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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슬 Oct 22. 2023

처음 정통으로 맞은 좌절

그리고 우울증세

나의 첫 번째 사회생활은 공무원이었다. 물론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는 많이 해봤지만, "회사"에 다니는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처음이었다. 최종 면접합격까지 통보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효도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고,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친구들을 보고는 인생을 잘 살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길게 가지 못했고, 결국 나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돼서 면직을 신청하게 된다. 


문득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숨 쉬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도 쉽사리 괜찮아지질 않았고, 결국 잠깐 건물 밖으로 나가서 바깥공기를 좀 쐰 후에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한 번만 그러고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점점 자주 그러한 증세가 반복됐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숨이 가끔 벅차다고 느껴지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잠깐 바깥에 나가서 숨을 고르면 되니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점점 숨이 벅차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제일 심각할 때는 귀에서 이명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실 일을 시작하고 6개월이 됐을 때부터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이 잦아졌고,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몇 번 계속 깼으며, 이명이 들렸고 결국엔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숨이 막혀서 이따금씩 복도에 나가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회사 근처 원룸 관사에서 지내고 있던 터라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기껏해야 오후 6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침대에 축 늘어져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집에만 들어가면 침대에서 까딱할 수 없었다. 중력이 내 몸을 지그시 누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연락도, 사람도 귀찮아져 꼭 만나야 하는 사람 아니면 굳이 만나지 않으려 했고, 소화도 되지 않았으며 잠에 깊게 들지 못하고 새벽에 자꾸 자다 깼다. 


처음엔 내가 게을러서 출근만 간신히 하고 매일 누워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누워만 있으니 소화도 안되고, 소화도 안되니까 잠도 잘 안 오지'라고 그저 내 탓을 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니 내 탓으로만 치부하고 덮어둘 수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 증상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우울증이랜다. 우울증? 난 타고나길 긍정적인 사람인데? 내가? 믿을 수 없었다. 그냥 내가 게으른 거 아니야? 


하지만 그때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눈물이 그냥 계속 나는 날이 잦아졌다. 무의식으로는 속에서 처절하게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고. 그때 알았다. 이게 공황증 세이고, 우울증이라는 걸. 처음 겪는 어려움에 고민하다가 정신과에 가게 됐고 부모님께 내가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여 면직을 강행했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조금 더 버텼어야 하나 싶지만 당시에 내가 겪는 어려움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대략적인 내 증상과 상황을 설명드렸고, 약을 타면서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저는 이 약 먹고 좀 괜찮아지면 공무원으로서 다시 잘 생활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쭸다. 그 말씀을 들은 의사 선생님께서 "환자분은 이미 좌절을 겪으신 상태로 보여서 공무원은 다시 못하실 것 같다. 다시 돌아가신다 해도 똑같은 이유로 똑같이 힘드실 것이다."라고 하셨다.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아,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련을 놓지 못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납득해 버렸다. 정말 이 길은 아닌 게 맞는구나.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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