니다.

중간중간 멈칫할 때도 있지만 정리된 생각은 빠르게 손을 통해 문서 프로그램에 글로 옮깁니다. 나보다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주는 분들 덕분에 대체로 여유 있는 9시 30분에서 10시가 넘어갈 때쯤 문의전화가 하나, 둘 들어옵니다. 그러면 수화기를 어깨에 걸치고 두 손으로 빠르게 전화 내용을 옮겨 적습니다. 질문내용을 파악하고 알맞은 답변을 바로 전달하거나, 담당자에게 메모를 남겨주기 위함이죠. 그러다 잠깐 일어나 부서 밖의 업무를 다녀온 뒤 복귀했을 때, 한참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생각보다 각양각색입니다.


생각보다 안 풀려서 심각한 얼굴, 정신없이 너무 바쁘지만 무표정한 얼굴, 몸은 여기 있는 게 분명한 데 정신은 여기 없는 것 같이 공상에 빠진 얼굴, 일의 체계가 맞게 떨어지는지 셈하느라 중얼거리는 입과 천장으로 시선을 옮긴 얼굴.


세심하고 바삐 움직여 일하느라 약간 배고파지기 시작하는 10시 45분쯤 문자가 옵니다.


'선생님, 오늘 치팅 가능하신가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메뉴 어떤 게 좋으세요?'

'잠시만요, 그럼 같이 먹을 사람 모아서 단톡방 팔게요.'


지난번에 우리가 무얼 먹었는지 이야기하고, 오늘의 날씨와 기분을 고려하는 등 최고의 점심메뉴를 선택하기 위해서 토론의 장이 열립니다. 무심한 듯 시크한 얼굴을 하고서 갖은 이모티콘이 일렬종대로 올라옵니다. 다양한 이모티콘의 의미는 기분이 하이텐션으로 올라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한국사람인지라 밥 이야기하면 너무 좋고 기대되잖아요.


그렇게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까지 넣은 뒤, 또 바쁘게 일을 합니다. 오후에 할 업무는 따로 있기 때문에 오전 중으로 마치면 좋은 업무를 일일 업무 계획에서 지워내 보겠노라 애쓰며 업무처리과정에 심취하게 됩니다. 그렇게 각자 개인 업무를 하고 있다 보면 오후 업무와 점심 일정 때문에 조금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점심시간 5분 전쯤 또 문자가 옵니다. 이쯤 되면 사실 문자를 보지 않아도 압니다. 아까 전 점심메뉴를 이야기하던 단톡방에서 문자가 온 것이죠.


'왔어요!'

4, 3, 2, 1.

읽었다는 표시가 하나씩 빠르게 사라집니다.

'갑니다!!!'


달려가겠다, 지금 간다, 이해했다, 알겠다를 대변하는 귀여운 이모티콘들이 답장으로 올라옵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조금은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밥이 있는 실로 갑니다.


개인 용무로 방문하는 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다들 얼마나 해맑은 사람들인지, 얼마나 진심인지.


시크한 그 사람들은 사실 너무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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