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기억력이 나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제일 어렸을 적 기억은 유치원 때 받아쓰기 시험을 봤던 일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유치원생 때 봤던 받아쓰기, 영어시험정도는 항상 고득점이 나왔기 때문에 '나는 머리가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충 봤던 받아쓰기시험에서 1 문제만 틀려서 당당하게 어머니께 90점으로 채점된 시험지를 자랑스레 내밀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어머니의 질책이었다. 100점을 맞을 수 있으면서 왜 한 문제를 틀렸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머리가 좋은 줄 알았다. 90년대에 장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라서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살았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초등학교 때는 전교 1등을 다툴 만큼 성적이 잘 나왔고, 꾸준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더니 특목고에도 들어갔으며, 결국 서울에서 이름난 대학교도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내 머리는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특목고에 갔더니 나보다 영어가 입에서 술술 나오는 아이들이 많았고, 암기력도 나보다 훨씬 좋은 아이들이 수두루 빽빽했다. 하지만 내가 보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노력으로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자존심 상하지 않게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사실 대학교도 점수를 맞춰서 간 거였어서 전공이 나와 맞지 않았다.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싫은 게 뭔지는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살았기 때문에 취업할 때도 내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전문직이 되려고 공부를 했다가, 쉽게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고 우울증 증세로 정신과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나도 막연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적만 잘 받으면 인생을 괜찮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게 당연했고, 공부를 잘해야 어른들이 좋게 봐주었으니까.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우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그 이후에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 들었을 때 설득당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내 인생 이십 년 넘는 시간을 자의가 아닌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낭비했다.
내 길이라고 믿고 걸었던 길이 사실은 내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게 오래 걸렸고,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내 머리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어머니의 푸시와 그로 인한 노력으로 그동안은 유지됐지만 고등학생 때까지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대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괴리감이 컸기 때문이다. 평생을 주입식 교육방식아래 암기를 주 무기로 공부했던 내 머리는 대학교 학점을 평균 2.8로 마무리하며 드디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내 인생 이제 정말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