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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야

한 여인의 연대기

by 원트리

연례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창을 비추었지만, 그녀의 눈은 과거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열 살 전후의 어린 시절. '하늘 천, 따 지' 하는 낭랑한 소리가 서당 담을 넘어오던 그때를.

어린 연례는 서당 소리에 매달려 있었다. 소년들이 읽는 천자문 소리가 담벼락을 넘어올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날개를 단 듯 부풀었다. 가슴속에 이는 뜨거운 배움의 갈망을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바이 서당에 자꾸 기웃거리지 말랬지."

어머니의 손이 어린 연례의 귓불을 잡아챘다. 뜨거워지는 귓불에 어린 연례는 울음을 꾹 삼켰다. "오마니, 저는 왜 글공부하면 안 되는 건가요?" 배움에 대한 투정에 어머니의 표정은 돌처럼 굳었다. "계집애가 무슨 공부냐. 잔말 말고 물이나 길어 오거라."

빈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터덜터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에이, 망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는데, 산 중턱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짐 보따리를 짊어지고 허둥대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낄 새도 없이,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산 너머에서 붉은 화염이 일렁였다. 포탄이었다. 연례의 나이 스물두 살, 1950년 6월 25일이었다.

"쨍그랑!"

연례는 놀라 물동이를 떨어뜨렸다.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1950년의 기억이 1930년대의 평화로운 일상을 덮쳤다. 그 충격에 연례는 침대 위에서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옆에 있던 간호조무사가 물잔을 깨뜨린 채 쩔쩔매고 있었다.

"할머님, 많이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그만..."

"망할 년! 간 떨어질 뻔했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연례는 소리치며 베개를 던질 듯 몸을 뒤척였다. 간호조무사는 민망함에 서둘러 방을 나갔다. 데스크에 도착한 그녀는 다른 조무사에게 속삭였다. "저 할머니는 성격이 왜 저리 고약한 거야?"

연례의 귀에 다시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1950년 6월, 피난을 떠나던 날의 소리였다. 집 앞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안 가요, 안 가! 왜 저 혼자만 가요?"

아버지가 군용 트럭에 끌려간 후였다. 어머니는 짐 보따리를 챙기며 연례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글쎄,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다지 않니. 지금 같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옆집 이 씨 아저씨네 좀 있으면 간다고 하니까 그 길로 바로 따라 나서거라."

"연례야! 가자, 얼른!"

수많은 발걸음 사이로 어머니의 다급한 손이 연례를 이끌었다. 바로 그때였다. '퍽!' 소리와 함께 포탄 파편이 고무신 위로 튀어 왔다. 위력은 사라졌지만, 그 위화감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사방에서 터지는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뒤섞이며 지옥도가 펼쳐졌다. 연례는 어머니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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