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안 보여요...
많이 안 친한 동기는 내가 면직까지 고민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나는 민원인을 상대하지도 않으며, 내가 속한 부서는 꿀보직이라고 소문난 곳이었고, 심지어 내가 모시는 상사분들도 인품이 훌륭하신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기들에 비하면 행복해마지않을 조건을 가졌으면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꼴 보기 싫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힘들었다. 그 이유를 나열해 보겠다.
공무원의 단점이라고 꼽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다. 조직이라면 아무리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수직적인 요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나이차이를 따지는 한국이라면 당연하다. 하지만 공무원은 확실히 그 정도가 심하다. 성과는 의미가 없고, 연차가 제일 중요한 곳에서 상사가 까라면 까야하는 조직사회,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팀에 속해있는 팀원도 마음대로 빼가는 곳에서 상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사무실에서 숨 막힌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평소에도 타인의 눈치를 무의식적으로 살피는 나에게는 사무실 정적이 그렇게도 숨이 막혔다.
당시에 내가 별로 바쁘지 않은 꿀보직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순환근무가 숙명인 공무원은 그 혜택을 기껏해야 2년밖에 누릴 수 없다. 모두가 2년 주기로 순환근무를 돌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을 잘한다고 성과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인계도 개판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적으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좋은 보직,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당장 동기에게 닥친 꼰대 상사, 야근해야만 하는 일거리가 내 미래로 보였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일을 하루하루 쳐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월급이 너무 적다. 물가는 끝도 없이 오르는 지금, 사회초년생 공무원의 월급은 세후 2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물론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공무원으로 일한 지 8년 된 언니와 친해져서 받은 그 언니의 월급표에도 300만 원도 채 찍혀있지 않았다. 공무원으로 10년을 일해도 월급으로 300만 원도 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공무원 연금으로 버틸 수 있지 않느냐고? 박살 난 지 오래다. 강제로 떼어가 부어지는 내 공무원 연금, 하지만 나중에 받을 때는 내가 낸 것보다 적게 받을 거란 사실. 심지어 공무원은 부업도 할 수 없다. 그냥 그 쥐꼬리 월급을 받고 어영부영 살다가 60세에 정년퇴직해도 나는 내 집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그건 사실이다. 이렇게 내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젊다.
그래서 결국 내가 생각하는 "일을 하는 이유"의 대표적 2가지인 금융치료와 자아실현(보람)을 모두 터무니없게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내려놓는 것에 아무런 미련이 들지 않았다. 면직하고 나오던 날 너무나 후련했다. 더는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물론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큰 욕심을 부리지만 않으면 큰 고민 없이 인생을 살기에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크게 앓은 후로 이제 내 인생을 살기로 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공무원 그만두신 분들 파이팅. 공무원이신 분들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