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4)

2월 마지막 주

by 글쓰는비둘기

넷째 주



월요일


아직도 너무 춥다. 대체 봄은 언제 오는 걸까.

오늘 저녁은 예전에 백년옥(두부 음식점)에서 들고 온 비지로 비지찌개를 해 먹었다.

이 일기에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지 않아서, 그것 때문에라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Buttermilk Graffiti를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수요일


머리말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는 책들이 있다. 좋은 머리말은 작가의 목소리를, 열정을, 마음을 담아 낸다. 이따금 그것이 머리말 몇 쪽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매력적인 머리말에는 책을 집어들고 사게 만드는, 또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머리말을 읽다 눈물이 난 책이 한 권 있었다. 켄 리우의 ‘The Paper Menagerie’였다. 내가 번역을 하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마음으로 그의 서문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켄 리우는 작가이자 번역가다).

그리고 오늘 머리말에서 눈물을 찔끔 흘린 책이 하나 더 생겼다. 신혜우 식물학자의 ‘식물학자의 노트‘다. 섬세한 단어 선택과 겸허한 태도, 식물을 향한 사랑이 묻어나는 한 문장 한 문장에 책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감동을 받아 버렸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사과 씨앗이나 수박 씨앗, 포도 씨앗을 본 적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도 훨씬 작다. 큰 씨앗도 있긴 하다. 복숭아 씨앗은 꽤나 크고 아보카도 씨앗은 엄청 크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작다. 나무에 비하면 턱없이 조그맣다.

그런데 그렇게 조그만 씨앗에서 어쩌면 그렇게 커다란 나무가, 수많은 꽃이, 셀 수 없이 많은 열매들이 나올 수 있을까? 하나의 작디작은 씨앗이 거대한 나무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곰곰이 그려 보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식물의 경이로움은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먹이를 먹지 않아도,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아도 빛과 물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존재들이 어딜 가나 우리 곁에 있다니.


나는 집에서 식물을 여럿(정확히는 화분 열셋, 수경재배 셋이 있다. 초록별로 떠나보낸 애들이 많아 숫자가 줄었다) 기르고 있지만 내가 키워 본 식물 외에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가로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공원에 심긴 나무의 수종 같은 것은 더더욱 모른다. 그야말로 무지렁이 도시인이 나다. 게다가 집에서 기르는 관상용 식물은 대부분 외래종일 터이니 한국의 식물에 대해서는 더 아는 바가 없다. 이런 걸 돌이켜보면 몸을 붙이고 살고 있는 주변 세상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식물학자의 노트‘를 다 읽고 나면 식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려나? 음, 지식이나 정보는 보고 금세 까먹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식물에 대한 저자의 사랑은 마음에 남지 않을까 싶다. 정부희 곤충학자의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을 읽고 그랬듯이. 그런 것은 잊히지 않는다.


온 마음을 다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어진다.



목요일


중국어 학원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확실히 말해두자면 중국어를 잘하게 돼서 마지막인 것은 전혀 아니다.


중국어는 재작년 가을쯤 시작했는데 공부는 단 1분도 따로 하지 않고 한량처럼 어슬렁어슬렁 가서 힉원 강의만 들었다. 그것도 토요일, 주 1회만 달랑 다녔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는 거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어차피 취미로 그냥 배우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디에 써먹을 요량도 아니었고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딸 생각도 없었다.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다녔냐면 학원에 학습교재를 들고 가는데 필기도구 챙기는 걸 깜박해 강사 선생님께 펜을 빌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몇 달 간 학원을 다니다 기초반을 졸업하게 되자 향방이 애매해졌다. 회화 초급반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학원에서 기초반을 마친 학생은 회화반에 들어갈 수준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HSK 3급반을 추천해 줬다. 회화로 배우는 HSK 3급이라고 써 있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등록했다.


여전히 주말에만 농땡이처럼 다니며 3급반을 세 달쯤 다니고 나자 4급반으로 가게 되었다. 4급반까지 두어 달 다니고 나니 여기까지 했는데 시험이나 한 번 쳐 볼까, 싶어졌다. 그러고 나니 기왕 생각난 거 진짜로 하자, 싶어서 HSK 4급 시험을 신청했다.


내가 치러 본 어학 시험은 토익, 토익스피킹, JLPT가 다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토익이나 JLPT는 어학 시험 중 가장 응시료가 싼 시험들이다. HSK는 급수별로 응시료가 달랐는데 4급은 9만원 정도였다. 한 번에 붙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날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안 하던 공부를 하게 된 건 아니었다. 그냥 계속 놀멍놀멍 다녔다. 시험용 모의고사 참고서를 한 권 사 두긴 했는데 고이 책장에 모셔 두었다. 그리고 시험날이 3주 남짓 남게 되자, 정말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그제야 공부를 꾸물꾸물 시작했다.


믿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난 일본어를 전공한데다 일본에서 1년가량 살기까지 했으니 3, 4급 수준의 한자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았다. 일본의 한자와 중국 간체 한자는 좀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둘 다 한자이기 때문에 몇 번 보면 금세 익숙해진다. 물론 백지와 연필만 주고 쓰라고 하면 쓸 수 있는 건 몇 자 없지만, 또 중국식 발음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었고 성조는 깡통 수준으로 몰랐지만, 눈으로 보면 대강 뜻은 거의 해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몰라도 독해에는 걱정이 없었다.


듣기와 쓰기가 문제였기 때문에 남은 3주간 모의고사 교재를 열심히 붙들고 문제풀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매일 모의고사 1회를 풀기엔 내 실력이 너무 모자란데다 퇴근 후 1~2시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교재를 끝까지 풀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찌저찌 시험은 합격했다.

내가 HSK 4급을 한 방에 붙은 영광은 모두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내내 한자 공부를 하도록 숙제를 잔뜩 내주신 전공 교수님께 바치겠다(비록 원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언어 공부를 2가지 이상 심도 있게 해 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새로운 언어를 세 개쯤 배우게 되면 본인만의 언어 습득 노하우가 생긴다. 습득 속도가 아주 빨라질 뿐 아니라 이 언어는 얼마의 강도로 얼마가량 공부하면 얼마 정도의 수준을 달성할 수 있겠구나 하는 지도 비스무리한 것이 보인다.


중국어의 경우 마음만 먹고 공부하면 뉴스나 신문을 술술 읽고 사회 문제에 토론을 나누는 수준은 아니라도 일상회화를 막힘없이 말하는 수준은 비교적 빨리 도달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다. 뭐, 그렇지만 마음먹고 공부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세월아 네월아 여유자적 배우다 보면, 그렇지만 그렇게만 해도 언젠가는 그럭저럭 쓸 수 있겠지 싶었다.


반면 프랑스어는 대학생 때 프랑스어과 1학년 수업을 수강하면서 기초 문법까지는 배웠는데, 이 언어는 내가 1~2년 깔짝댄다고 어느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하려면 길게, 오래, 학습 강도를 높여서 뛰어들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그때보다 영어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할 수도 없이 깊으니 좀 더 나으려나? 잘 모르겠다.


여하튼 다시 중국어 이야기로 돌아가자.

얼렁뚱땅이기는 했으나 4급까지 붙고 나자, 이제 중국 드라마도 좀 보고 회화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하고 놀았다. 매주 주말마다 학원에 묶여 있다가 해방되니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내리 놀다 올해 초에 연간 계획을 세우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평일 회화반을 등록한 것이었다.

마침 친구와 3월에 상해에 놀러가기로 약속도 한 터라 타이밍이 좋았다. 막상 들어가 보니 여행 회화는 전혀 배우지 않아서 결국 따로 공부해야 하지만.

3월부터 중국어를 배울 수 없는 이유는 상해 여행때문이 아니다. 여행은 금요일부터 월요일 일정이기 때문에 화목반인 학원 수업과는 겹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3월 말에 내고 싶은 소설 신인상 공모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소설을 한 자도 쓰지 못했다고 이 일기에 적었던가? 그러다가 겨우 다시 쓰게 된 것이 1, 2주 전인 것 같다. 이전에 쓰다 멈춘 것이 있어 이어 쓰려고 했는데, 다시 열어 보니 엉망이라 한두 문단 정도를 빼고는 죄다 버려야 했다. 차라리 좋다. 새로운 마음으로 써나가고 있다.


웹소설도 아니고 순수문학쪽 소설을 쓰며 등단을 바라는 건 마치 물길이 어딘지 모르는 채 무작정 땅을 파며 언젠가 어딘가에선 샘물이 솟아나기를 기도하는 것 같다(만약 웹소설도 그러하다면,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왜 내가 이딴 걸 좋아해서. 돈 되는 걸 좋아해야 되는데. 답도 없는 싸움에서 이제 그만 탈출하고 싶다.


그런 혼잣말을 계속 하게 되고 마는 거다. 그러면서도 결국 떠나질 못해서 이렇게 돌아왔다. 징글징글하다.

그런 고로 3월의 목표는 이번 소설을 무사히 완성해서 공모전에 내는 거다. 잘 쓰는 거, 공모전에 당선되는 거, 그런 건 내가 바랄 일이 아니다.


중국어 학원도 어쨌든 빠지지 않고 두 달간 꼬박꼬박 다녔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생각한다. 중국어 실력이 늘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냥 수업을 열심히 들었으니 된 거다.

소설도 탈고해서 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자랑스러워할 만한 거다. 목표 달성이다. 그러니 그냥 끝까지 쓰기만 하자. 그리고 인쇄해서 우편을 부치는 것까지만 하자. 그거면 된다.



일요일


어제는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졸업한지 이제 한참이 지났는데도 변함없이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참 고맙다.

다들 스무살 때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것 같은데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외국에 살고 누군가는 독립하고 또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혹은 또 별로 큰 변화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까지 포함해 모두가 정말 대단하고 신기하다. 그냥 세월을 쌓아 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가 대단하다.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 미키17을 보고 왔다. 한때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들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는데 이젠 영화관에 몇 주만에 간 건지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의 각본을 보면서 시나리오 공부를 했던 적도 있는데 그 감독이 해외 자본으로 유명 외국 배우들과 이렇게 큰 SF 영화를 만들다니 신기하기 짝이 없다. 토니 콜렛이라니!


집에 와서 아티초크와 호두가 들어간 페스토를 넣어 파스타를 해 먹었다. 오늘은 글을 열심히 써볼 생각이다.

새로운 노래를 듣고 싶어서 무작위로 추천 목록에 있는 아무 뮤지션의 앨범을 두 개정도 들어 보았는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취향에 맞는 앨범 찾기란 어떨 땐 참 쉽다가도 어떨 땐 은근히 어렵다.


벌써 3월이다.

내일이 휴일이라 너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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