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

첫째 주

by 글쓰는비둘기

첫째 주



화요일



회사 앞에 크로와상과 뺑오쇼콜라를 파는 페이스트리 샵이 생겼다. 눈물나게 맛있어서 매일 가고 싶을 지경이다. 여기가 프랑스였다면 크로와상 하나에 1유로 정도면 살 텐데… 그러면 아침마다 하나씩 먹을 수 있을 텐데… 아침마다 황홀한 버터 냄새를 맡으며 섬세한 페이스트리의 결을 느끼며… 왜 여기는 한국인 걸까….


크로와상은 정말 환상적이고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대체 누가 이렇게 예술적인 빵을 만들어 낼 생각을 한 걸까? 그러고 보니 정말 여태껏 크로와상을 탄생시킨 역사적 혁명적 천재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았다.


당장 퍼플렉시티에게 물어보니 크로와상은 누군가 한 사람이 만들어냈다기보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거치며 여러 명이 차례차례 개선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크로와상의 원형이 되는 페이스트리는 13세기부터 있었는데 19세기부터 진정한 진화가 시작되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20세기 초라고 한다. 역시 이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은 집단 지성이 아니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천재라 해도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빵을 뚝딱 만들어 낼 순 없겠지. 유럽의 역사와 집단 지성이 모이고 쌓여 크로와상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솔직히 유럽의 역사는 크로와상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


이 세상에 커피와 크로와상이 없다면 별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내 입맛은 정말 매국노 그 자체인지 난 김치볶음밥은 평생 안 먹어도 될 것 같은데 파스타나 크로와상을 먹지 말고 살라고 하면 음… 그냥 차라리 죽여줘….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프랑스에 가서 살고 싶진 않다. 난 한국이 좋은걸. 어떨 땐 징글징글하고 답이 없는 것 같아 이놈의 나라 떠나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나의 영혼은 서울로 자꾸 돌아올 것 같다. 만약 정말로 외국에 나가 살게 된다고 해도 오십쯤 되면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리고 무엇보다 난 한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 살긴 살아야겠는데 크로와상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낙농업이 발전하고 소와 밀을 많이 기르면 빵이 싸질텐데. 하루빨리 대한민국의 낙농업계가 쑥쑥 자라났으면 좋겠다. 소고기는 참아볼 테니 소들아 힘을 내주렴.



금요일 밤


목요일에는 퇴근하고 본가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퇴근하고 이모와 동생과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늘 혼자가 행복한 개인주의자인데다 별로 가족적인 편은 아닌데 이번 주는 아주 가족적인 한 주를 보냈다.


독립해서 이사온 뒤로 퇴근하는 길에 본가에 간 건 처음이었다(본가는 서울이긴 하지만 내 집과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2호선 지하철에 인파가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독립하지 않았다면 이걸 타고 출퇴근했을 거라 생각하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회사에서 본가에 가는 경로는 내 집에서 향하는 경로와는 꽤 달랐다. 그 동네에서 청소년기부터 이십대까지 18년 정도를 살았으니 물론 모르는 길은 아니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마 그 길을 가보지 않은지 오륙 년은 됐을 거다. 아무것도 없던 개천가에는 예쁜 카페들이 줄줄이 생겼고 가게는 내 눈에 익은 곳보다 처음 보는 곳이 더 많았다. 가게를 구경하며 걸어가다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오랫동안 ‘우리 동네‘였던 곳인데, 길을 잃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길을 찾을 거라 생각하고 지도 앱조차 켜지 않았다. 그런데 개천을 따라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다 보니 너무 많이 걸어온 것 같았다. 어느 골목에서 꺾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해가 져 어둑어둑해 더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지도를 봐야 하다니.


충격에 사로잡힌 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꺾어야 할 골목을 지나쳤다는 감은 맞았다. 다른 길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몸을 돌려 되돌아갈 필요는 없었지만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인 건 맞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어딘지 알 것 같은 길이 나왔다. 왠지 알 것도 같고 말 것도 같고…하면서 걷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종이 뎅 하고 울렸다. 중고등학교 시절 6년 내내 등하교를 하며 닳도록 다녔던 길이었다(나는 사립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같은 재단의 학교로 6년간 같은 캠퍼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길은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별로 다닐 일이 없어 더더욱 낯설었을 것이다. 본가에 살 때라 해도 이십 대가 된 후로는 뜸하게 다녔을 테니 기억에서 더 멀어졌겠지.


그 길을 걷고 있자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셋이 깔깔거리며 그 길을 다녔던 그 때가, 마치 지난달 일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동시에 지난 생의 일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생이었던 내가 정말 방금 전의 나였던 것 같기도. 아니, 내가 학생인 적이 있기는 했나 싶기도. 그때의 내가 과연 정말 나였을까 하는 기이한 의구심.

기억이란 정말 이상하다.


잠깐 딴길로 새자면 나는 사실 자아란 것에는 기억의 연속성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엄밀히 따지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시공간적으로도 그렇고 물리적으로도(같은 말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여긴다. 이건 내가 시간이라는 것에, 또 인간의 의식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아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이것저것 생각해 본 결과 도출해 낸 것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여하튼 그럼에도, 나는 중학생 때 그 길을 걷던 나를 기억하고 있고 지금 거의 이십 년이 지나 그 길을 다시 걸으니 그 시기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 입고 있던 교복의 감촉, 함께 걷던 친구들의 앳된 얼굴과 표정, 까르르 웃던 웃음소리. 마치 나의 기억이라는 수단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걷고 있는 듯한 경험이었다. 넓게 보면 이런 것도 시간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신비스런 체험이어서 그 골목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지금 보니 야간에 찍은 것이라 사진이 온통 흔들렸다.


그때의 친구 중 한 명은 지금까지도 가장 절친한 친구 중 하나여서,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른 친구는 어떻게 지낼까, 잘 지내고 있을까, 그랬더니 알 수는 없지만 잘 지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많이 불안정해 보이는 애였다. 친구가 그 친구의 집안 사정이나 고등학생 때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는데 나는 전혀 모르던 내용이어서 나는 그 아이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절친이 있었기에 우리 셋이 함께 다녔던 것 같다.


궁금해진다. 나는 사십대가 되고 오십대가 되면 지금의 나를 똑같이 멀게 느낄까? 내가 삼십대였던 적이 있었나, 이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나, 하고 아득하게 생각할까? 그때의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음, 살아는 있긴 하겠지? 하하.


아참, 오늘도 회사 앞 페이스트리샵에서 크로와상을 먹었다. 크로와상 앞에서는 나의 자제력이 손바닥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언제 그런 게 있기는 했냐는 듯 녹아버린다. 봄이 다가오니 살을 빼야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을 텐데 큰일이다.



일요일


토요일에는 ‘브루탈리스트’를 봤다. 장장 네 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인 줄도 모르고 덥석 예매했다가 영화를 보러 가기 몇 시간 전에야 알았다. 공복이었기 때문에 급히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커피와 들고 들어갔다. 인터미션이 있었다. 인터미션이 있는 영화는 난생 처음 봤는데 쉬는 시간이 있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방광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불쌍해 보이는 애드리언 브로디의 눈썹에 왜 이리 약한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영화관이 있는 몰에서 스웨이드 재킷을 충동구매했다. 사서 나오는 길에 검색해 보니 인터넷에서는 같은 브랜드의 같은 품목을 7만원이나 더 싸게 팔고 있어서 환불하고 싶었지만 할인상품은 환불 불가라고 영수증에 씌어 있었다.

마음속으로 땅을 치며 원통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다시 입어보니 옷은 여전히 예뻤다. 봄에 열심히 입어야지….


오늘은 단골 카페에 가서 글을 많이 썼다. 날이 풀리고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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