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주
층간 소음으로 인해 왜 살인까지 하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은 오전 1시(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목요일)인데 위층 커플은 수다를 떨며 깔깔깔 웃어대고 있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하는 말이 다 들린다. 위층이 아니라 옆방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원룸에 산다. 그러니까 위층도 원룸이다. 이 조그만 원룸에서 두 사람이 산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닐 텐데 위층 커플은 24시간 내내 떨어지질 않는다(난 다른 사람 뒷담화를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위층 커플에 한해서는 좀 해야겠다. 미치겠다 정말). 밖에도 안 나간다. 재택을 자주 하기 때문에 안다. 낮에도 둘이 항상 깔깔거리고 있다.
두 사람은 일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낮에도 안 나가고, 그러니 당연히 밤에 일찍 잘 필요가 없다. 새벽 2시, 3시에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곤 한다. 화장실도 자주 들락거리는데 문을 어찌나 쾅쾅 여닫는지 대포 소리처럼 울린다. 소리도 일상적으로 지르는데 이를테면 “오빠 나 똥쌀게!”라든지 “알바 갔다와서 뭐 하자!”라는…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까지 고스란히 알게 되는 내용들이다. 비명도 자주 지르고(즐거워서 지르는 종류의 비명이다) 심지어 언젠가는 짖는 소리도 들었다. 여자가 먼저 웡웡 짖기 시작하니 남자도 웡웡 짖었다. 아래층에서 모든 게 다 들리는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대체 뭐 하는 거지? 라고 혼잣말까지 했다.
지난달 즈음에 쓰리엠 귀마개를 샀다. 난 귀가 아주 예민한 편이라 귓속에 뭐가 들어가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인이어 이어폰도 못 낀다. 그래서 귓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헤드폰처럼 쓰는 형태를 구했다.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드릴을 뚫는 등의 작업을 할 때 쓰는 것으로 방음 기능이 엄청나다. 이 귀마개를 쓰면 세상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소 생경할 정도로 고요해지는데 그제야 난 태어나서 한 번도 완전한 적막에 있었던 적이 없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 귀는 단 한 번도 온전히 쉰 적이 없었던 거다.
세상의 소리와 단절되기는 하지만 아무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니다. 내 몸 속의 소리, 즉 심장 소리가 들린다. 오로지 그 소리만이 들린다. 절대적 고요 속에 내 심장 소리만 들리는 기분은 의외로 굉장히 외계적인 체험이어서 말만으로 그 느낌을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라 해도 이것보다는 많은 소음이 들렸을 것 같다.
윽, 커플이 갑자기 호우우우우 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제발 잤으면.
오늘은 아무래도 귀마개를 끼고 적막 속에 잠을 청해야 할 것 같다. 귀마개가 무거워서 중간에 벗어던지게 되기는 하지만 잠은 잘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요즘엔 더 마리아스와 이브(Yves)의 노래를 듣고 있다.
(이제는 또 뭐가 불만인지 위층 커플 중 한 명이 짜증을 부리고 있다. 빨리 귀마개 쓰고 자야지.)
주말에 일기 업로드를 했어야 하는데 한 주를 넘겨 버렸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상해 여행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걱정을 좀 했다. 그동안 내가 다닌 여행지는 이십대 초반에 유럽 배낭여행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거의 영어 또는 일본어가 통하는 지역뿐이었다. 중국어를 조금 배웠긴 하지만 기초 중의 기초 수준이고 듣기 실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언어는 거의 안 통할 것이었다. 쓰여 있는 게 뭔지 읽을 수도 없고 상대와 하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
12년 전쯤에 북경을 가본 적은 있었는데 당시엔 북경에서 유학했던 친구와 동행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었다. 이번에는 나와 동행하는 친구가 “너 중국어 하잖아!”라며 날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역전되어 있었다. 중국어를 한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친구는 뭔가 나를 너무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중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거나 여행 회화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다(여행일로 빠지는 날을 감안해 공모전 일자에 맞춰 소설을 완성하려고 정신이 없었다).
상해는 깨끗하고 건축물과 조경이 아름답고 안전한 도시였다. 음식이 맛있고 커피도 맛있고 우유와 빵도 맛있
었다. 카페나 식당도 세련되고 멋진 곳이 많았다.
제주도보다 아래에 있다더니 과연 날씨도 서울보다 훈훈한 편이었다. 길에서 더운 지방의 수목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새들도 처음 보는 종류의 새들이 대부분이었다.
디디택시(우버와 같은 시스템이다)에서 몇 번인가 바가지를 쓰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친절했다. 친절한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불친절한 사람들은 참 불친절했다. 나는 때때로 친절을 가장하며 돌려 먹이는 식으로 조롱하는 일본에서의 경험보다는 그 편이 마음 편했다.
일하는 직원들이나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서는 서울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느껴졌다. 중국도 한국 못지않게 경쟁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아직 우리나라만큼 쉴 새 없이 옆사람을 곁눈질하며 비교하기 바쁜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여행자로서 느끼기엔 그랬다.
우울증이 생긴 뒤로도 여행을 몇 번 했지만 즐겁거나 기대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여행은 원래 준비하는 과정이 제일 즐거운데 준비가 귀찮기만 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먹어야 된다는 걸 먹어야 될 것 같아서 먹었고, 가야 한다는 곳에 가야 할 것 같아서 갔다. 아름답고 신기한 것을 보면 아름답고 신기하다고 느끼기는 했는데 감동을 받거나 마음에 남는 일이 없었다. 머리로만 멋지네, 생각하고 마는 느낌이랄까. 그리고는 금세 까먹었다.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도, 어딘가에 갔다는 것도.
몇 년째 그런 식이었다. 이십 대 때는 철저하게 계획해서 여행을 다녔었는데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다녔다. 여행에 익숙해져서, 또는 사회 생활을 하느라 찌들어서 그런 것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도 무기력에 잠긴 느낌이었다.
이제야 늪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을 했다. 그 순간에는 그 순간에 집중했고 쉴새없이 딴 생각이 밀려들지도 않았다. 즐겨야 할 때 즐길 수 있었다.
언어 문제는 역시 중국어를 더 잘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숫자와 간단한 동사를 알아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 것 같다. 한두 번 정도 중국어 문장도 말했다. “우리 디즈니랜드 가고 싶어요”랑 “영어 할 줄 아세요?“, ”얼마예요?“ 이런 정도. 관광 명소에서 사진을 찍으라는 호객꾼들에게 ‘뿌야오(不要, 안 해요)‘는 잘 하게 됐다.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영어를 훨씬 많이 썼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한국인들보다 잘하는 것 같다. 한국어를 하는 직원들도 은근히 있었다. 다음 번 중국에 갈 때는 중국어를 더 잘할 수 있게 되면 좋으련만.
이제 비행기가 착륙 준비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오프라인 저장 항목 중에 아무거나 틀어서 듣고 있는데 아비치의 Waiting For Love가 나온다. 너무 젊어서 세상을 뜬 아비치의 생각을 하다 문득 나한테도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까, 의문이 든다.
(참고로 얼마 전 사촌 언니가 소개팅을 주선해 줬는데 남자 쪽에서 먼저 연락할 거라더니 일주일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대체 왜 애초에 소개팅을 받겠다고 한 건지 모를 노릇이다. 나한테 들어오는 소개팅은 어째선지 다 이런 식이다.)
한국에 도착하면 소설이나 열심히 써야겠다.