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쉽지 않아...
당연히 20년 넘게 살아온, 말이 잘 통하는 한국에서 살다가 갑자기 비행기로 10시간은 걸리는,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엔 동행 사람을 카페에서 구해서 같이 왔다가 생활패턴이 안 맞아서 헤어지기도 하고, 벌레가 싫어서 시골로는 웬만하면 안 가고 도심 속에서 사는데도 한 번은 베드버그한테 된통 걸려서 정말 사업이고 뭐고 포기하고 한국으로 다시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정도로 베드버그는 정말 노이로제가 걸릴 뻔할 정도로 골치가 아팠다.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다행히 아직 없지만 영어회화가 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도 깊게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 스스로가 한심할 때도 많다.
또 호주는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내가 일 할 때도 돈을 많이 받지만 반대로 말하면 외식비가 정말 비싸다. 그리고 호주 도심 속에서 살기엔 방세가 한국보다 많이 나가기 때문에 또 마이너스다.
하지만 원래 살아가는 것은 어디든 쉽지 않은 것임을 받아들이고 하나하나씩 방법을 찾아가면 또 못 살아갈 건 없다. 외식을 많이 하면 돈이 많이 들겠지만 기본적인 마트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싼 물품도 많아서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면 돈은 은근 잘 모을 수 있다.
방세도 조금만 양보한다면 더 싼 곳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겪으면서 혼자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고 기본적인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서 방세는 크게 양보하지 못했다. 호주에서 혼자 사는 것도 충분히 치열한데 집에서만큼은 나 혼자 독립적인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휴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점 나에게 맞는 것들로 환경을 조성하고 가계부도 처음 써보면서 돈 관리도 하고 있다. 자립이 별 게 아니라 이렇게 시간들이 쌓여가면 그게 자립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부모님이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착을 잘 한 건 아직 아니라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는 게 죄송하다. 하지만 오히려 부모님은 공무원일 때 내 모습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해 보이고, 전화할 때 목소리도 씩씩해 보인다면서 그때보다 마음이 놓인다고 하신다.
공무원 때는 근근이 살아가는 삶이 확정된 막막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미래가 불안정해서 느껴지는 막막함이 있다. 하지만 후자 쪽은 미래를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힘이 생긴다.
호주에서 한국 특유의 압박감 없이 혼자 시간을 지내다 보니 20대 후반이라는 내 나이가 너무나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더 나이 들 일밖엔 남지 않았는데 지금이 제일 젊을 때잖아? 그럼 우선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건 다 시도해 보자!라는 게 현재의 생각이다.
지금은 사업초기자금조차 미미하지만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으로 호주에서 비자가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최대한 시도해 볼 생각이고, 만약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아무렴 어때? 한국 가서 여기서 배운 인생 태도로 기술을 배우든 다른 취업 자리를 알아보든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호주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무기인 여유와 어렸을 때부터 직접 배운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는 습관으로 무엇인들 못하리. 나이가 30대이든 40대이든 나는 그때도 지금의 내가 제일 젊다는 생각으로 또 무언가를 시도해 볼 것 같다. 그런 미래의 나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