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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비둘기 Nov 10. 2022

암스테르담 (1)

두 얼굴의 도시




암스테르담에 대한 기억은 충격으로 덕지덕지 물들어 있다.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브뤼셀에서 환승을 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토요일 밤이었다. 주말 밤의 암스테르담이 어떤 곳인지 우리는 전혀 몰랐다. 알 리가 없었다. 암스테르담이 환락의 도시라는 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과 국경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것이 별일 아닌 유럽의 지리적 요건, 그리고 토요일이라는 시간을 모두 엮어 추론을 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다. 


그러니까 토요일 밤의 암스테르담은 온 유럽에서 주말을 불태우러 모여드는 이들로 꽉 차 뜨거운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곳이었다. 그것도 마라탕이 끓는 냄비.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런던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예약해 둔 숙소조차 없었다. 유럽엔 호스텔이 많으니 그냥 가서 어디든 구하면 되겠지 싶은 생각에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당시 만들었던 여행 경로 지도. 출처 나




기차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서니 도시는 사람으로 북적북적했다. 여행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숙소를 몇 군데 들러보았으나 이미 빈 방이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검색을 해 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숙소를 몽땅 뒤져 직접 가 보고, 전화를 해 보았으나 남자 둘 여자 둘의 네 사람을 받아줄 수 있는 숙소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침상 한두 개가 남아 있다는 곳이 한두 군데 있었으나 차마 갈라져서 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밤은 점점 깊어졌고 거리가 한층 흥청이기 시작했다. 길에서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동공이 풀려 있었다. 절대 다수가 백인들이었다. 여자는 물론 남자에게까지 캣콜링을 하며 희롱하는 사람들이나 싸움이 붙은 사람들, 술과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골목골목이 대마 연기로 자욱했다. 홍등가에서는 커다란 유리창 안에서 헐벗은 성매매 여성들이 포즈를 잡으며 바깥을 향해 추파를 던졌고 수많은 남자들이 멍하니 선 채 뚫어져라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나이 어린 동양인들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곳 골목 어딘가에서 칼을 맞고 객사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그저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느껴졌다. 넷 모두 겁에 질렸다.


목숨의 위협을 피부로 느껴가며 정처 없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떠돌던 그때, 두 번째 천사가 나타났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여러 숙박업소의 정보를 가지고 소개시켜 주는 에이전시 같은 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가 묵을 곳을 알아봐 주었는데, 그쪽에서도 지금 당장 암스테르담에서 네 명이 잘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열차로 1시간, 그리고 역에서 트램으로 20분 정도 더 가야 하는 근교에 호텔이 하나 있다고 했다. 멀기도 멀고 금액대도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또 예상치 못한 기차 요금까지 지출해야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사는 우리를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때 느낀 고마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암스테르담 도시를 함께 걸으며 듣기로, 그는 쭉 암스테르담에서 살았으며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사는 노인이라 집에 가도 할일이 없어서 남을 돕는 것이 좋다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땡큐라는 말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밖에 없었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천사의 이름은 프리츠(Fritz)였다. 



우리의 천사 프리츠. 어쩌면 지금은 돌아가셨을 수도 있지만, 그가 도와준 기억은 잊지 못할 것이다. 출처 나



다행히 막차가 끊기지는 않았다. 깜깜하게 어두운 밤에 바다 건너 타국의 시골 마을에 도착해 낯선 백인들만 가득한 트램에 올라탄 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그저 막연하게 바라보았던 트램의 레인, 시멘트 바닥 위 이리저리 곡선을 이루며 깔린 철로의 이미지가 기억 한구석에 남아 있다.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한 호텔은 가격에 걸맞게 깨끗하고 쾌적했다. 우리는 지치지도 않았는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 잠들었던 것 같다. 분명 프리츠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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