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도시
우리는 다음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고작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도시는 완전히 다른 곳 같았다. 아기자기한 벽돌 건물들 위로 밝은 햇살이 비쳤고,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하와 그 주위를 두른 푸른 가로수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평화롭고 조용했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이 많았다.
20대 초반의 많은 시간을 홍대앞에서 보낸 나로서는 밤낮이 달리 보이는 도시의 두 얼굴이 그리 놀라울 것도 없었는데, 암스테르담의 그것은 홍대앞보다도 차이가 심했다. 같은 공간이 어떻게 이렇게나 딴판으로 보일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날 밤이 지나자 숙소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곧장 괜찮은 호스텔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12인 정도 규모의 도미토리였는데 그새 모두 떠났는지 투숙객이 우리 넷밖에 없었다.
원래는 암스테르담에 체류하면서 잔세스칸스에 들러 풍차와 튤립을 구경할 계획이었는데, 첫날의 충격적인 경험에 질린 우리는 별다른 것을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암스테르담 시내를 구경했다. 그리고 섹스 뮤지엄에 갔다. 낮의 암스테르담에서 보기에는 조금 위화감이 들었지만 밤의 암스테르담에는 딱 맞는 박물관이었다. 신기한 것도 있고 흥미로운 것도 있었으며 역겨운 것도 있었다.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사실 그런 곳은 지금 갔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그때는 너무 어렸다.
어쩌면 밤의 암스테르담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고흐 뮤지엄을 갔던가? 기억이 도통 나질 않아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사진을 보니 낯설다. 안 갔던 것 같다. 왜 암스테르담까지 가서 고흐를 보러 가지 않았던 걸까? 하여튼 과거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실은 당장 일주일 전의 나만 해도 그렇다, 전날 야식이라도 먹으면 어젯밤의 나도 포함된다).
하여간 그리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풍차도 튤립도 고흐도 못 봤다. 그렇지만 진정한 암스테르담을 흘깃 보고 온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