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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슬 Oct 22. 2023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

나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처음부터 공무원을 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그냥 안정적인 공무원은 어떠냐고 물어보셨을 때 두 번 다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난 그렇게 재미없게 인생을 살진 않을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고등학생 때 희망 직업을 쓰는 칸엔 항상 방송 PD를 적었다. 대단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막연하게 멋있었고, 한창 연예인에 관심 많을 나이였으니까. 내 눈에 멋있어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지, 별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수에 맞춰서 들어간 대학교는 간판은 나쁘지 않았을지 몰라도 학과는 정말 안 맞는다고 느꼈다. 나는 경영학과에 들어갔지만 회계는 정말 취약했기 때문에 학점이 좋게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2학년 올라갈 때 전과를 한 번 신청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송 PD에 미련이 남았었기 때문에 사실 신문방송학과를 제일가고 싶었지만 내 학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국문학과로 전과신청을 넣었다. 오만이었지만 경영학과는 인기 있는 학과였고, 국문학과는 그보다는 경쟁률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뻔뻔하게 내가 이 학과랑 잘 맞았으면 학점이 잘 나오겠냐는 생각도 했었다.


결론은 나는 전과를 하지 못했고, 경영학과로 졸업했다. 정말 방송 PD가 되는 게 꿈이었으면 대학교 안에 있는 언론고시반이라도 들어서 노력을 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 방송 PD를 향한 열정이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그때 마침 제일 친한 친구가 관세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그나마 내 흥미를 끌었던 과목은 모두 무역과 관련된 수업들이었고, 관세사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도 나 스스로 설득당했다. 그렇게 나는 또 내가 주체적으로 내 인생의 길을 찾을 기회를 미룬 채 주변에 휩쓸려 내 진로를 결정하고 만다.


친구와 같이 2년 넘게 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두꺼운 문제집을 여러 권 싸다니면서 관세사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세 번 본시험 모두 낙방하고 말았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너 그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것으로도 안 보였어."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세사시험이 쉬운 것도 아닌데 목적의식도 딱히 없이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의 마음가짐으로는 어림도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또 생각했다. 그럼 난 이제 뭘 하면 좋지?


이미 내 나이는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정말 이제는 취업을 해야 되겠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관세사시험을 준비한답시고 다른 친구들이 모두 기본으로 따놓은 한국사시험자격증이나 컴퓨터활용능력자격증 같은 사기업채용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격증조차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 마음이 조급했다.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자격증을 차근차근히 따기엔 마음이 조급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무원시험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 한창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면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인기가 많아지는 시기여서 그렇게 나는 또 휩쓸렸다.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기에는 그 당시 나는 너무 조급했다. 그렇게 공무원이 되었고, 1년 만에 퇴사했다. 그제야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왔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도, 대학교 학과를 선택할 때도,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취업하는 과정에서도 결국 내 인생을 제대로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 그저 사회가 괜찮다는 방향으로 휩쓸리다 보면 내 인생도 조금은 괜찮을 줄 알았던 것 같다. 정신이 들 때쯤엔 이미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까지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때 느꼈다. 나는 제대로 헤엄칠 방법도 깨우치지 못했구나. 제대로 깨우칠 생각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내 인생은... 좀 큰일인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정말 내 인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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